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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고양이 R 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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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미화 Jan 12. 2020

고양이 R

20화

골목 끝까지 따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고등어를 못 본 지도 오래됐다. 만날 생각이 안 들었다. 고등어도 더 이상 큰길 건너 올라오지 않았다. 아이는 해가 비추면 인간 손을 잡고 쇠붙이를 타고 나갔다가 어두워지기 전에 들어왔다. 인간은 하루 종일 풀썩이는 물건을 드르륵 드륵 쇠붙이에 댔다. 나는 바깥에 나가 똥을 누고 곧장 집에 들어왔다. 똥을 누고 콧구멍에 들어오는 바람을 쐬면 몸이 뿌르-릉 늘어져라 하품을 했다.

        

어느 날 밥을 막 먹고 나서 몸단장을 하고 있을 때 검은 인간들이 우르르 찾아왔다. 나는 다리가 네 개 달린 아이 밑에서 뒷발에 힘을 꽉 주고 쪼그리고 앉았다. 손가락으로 집을 여기저기 가리키던 인간들은 내게 밥을 주는 인간에게 눈을 부릅뜨며 큰 목소리를 내더니 쇠붙이에 불을 달고 한꺼번에 가버렸다. 내게 밥을 주는 인간은 집에 나를 가둬두고 자주 집을 비웠다. 집안에서 드르륵 드륵 소리가 않나니까 좋았다. 인간은 몸에 찬바람을 휘휘 감고 들어왔다. 그런 날에는 컴컴한 집에서 흐엉~ 엉~허엉~ 허~엉~하며 인간이 내는 소리만 가득했다. 내가 인간에게 가만히 다가가 앞발로 몸에 대면 인간은 내 머리를 사정없이 쓰다듬으며 더 크게 소리를 냈다. 


흐어엉~허~엉~엉 흐엉엉 엉엉 흐엉~   

        

인간은 부쩍 성을 내며 큰 소리를 질렀다. 그럴 때면 나는 슬그머니 일어나 자리를 옮겼다. 인간은 한쪽 발로 내 몸통을 쭉— 밀어버렸다. 구석에 턱을 괴고 누워 입을 앙 다문 인간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아이는 인간이 큰소리를 칠 때마다 콧물을 닦으며 나를 으스러지도록 껴안았다. 나는 바스락이 냄새가 나는 아이 손이며 얼굴을 꺼끌꺼끌한 내 혀로 살살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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