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빌에서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다
A와 오르빌에서의 추억은 인도 여행을 후회 없게 만들었고 즐겁게 9명의 어른을 가이드하며 재미있게 여행을 끝내게 해 줬다. 한국에서 그와 했던 대화를 떠올리며, 그를 나만의 '데미안'이라고 부르고 싶다.
"시몬스 하루만 제가 데리고 다닐게요"
어른들에게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나를 A는 눈치껏 구출해 주었다. 인도 여행의 목적을 찾지 못하며 찌들어버린 나를 구해주며 여행 중 뜻 밖에 행복한 시간을 갖게 되었다.
A는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머리와 옷차림을 한 미스터리 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였다. 나를 'La Terrace cafe'로 끌고 가며 대화를 나누었다.
"오르빌 청년들은 한 달에 1500루피만 내면 청년주택에서 40살까지 살 수 있어"
오랫동안 오르빌리언이었던 A는 오르빌의 자세한 속 사정을 내게 알려주었다. 모디를 연구하며 현재 인도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나는 듣다 보니 인도 안에 또 다른 나라인 오르빌에 대해 궁금해졌다. 오르빌사람이 2만 루피를 월급으로 받으면 3800루피 정도 세금으로 나가고 그 세금은 다시 오르빌리언에게 돌아간다고 했다. 그 누구에게도 듣기 힘든 오르빌의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친해져 갔다.
A는 오르빌 청년 운동가이자 스타트업 사장이었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보통의 한국인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며 불안한 점은 없는지, 대학에서는 무엇을 전공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진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나누었다. 그는 히피의 마인드를 나에게 알려줬다.
"나는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
타밀어, 프랑스어, 영어를 하며 홈페이지를 운영하며 후원금을 받고 오르빌 청년 운동도 하는 그의 삶은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세계였다. 나는 대학과 취업이라는 구속된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정답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A는 대학이 그의 삶을 설명해 줄 수 없다고 느껴, 스스로 길을 찾기로 했다. 그는 직접 부딪치며 배우고, 얻은 것을 삶에 적용시켜 나갔다.
그의 말을 들으며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한국에서는 사회가 정한 답안지를 쫓아야 했고 실패는 낙오를 의미했다. 우리는 정답만 좇으며 스스로 돌아보고 질문하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나는 한국 학생들이 얼마나 좁은 길만 바라보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내가 그 틀 안에서 얼마나 안정을 선택해 왔는지 새삼 깨달았다.
"돈이야 부족하면 농장 일을 하거나 공사판에서 일하면 되지"
나에게 끊임없이 커피와 간식을 사주니 돈은 어떻게 벌고 있냐고 물었다. 한국에 있을 때 농장 같은 데서 일하거나 호주나 캄보디아 등 여러 곳을 나가며 돈을 벌고 들어온다고 했다. 학교 다니며 아르바이트하기 싫다고 칭얼거리던 나의 모습과는 완전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A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날아다녔다. 나는 자유롭고 싶지만 오히려 나를 철창에 가두고 있었다. 벌써부터 돈 돈 거리며 많은 것을 놓치고 있었다. 돈보다는 A처럼 경험을 쌓으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A의 삶을 처음에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대화를 통해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매력에 빠진 나는, 친구들을 소개해줄 수 있냐고 물었고 A는 자기의 청년 모임에 나를 소개해줬다. 히피들이 모인다면 마약 하며 술 마시는 줄 알았는데 건전하게 토론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임이었다.
"Lets talk about fixed believe"
고정된 신념(fixed believe)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거기에는 러시아인,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인도인, 베트남인 등 여러 인종이 모여있었다. 영어를 잘하는 외대생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운 토론 분위기에 끼질 못했다. 마치 미드에서 보던 자기의 경험을 공유하는 모임 같은 느낌이었다. 어떻게든 한마디라고 해봐야겠다고 다짐했다.
"What I caught up in mind was, is it right to advice friends who has wrong fixed believe?"
요즘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는 게 틀리다고 생각이 들어서 남들의 의견이 궁금했다. 돌아오는 건 어떻게 보면 뻔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다른 언어로 다양한 나라에서 온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며 혼자 생각하고 답을 내리는 것보다 더 빨리 이해하고 깨우칠 수 있었다. 한국은 너무 좁은 세상이다. 한국에서 우물 안에 개구리처럼 살지 말고 전 세계적으로 나가며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르빌 내 괜찮은 숙소는 1년 치 예약이 꽉 찼다고 한다. 왜 그러는지 이해 됐다. 오르빌에는 도시와는 다른 가치가 있다. 이런 것들을 오르빌에 더 머물며 느끼고 싶었다. 한 달 정도 지내다 보면 많은 점들을 배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로 공유하며 무소유 정신으로 사는 공동체 마을은 오히려 한국보다 더 자유로운 곳이라고 느껴졌다.
"차오차오(오르빌에서 헤어질 때 쓰는 말)"
어딜 가나 A는 친구들과 인사한다. 그와 함께 걸으면 오랫동안 걸을 수가 없었다. 어디든 가도 아는 사람이 있고 사람들은 그를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La Terrace에서 나오며 산책했다. 끊임없이 걸으며 우리는 서로의 꿈을 공유했다.
"가만히 앉아서 고민하지 말고 돈이 없어도 길은 있으니깐 일단 부딪혀봐"
나는 계란에 바위 치면 바위만 더러워지고 아무 쓸모없는 것이 아니냐고, 그런 짓보다는 현실적인 꿈을 꾸는 게 나을 것이라고 반문했다. A는 눈앞에 보이는 결과물보다는 배우고 느낀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결과를 쫓는 대신 그 과정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나는 불안한 현실 앞에서 움츠러들고 있었지만, A는 두려움 없이 세상을 마주하고 있었다. 나와 별 차이 없는 나이였지만, 그의 생각은 내가 결코 도달하지 못할 깊이에 닿아 있었다. 나는 그런 그가 부러웠다.
"전 앞으로 히피처럼 살려고요"
어른들은 내 말을 비웃었다. A와의 시간이 강렬해서 어른들에게 앞으로 너무 틀에 박혀 살지 않겠다고 말했다. 어른들은 그러다가 노후에 고생하고 일찍 죽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우리는 너무 먼 미래를 바라보며 현재의 행복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떠나기 전날 A는 나를 티베트사람들이 새해를 보내는 곳으로 초대해 줬다. 명상하면서 생각을 정리해 보기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백 개의 촛불과 신비스러운 음악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명상하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어딘가 평화롭고 자유로워 보였다. 눈을 감고 25년도의 다짐을 생각하고 24년의 후회를 떠나보냈다. 오르빌에서 지내며 잃어버린 가치를 되찾은 기분이었다.
지금까지 보냈던 새해 중 가장 편안했던 새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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