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인도 가이드가 되다
우리 가족은 유명한 인도 마니아다. 4남매 중 인도 유학을 안 다녀온 사람이 없었고 그중 나는 인도와 삶을 연결시켜 인도 전문가가 되고 싶은 대학생이다.
"오르빌을 가자고요?"
인도 여행을 통해 삶의 힘을 얻는 아빠, 아빠는 10년 만에 인도 여행을 가고 싶어 하셨다. 인도 유학을 마친 이후 아빠는 항상 나와13살 때 했던 인도 여행을 다시 꿈꾸셨다. 여행 가는 건 좋았지만 하필 다녀온 지 1년밖에 안된 '인도'였다. 전역하자마자 인도여행에서 너무 고생해서 인도여행은 즐거운 여행이기보단 번뇌를 통해 해탈을 하게 해주는 여행이다. 하지만 늙은 아빠의 부탁은 막내로서 거부할 수 없었다. 10년 전 인도와 지금은 많이 달라졌기에 옆에서 인도 여행을 편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부모님 주변에 인도여행 껴달라는 분들이 많이 나왔다. 나도 알 정도로 가족끼리 친한 사이였기에 몇 명 정도 함께 한다면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엄마도 친구와 함께 인도 여행을 하겠다고 하면서 인도여행 가게 된 사람이 10명으로 늘어났다. 그렇게 나는 은퇴한 9명의 어른들과 함께 남인도 여행을 하게 됐다.
"바나깜(안녕하세요)"
택시기사는 나마스떼가 아닌 바나깜으로 우리를 맞이했다. 남쪽은 힌디어보단 다른 언어를 주로 쓴다. 특히 첸나이, 오르빌, 폰디체리는 타밀어를 쓴다. 새벽 1시, 말 많은 택시기사와 3시간 동안 오르빌로 향했다. 몬순 시즌이 아님에도 아열대기후처럼 엄청 센 소나기가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했다. 기괴한 첸나이 날씨는 벌써부터 인도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젠장, 인도여행을 다시 오게 되다니"
입국심사부터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다. 방심하지 않고 항상 긴장해야 한다. 온갖 예민해진 상태로 택시기사가 혹여나 이상한 짓은 안 하는지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15박 17일이 무탈하게 지나가기를 빌다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택시 안에서 스르르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