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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Aug 09. 2021

마시모두띠 바지는 강철 바지

(코로나 발생 이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서윤아, 오늘 김포공항 애슐리에서 밥 먹고 들어갈까?”


‘바밤 바바밤 바밤- 바-바바밤 바밤’

언니와 세종문화회관에서 해리포터 필름콘서트를 즐기고 마법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약간의 허기짐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그때 마침 언니의 디너 제안은 하루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마무리 코스로 딱이었다.


“완전 좋지!”

“마감이 8시 30분이니깐, 지금 빨리 가면 가능하겠다.”


처음부터 지하철을 탔으면 더 쉬었을 일을.

바깥 풍경을 감상하며 집에 가자고 결정한 일에 약간의 후회를 곁들이며, 이미 타고 있는 버스에서 김포공항까지 가장 가까운 정류장을 찾아봤다.

‘음, 송정역.’


“언니, 송정역에서 내려서 빨리 뛰어가면 간당간당하게 8시 30분 안에는 도착할 것 같아.”

“일단은 가보자.”

“응.”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답과 이미 뻔히 아는 길을 몇 번이고 머릿속 시뮬레이션을 돌려가며 아직 도착지점이 한참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마침내 도착한 송정역.


“언니, 뛰어!”


카드를 찍고 내리자마자 언니와 나는 포장마차와 노점이 즐비한 송정역의 좁은 보도를 헛둘헛둘 뛰어가며 소리만 요란한 전력 질주를 시작했다.

그러다 급커브 구간을 만나 크게 회전하려는 찰나였다.


‘이 코너만 돌면 애슐리가 보인다.’


다리와 함께 몸을 크게  번 회전하는 순간, 앗!

아차 싶을 때는 이미 오른발이 찌익하고 왼손이 쭈욱 하며 앞으로 거하게 슬라이딩을 하고 있었다.

(급커브 구간에서는 속도를 줄여야 한다.)


같이 뛰어오던 언니는 그 모습을 보고 헉하고 멈추었고, 하필이면 내가 넘어졌을 때 바로 옆 도로의 신호가 빨간불이어서 차량 여러 대가 창문을 내리고 '어머 어머' 소리를 내며 나를 구경했다. 정말이지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최소 7대의 차들이 창문을 내리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순간 아픔이나 창피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오늘 최애 바지 입고 나왔는데, 찢어졌으면 어떡하지'였다. 바지 생각에 스프링 튕기듯이 벌떡 일어나 바지를 탈탈 털어 살펴봤다.

놀랍게도 흠 하나 없이 멀쩡했다.

마시모두띠는 정말이지 훌륭한 바지다.


두 번째는 샐러드바.


“언니, 뛰어! 우리 이러다 못 먹어!”


언니는 뒤에서 풋풋푹거리며 뛰는 척 뒤따라 왔다. 송정역을 지나 애슐리까지 진입로에 들어서자 무릎이 슬슬 아프고 손바닥이 아프기 시작했다. 그제야 손바닥을 살펴보니 피가 찔끔찔끔 흐르고 있었고 바지를 살짝 걷어보니 바지는 멀쩡해도 무릎은 까져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이때부터 다리를 살짝 절어가며 뛰는 것도 걷는 것도 아닌 이상한 걸음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뒤에서 들려오는 언니의 웃음소리와 조금 전 차량에서의 운전자, 조수석 사람들의 눈빛이 오버랩되며 창피함이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분들 말로는 ‘어머 어머’ 하면서 입은 웃고 있었다.


내가 생각해도 과감한 슬라이딩 직후 오뚝이 같은 벌떡 이었다.

정말 처음에는 바지만 생각했는데,

다시 손을 보니 피가 보이는 게 너무 쓰라렸고,

옆에서 웃느라 속도를 못 내는 언니 때문에 애슐리는 못 먹겠다 싶고.


역시나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 넘었다.

그래도 언니와 나는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

끝내 애슐리는 먹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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