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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Aug 11. 2021

수술까지 할 줄이야


‘아, 오늘따라 진짜 학교 가기 싫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원래도 가기 싫지만, 유난히 오늘따라, 더욱, 참을 수 없이, 도저히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날!


고등학교 1학년, 햇살 좋은 어느 날.

그날이 딱 그런 날이었다.


생각이 아프니, 마음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왠지 배도 살살 아픈 것 같았다.

그래, 배가 아픈 것 같으니 엄마한테 학교를 못 가겠다고 말해야겠다.


“엄마…… 나 배 아파서 못 일어나겠어.”


“많이 아파?”


엄마는 놀랍게도 나의 발연기를 믿어주었고, 조금 더 쉬다가 같이 병원을 가보자 했다.

연기하느라 살짝 찌푸렸던 미간을 다시 피고 침대에 누워 거실에서 담임선생님과 통화하는 엄마의 얘기에 귀 기울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서윤이가 배가 아파서 오늘은 학교를 가지 못할 것 같아요……”


피식피식 삐져나오는 웃음을 숨길 수 없어 치솟는 광대를 몸을 한 바퀴 뒤집어 숨겼다.


그렇게 다시 늦잠을 자고 친구들의 걱정 어린 연락을 받으며 여유를 만끽하고 있을 때 즈음, 엄마는 슬슬 씻고 병원 가보자 했다.

뭐, 병원 가서 별일 없다고 하면 이제 다 나았다고 하면 될 일이니깐 크게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대충 씻고 엄마를 따라 쫄래쫄래 걸어 도착한 곳은 동네 상가 3층에 있는 늘 다니던 정형외과.

평일 낮에는 할머니들이 많이 오시는구나.

내가 학교가 있는 시간에는 시간이 이상하게 흐르는 것 같다.

꼭 다른 세상을 체험하러 온 이방인이 된 느낌이랄까.


“장서윤님, 제1 진료실로 들오세요.”


잠시 후 기계음이 들리고, 늘 뵙던 의사 선생님과 짧게 인사를 나눈 후 증상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사실 증상이랄 게 없어 거짓말을 해야 한다는 게 조금 민망했지만, 정말 배가 아픈 것도 같았기에 아주 작은 반응조차 예민하게 느끼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집중했다.


“자, 그럼 여기 누워 볼까.”

“여기 눌렀을 때 아파요?”


“음, 아니요..”


“그럼, 여기는?”


“아니요……”


살짝 민망해지려는 찰나에,


“앗!”


“이렇게, 손을 떼었을 때 아프죠?”


“네.”


“다시, 여기 이렇게?”


“아!. 네..”


신기하게도 정말 배가 아팠다. 꾀병몰입하다 보면 정말 아파질 수 있나?

처음에는 선생님까지 속이는 기분이라 찝찝했지만 거짓말이 아닌 정말 아팠다.

선생님은 다소 심각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엄마에게 조금 큰 병원을 찾아 가보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잠깐, 이게 아닌데.’

‘학교 안 가려고 거짓말 친 건데, 선생님이 왜 그러시지.’


선생님께서는 아마 맹장인 것 같다며 아직 심각한 단계는 아니지만 큰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엄마는 그 얘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였고 옆에 있던 나는 정말 심각해졌다.



그 길로 엄마와 나는 근처에 있는 ‘더 큰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고 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검사 결과를 받았다.


‘정말 이게 아닌데, 오늘 학교를 빠지고 싶었을 뿐인데.’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수술을 기다리면서도 뭔가 일이 잘못되었음에 울적해졌다.

친구들이 보낸 ‘서윤아 많이 아파?’ 하는 문자에 아픈척한다고 보내지 못한 답장을 이제는 진심으로 ‘나 수술해......’로 답을 하게 되었다.

얼떨결에 미용실에서 파마하듯이 수술을 해버렸고 하고 나오니 친구들이 병문안을 와있었다.


‘나 사실은 학교 가기 싫어서 거짓말했던 거야.’

이 말은 언제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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