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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Aug 16. 2021

튤립 꽃이 피었습니다.

부모님과 드라이브를 하고 집에 돌아가는 길.

그날따라 갓길에 즐비한 화원이 유독 시선을 끌어 눈에 띄는 한 곳에 차를 잠시 멈춰 세웠다. 조금 시들한 화분부터 경작이 쉬운 편이라는 스투키까지, 화원 입구에는 크기가 다양한 화분들이 즐비해 있었다.

로즈메리, 바질, 연필 선인장.

다양한 허브와 선인장의 이름을 살펴보다 조금 먼 곳에 각양각색의 튤립 화분들이 한 줄기씩 솟아 있는 게 보였다. 


“서윤아, 튤립 사줄까?”


작년 생일.

아빠에게 튤립 한 다발을 선물 받았다. 그때의 내가 많이 행복해 보였는지, 그날 이후 부모님은 아무 날이건 튤립을 보게 되면 나를 위해 한 다발씩 사 오신다.


“좋아요!”


나와 나란히 튤립을 바라보던 엄마는 그전과 달리 꽃다발이 아닌 손바닥만 한 주황색 플라스틱 화분에 심어진 튤립 한 송이를 직접 키워볼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주셨다. 그 많은 튤립 가운데 내가 선택한 화분은 연분홍빛의 꽃잎 끝이 오밀조밀 모여있는 튤립.


튤립을 고르고 나서도 화원 한 바퀴를 다 구경하고 다시 돌아온 차 안에서, 안전벨트를 매는 그 순간에도 옆에 잠시 놔둔 화분이 쓰러질까 노심초사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철컥 소리가 들린 후에야 무릎 위에 튤립을 올리고 한 손바닥만으로도 충분히 감싸지는 작은 화분이 초록 잎 끄트머리 하나 잘못 만졌다가 짓무를까 플라스틱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렸다.


‘이름을 지어줘야 하나.’


아빠가 운전하는 내내 혼자 감상에 젖어 있다, 살짝 출출하다는 아빠의 말에 집 근처 칼국숫집이라는 비 계획적인 목적지가 하나 더 생겼다.


‘얼른 들어가서 햇빛 드는 공간에 자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데.’


도착한 식당 주차장에서 조금은 올록볼록한 자동차 뒷좌석에 중심을 잘 잡아 튤립을 앉혀놓고, 차 문이 닫힌 순간 창문을 통해 한 번 더 튤립을 지긋이 바라본 뒤 부모님과 식당에 들어갔다.


“바지락 칼국수 2인분 하고 왕만두 주세요!”


먼저 나온 왕만두는 앞접시에 덜어 크게 반으로 한 번 나누고 간장을 살짝 뿌려 먹는다.

왕만두 한 개를 더 덜어 갈 즘에 큰 대야에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바지락이 가득 담긴  칼국수가 나왔다. 앞접시 하나를 중앙에 배치하고, 바지락 먼저 골라내면 면을 후룩후룩 먹기 좋다.


“잘 먹었습니다!”


본래의 목적이 뭐였는지 잊을 정도로 게 눈 감추듯이 먹어치운 바지락 칼국수와 왕만두를 뒤로하고 구부정한 자세로 다시 돌아온 주차장. 우리 차를 보니 뒷좌석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튤립이 생각나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문 열었어.”


“탁!”



“엄마!”


실제 상황, 실제 상황!

튤립 살화 사건이다!


바지락 칼국수를 먹는 30분 사이에 튤립이 만개하다 못해 죽어버렸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튤립의 모습은 파릇파릇한 이제 막 성년이 된 모습이었는데, 꽃잎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기 직전인 시들시들해진 튤립의 모습은 마치 임종을 앞둔 삶의 끝자락의 모습과 같다. 이럴 순 없다.

반려 식물이 된 지 채 1시간이 되지 않았다.


아니, 아직 애도하기에는 이르다. 집에 가서 물을 주고 햇빛에 두면 다시 부활할지도 모른다.

아니, 아직 부활이라고 말하기에도 이르다. 나의 튤립은 죽은 것이 아니다.


슬픔을 애써 억누르며 차로 15분 걸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원에서는 2주 뒤에 물을 주라고 했지만 당장 심폐소생술이 필요해 보이는 튤립을 위해 긴급히 물을 주고 창가에  입원시켰다.

다음날 아침.

꽃잎이 조금 올라온 것 같기도 하고.

기분 탓인가 잘 모르겠다.


다 다음날 아침.

기분 탓이 아니다.

꽃잎이 중간 정도 올라왔다.

그러나 쭈글쭈글해진 잎은 회복되지 않고 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다.


다다 다음날.

나의 튤립이 하늘나라로 갔다.

어제와 그제는 작별의 시간이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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