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살게!”
갑자기 신세계 상품권이 많이 생겼다는 언니는 흔쾌히 우리 집 저장고를 위해 집 근처 이마트 트레이더스에서 크게 한 번 장 보는 것으로 탕진하겠다 말했다.
언니의 흥에 덩달아 신나 장보기 리스트를 머릿속으로 계획해봤다. 일단 크루아상과 에그타르트를 사고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도 맛있었지.
아, 티각태각도 지난번에 사려고 했었는데, 와인 한 병이나 맥주도 나쁘지 않지.
“그럼 운전은 내가 할게!”
잽싸게 샤워를 하고 널찍한 장바구니와 차 키를 챙겨 언니와 둘이 길을 나섰다.
트레이더스까지 가는 15분 동안 이보다 더 화목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언니와 나는 너무나 정다웠다. 저스틴 비버의 노래가 이렇게 감미로웠나.
‘언니, 이 노래는 누구 때문에 알게 된 노래고.’ 주절주절, 어쩌고 저쩌고, 하하 호호 늘 듣던 노래도 다시 얘기하고 같이 따라 부르며 드라이브 시간마저 여행 전 준비 기간만큼이나 즐겼다.
도착한 트레이더스.
이것이 바로 프리랜서(한량)의 혜택인가.
역시나 평일 오전은 사람이 별로 없다.
(언니는 스케줄 근무라 비교적 출퇴근이 자유롭다.)
한가로이 카트를 끌며 초콜릿 코너부터 구경을 시작했다.
“언니! 크리스피도 있다!”
뭐 대단한 발견이라고, 아는 맛, 아는 도넛을 새삼 환한 미소로 맞이하고 초콜릿, 과자들로 카트를 조금씩 채워갔다.
과자, 라면, 음료 코너를 지나 조금씩 시원해지는 냉기에 이제 쇼핑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옴을 몸으로 실감하며 더욱더 설레기 시작했다.
아, 시원한 공기
여기다.
신선한 초밥!
언니와 나는 초밥 코너에서 발을 멈춰 한참을 고민했다.
어떤 구성을 골라야 앞으로 약 한 달 동안 후회 없이 잘 먹었다고 할 수 있을까.
이거는 연어가 많이 들어간 대신, 장어가 없다.
이거는 장어가 있는 대신에 연어가 너무 조금이다. 연어냐, 장어냐 그것이 문제로다.
에잇, 오늘의 선택은 연어다!
언니와 나는 꽤나 심각하게 고민을 한 것치고는 허무하리만치 결국 아무거나인 ‘연어를 많이 먹는 것’으로 선택을 했다.
초밥 코너에서 너무 쓸데없이 기운을 쏟아서인지 그다음 선택부터는 비교적 쉬었다.
닭강정은 패스, 샐러드도 맛있어 보이지만 초밥이 있으니 패스. 여기에 빵만 조금 더 사서 이제 들어가자!
짐은 전보다 훨씬 더 많아졌지만 무빙워크에 몸을 맡긴 채 카트에 잠시 기대 있다 사뿐사뿐 가벼운 발걸음으로 계산대까지 도착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아도 언니는 앞에서 상품권으로 계산을 준비하고 나는 박스에 물건을 담는 모습이 마치 오랫동안 그룹 생활을 해온 환상의 듀오 같았다.
지금까지는.
삑 - 크리스피 도넛.
삑 - 꼬북칩.
삑 - 와인 1병.
삑 - 티각태각.
삑 - 초-밥,악!
초밥이 쏟아졌 다.
이렇게 밀봉이 안 되어있다고?
언니, 나, 계산원. 그 현장의 세 사람이 모두 놀라 잠시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모든 동작이 멈추었다. 그러곤 누군가 리모컨 재생 버튼을 누른 것처럼 잽싸게 언니와 나는 손으로 초밥을 플라스틱 통에 주워 담는데 이 절망감이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늘어나자 나는 초밥을 마저 주워 담았고, 언니는 남은 계산과 가방에서 물티슈를 꺼내 계산대를 정리했다.
큰일 났다 와 절망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내 책임이지만 억울한 이 느낌은 뭘까.
아니, 이렇게까지 허술하게 덮어져 있을 줄이야. 거의 뚜껑을 얹어놓은 수준이었다.
아니다. 다 나의 잘못이다.
그렇게 초밥을 반은 버리고 반은 살렸다.
흔쾌히 가족을 위해 희생한 언니의 상품권을 알기에 더욱 미안했고,
앞전에 너무나 행복했기에 더욱 절망감이 컸다.
그래, 운수가 좋더니만.
운수가 좋았어.
아무 일 없던 척 다시 저스틴 비버의 노래를 들으며 집에 돌아왔지만 도착한 집에서는 언니에게 배부른 척 초밥을 한 점이라도 더 양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