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참 창피를 많이 당했다.
회사는 다니기 싫고 돈은 벌어야겠고, 해서 여기저기 공모전을 지원하다 보니 어설프게 1차까지 붙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2차 발표 심사인데, 보통의 경우 2차 심사는 직접 특정 장소에 가서 발표를 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다. 올해의 창피는 여기 2차 심사에서 많이 기인했다.
“안녕하세요. 어쩌고 저쩌고를 하는 장서윤입니다.”
옷만 보면 이미 성공한 사업가다. T.P.O는 기가 막히게 잘 맞춰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 써서 가지만, 목소리는 언제나 덜덜, 동공은 지진 나고 난리가 그런 난리가 없다. 유치원 학예회처럼 식구들을 나란히 소파에 앉게 하고 거실 한가운데 서서 잠옷 바람에 목소리가 갈라질 때까지 발표 연습을 해도, 막상 발표장에만 가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날은 대학로에서 거하게 발표를 말아먹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발표 주제에 맞춰 며칠 전 새로 구입한 친환경 나이키 신발이 더욱 초라해 보인다.
아니다. 사실 발표는 핑계고 이 신발을 사고 싶었다. 생각할수록 얼굴에 열이 올랐다.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은 마음에 물리적 공간이라도 환기시키고자 지하철이 아닌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다.
나는 왜 이렇게 바보 같을까.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는 덜 바보 같겠지.
아마 발표자들 중 내가 제일 멍청이었을 거야.
평일 낮 시간이라 그런지 정류장은 텅 비어있었다. 내가 타야 할 버스가 7분 후 도착이라는 전광판을 봤지만 벤치에 앉아 기다리기보다는 지저분한 벽에 기대서고 싶었다. 괜스레 나의 깨끗한 새 운동화가 눈에 들어왔다. 왼발에 힘을 주고 오른발을 바닥에 슥슥 밀어가며 반복 동작을 수행하던 중 앗, 오른쪽 발에 감이 달라졌다. 앞코가 살짝 질척 질척한 것이 방금 전 누군가 껌을 뱉었구나.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재수가 없으려니 하필 발표를 대차게 망친 날 20년 만에 남이 뱉은 껌까지 밟게 되었구나.’
아주아주 부정적인 생각을 함과 동시에 마치 한 분야의 천재가 탁! 하고 영감이 떠오르듯이 갑자기 아주아주 긍정적인 생각이 떠올랐다.
‘껌은 바닥에 붙어 있으니, 혹시 조금 전 공모전에 붙을 수도 있다는 하늘이 뜻이 아닐까?’
(참고로 나는 종교가 없다.)
한번 사고 회로가 긍정에 맞춰지자 심장이 콩닥콩닥 설레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벌써부터 상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 생각하며 신나기 시작했다.
그래, 이건 좋은 징조야.
새 신발에 껌이라니!
이게 어디 흔한 일인가!
발표는 금방이었다.
이틀 뒤, 스크롤을 아무리 반복해서 내리고 올려도 내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