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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서윤 Sep 20. 2021

내 꿈은 스턴트 배우

초등학교 3학년부터 5학년 때까지 동네 상가에 있는 태권도장을 다녔다.

사범님 심사 날에나 가끔 찾아오는 엄마에게

“서윤이는 태권도 선수를 시켜보시죠.”

라는 얘기를 했을 정도로 나는 전도유망한 태권소녀였다. 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고 같이 태권도를 다니던 친구들이 종합학원으로 옮기자 나 역시 그래야 하는 줄 알고 자연스레 태권도장에서 G&B 영어 학원으로 갈아탔다. 결과는 태권도만큼 좋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사범님은 초등학교 고학년인 나를 잡아두기 위한 전략적인 언술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해 들은 칭찬 학창 시절 내게 아주 큰 자신감을 심어줬다.

뭐, 피구를 하다가 일찍 죽더라도 ‘내가 마음먹고 하면 너네들은 다 끝이다.’ 랄까.


코로나 발생 이전까지도 친구와 만나면 종종 실내 암벽등반장에서 함께 운동을 하곤 했다. 가장 쉬운 코스에서 조금 덜 쉬운 코스로, 조금 덜 쉬운 코스에서 중간 코스까지. 허옇게 분필가루 묻은 손을 탈탈 털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마시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란 캬, 정말 꿀이다.


그러던 어느 오후, 소파에 반쯤 기대 누워 네이버 쇼핑을 하던 중 닭살이 삭 올라오더니 기가 막히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스턴트 배우라는 직업이 있었지!

지금 도전하는 것이 가능할까?


오만이다. 뭣도 아닌 내가 나이 서른에 갑자기 스턴트 배우를 하겠다니.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러나 체험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당장 네이버 쇼핑을 나와 초록창에 액션 스쿨을 검색했다.

오, 파주에 서울액션스쿨이라는 곳이 있다.

정두홍 무술연기자 회장님이 운영하는 곳인가 보다. 믿음직스럽다.

스크롤을 조금 내리니 체험 및 대관이 적혀있다!

성인 10인 이상 단체 팀으로 신청이 가능하며, 프로그램은 영화 속 다양한 와이어 액션, 사극, 고공 낙하 체험(와이어 액션) 등이 있다.

그래, 바로 이거다!

영화 속 다양한 액션 체험이라는 안내를 읽자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 배우가 맡은 정청 역할이 너무 하고 싶어졌다.

“드루 와, 드루 와.”


9명의 사람만 모으면 당장 신청 가능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게 9명의 인맥이 없다는 것이다.

대학교 동기, 고등학교 친구, 중학교 학원 친구까지 전부 모아 5명이다. 과5명이 장서윤이라는 사람만 보고 “드루 와, 드루 와”를 하겠다고 모일까. 살면서 처음으로 친구가 적다는 것에 슬픔을 느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가진 다른 방향의 인맥이 생각이 났다. 바로 언니 친구의 남자 친구의 친구들이다. 이렇게 얘기하자니 참 아무것도 아닌 사이 같지만, 나름 언니 친구와 언니 친구의 남자 친구는 나와 독서모임을 같이 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 할 수 있다.

그 오빠는 운동도 좋아하고 주변에 친구들도 많으니 “드루 와, 드루 와”를 해줄 친구 8명 정도는 쉽게 모집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뭐람.

이후 코로나가 발생했다.

코로나 상황에 10명 이상의 활동이라니, 안될 말이다. 나의 있는 인맥 없는 인맥 탈탈 털어 끌어모았는데 전염병이 웬 말인가.

올해 나는 서른이다.

물론 정청은 마흔이 넘어 “드루 와”를 했지만 내가 과연 마흔에 “드루 와”를 할 수 있을까.

난 잘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으로써는 마흔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중후한 맛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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