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 영어학원

by 장서윤

출판사 보름산미술관에서 발간한 그림책 <감정동 사람들>의 에필로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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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병이 있다.

사람들이 지켜보면 잘 못하는 병


다 알고 있으면서도 누군가 발표를 시키거나 뒤에서 지켜보면

괜히 주눅 들어 숨고 싶어 진다.


마음만 그런 게 아니라 쓰고 있던 글씨도 작아지고 그리고 있던 그림도 작아진다.


초등학교 방과 후,

보통의 예비 중학생들이 그렇듯이 선행학습 혹은 보충학습을 위해 영어 학원에 다녔다.

영어 수업 자리는 늘 맨 뒤에서 두 번째 줄, 벽에 붙은 안쪽 자리.

친구들 사이에서 묻어갈 수 있는 최적의 자리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운수 좋은 어느 날,

어쩐지 운수가 좋더니만

그 날, 영어 선생님의 의욕이 넘쳤다.


선생님은 수업 중 한 문단 읽는 것을

앞자리의 친구 혹은 발표를 좋아하는 친구가 아닌

가장 존재감이 없는 나에게 시키셨다.


갑자기 세상이 노래지며 손에 땀이 나고 성대가 막혀버리는 이 두근거림이란

그래서 발표는 제대로 했는지 안 했는지

그 순간의 감정과 집에 돌아와 학원 그만 다니겠다며 떼를 썼던 기억밖에 없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선생님이 뒤에서 지켜보면 소심하게 등을 둥글게 말아

내가 하고 있는 걸 감추려 하고 숨기려 했다.


지금은 그나마 사회화가 돼서 안 그런 척을 하는 편이지만

언제나 마음속으로는

‘아, 들키지 않게 조심해야지, 들통나지 말아야지, 내가 쭈구리라는 걸….’


이렇게 직접 대면하지 않는 뒤에서 글에 숨어 큰 소리 내봅니다.

“저, 원래 더 잘하는 사람입니다!”



+ 무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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