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보름산미술관에서 발간한 그림책 <감정동 사람들>의 에필로그 글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 살았던 동네에는 상가마다 작은 옷가게들이 2~3개씩은 있었다.
주로 여성복을 파는 상점이지만,
간혹 xs 사이즈 같은 free 사이즈 티셔츠를
유니섹스 디자인이라고 판넬에 광고하며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성규 부티크는 내가 경험한 현실 상가 옷가게와 나의 이상 상가 옷가게가 혼재된 상점이라고 할 수 있다.
2018년 4월,
도망치듯이,
충동적으로,
갑작스럽게,
이탈리아 볼로냐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났다.
아, 출발하는 비행기에서 여행 계획도 세웠는데,
한 달 동안 말도 통하지 않는 공간에서 미친 듯이 산책이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전 7시 정도에 숙소에 도착해 침대에 누워 있다가,
적당히 어둑어둑해졌을 때,
가장 가까운 마트를 찾아 팩 와인과 냉동 피자를 사 먹고 잤다.
다음날 산책을 하러 숙소 밖으로 나갔다.
날씨도 좋고, 하늘도 파랗고,
배워본 적 없는 이탈리아어가 웅성거리고,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다니기 좋았다.
읽을 수 없는 간판, 유모차를 끌며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
사람보다 큰 개.
이방인 느낌을 만끽하며 걷고, 걷고 계속 걸었다.
큰 광장을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자
남성복 부티크들이 조금씩 보였다.
처음엔 여기 옷들이 비싸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성규 부티크가 생각났다.
아, 내가 상상했던 성규 부티크가 이런 모습이었는데.
여기 이탈리아지? 역시 패션은 이탈리아지.
조금 일찍 왔다면 성규 부티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었을 텐데.
성규 부티크 사장님에게
볼로냐에 위치한 작은 부티크들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생각한 게 이거였어요, 사장님!’ 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림책 <감정동 사람들>은 2016년 12월에 출간한 책이지만,
성규 부티크에는 2018년 4월 볼로냐의 아쉬움이 진하게 남아있다.
+ 완벽주의, 강박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