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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은채 Oct 27. 2024

어부가 마주하는 오리의 죽음

퇴사한 남편은 어부가 되었다.







고시조를 공부하다 보면 사대부들이

어부의 생활을 얼마나 동경했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다. 말 그대로 자연친화, 유유자적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가까이 보면 비극이요,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가까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부에 관한 이야기 보다도 멀리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어부에 관한 작품이 많다는 선생님의 설명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있다.



나 역시도 남편이 어부 일을 하기 전에는 그저 바다로 나가야 하는 위험함을 빼면 그물에 걸린 고기를

잡아 올리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 줄로만 알았다.






고기를 잡으려면 그물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미생물이 그물 사이사이에 끼기 때문에 그물을 씻고 털어내고 말리고 하는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이야 가을이어서 좀 덜하지만,

여름에는 땡볕에서 해내야 하는 힘든 작업 중 하나인 것이다.


구더기를 본 게 언제였더라?

어릴 적 보았던 재래식 화장실에 살던 그 구더기.

남편은 무더운 여름이 되면 작업 중에 심심찮게 구더기를 마주하기도 한다. 씻고 제거하고 털어 말리고 무한반복이다.

 어떤 날은 오리나 갈매기의 사체를 만나기도 하는데 그걸 직접 손으로 치워야 하는 것이 어부의 일이라고 했다.


넓은 바다에 나가 유유자적하게 그물을 끌어당기는 건 말 그대로 작품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꽤 많은 힘듦이 숨어있고 그걸 묵묵히 해낼 수 있는 배짱이야밀로 어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빨아도 작업복에서 비린내가 빠지지 않는다고 야단이다. 차에도 냄새가 배어 방향제가 필요하대서 좋은 향으로 골라 건네주었다.


역한 냄새를 맡게 되어도 절대 인상 쓰지 않고 덤덤한 표정을 짓는 것은 내가 당연히 해야만 하는 남편에 대한 배려이다.

멋을 낸 모습이 아니어도 그런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봐줄 수 있는 것은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는 그이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일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의 손이 햇빛에 그을려 검어지고 무거운 걸 들고 당기다 보니 점점 두꺼워진다. 그 손이 매일의 세월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귀하다는 말로도 부족하다. 슬며시 손을 주물러주다 보면 아프다고 외치지만 손을 빼지 않는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마음, 그 사소함으로 우리는 또 하루하루 힘을 내서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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