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우리는 언제 여행 가?
어젯밤.
남편은 잠에 들기 직전까지 구토를 하고, 소화제와 위장약을 먹다가 결국 어설픈 나의 실력으로 손을 땄으나 별 차도가 없어 밤새 고생을 했다.
새벽 1시가 넘어서야 잠든 것 같은 고요함에 그제야 나도 겨우 잠을 청했다.
어제는 하루종일 폭풍에 망가진 어장을 손봐야 했고, 오늘은 그물을 씻고 찢어진 그물을 꿰매면서 고기 잡을 마지막 준비를 마쳐야 한다고 했다.
컨디션이 좋지 않지만 오늘은 새벽 4시에 나가서 작업해야 한다고 나갔는데 몸이 좀 나아졌을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어느 날, 아이가 물었다.
“우리는 대체 언제 여행 가? “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이 어부가 되고 나서부터는 공식적인 휴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물론 정해진 휴일이 아주 없지는 않다. 매달 둘째 주 일요일은 위판이 없는 날이기에 한 달 중 유일하게 쉬는 날이다. 그러나 지난 휴일에는 갑작스레 선어 위판장은 운영을 할 거라는 공지를 하는 바람에 쉬기로 했던 선원 모두는 어머님의 성화로 출항을 해야만 했다.
생각보다 고기가 없었기 때문에 남편은 꽤 많이 화를 냈었다.
어른들은 쉬는 것은 무조건 손해다라고 생각하시는 탓에 남편과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의 변하지 않는 생각은 남편의 유년시절 재롱잔치 사진에는 늘 엄마가 없었다는 이야기로 다 이해할 수 있었다.
유일한 휴일마저 사라져 버렸으니 우리는 정말 언제 여행 갈 수 있을까?
나도 참 궁금하다.
어부에게 휴일은 명절 당일과 어떤 작업도 불가할 만큼의 바다 상황이 안 좋은 날을 제외하면 사실상 없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사람들은 예측할 수 없는 것에 가장 불안해한다.
직장인에게는 예측 가능한 것이 있다. 물론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대략적인 매일의 출퇴근 시간, 쓸 수 있는 휴가, 휴일.
이런 걸 예측할 수 있는 삶에서 할 수 없는 삶으로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다.
새삼 몇 십 년째 매일을 바다에서 보내는 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워졌다. 그만큼 게으르면 바로 티가 나는 것이 이곳 일이다.
밤새 소화가 안 된 배를 붙잡고 힘들어하던 남편의 모습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가만 생각해 보면 9 to 5로 살아가는 우리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게 그에게는 무리가 된다 싶을 때가 있다.
새벽 일찍 나가서 점심 전에 집에 오면 몸이 고되니 밥을 잔뜩 먹는다. 그리곤 밤새 못 잔 잠을 보충하고, 우리가 저녁 먹는 시간인 6-7시쯤에 같이 저녁을 거하게 먹고 바로 취침에 들어간다. 적당히 먹으라고 해도 새벽에 나가면 너무 허기가 진다며 많이 먹는다.
안 그래도 불안 불안했는데 소화불량에 안 걸리는 게 이상한 일이다.
더구나 어제는 내가 없는 사이 점심에 피자 한 판을 다 먹고는 낮잠을 잤다고 했다. 할 말이 없다.
그러길래 한국 사람은 된장에 밥 먹는 게 최고라니까
최근 몇 년 간 뱃 일을 50년 이상하신 선장님이 두 번이나 손을 다치셨다. 한 번은 손이 감겨 분쇄 골절이 되어 수술을 하셨고, 가장 최근에는 보이지 않던 곳에 있던 못에 손을 찔려 치료하고 파상풍 주사도 맞고 오셨다고 했다.
베테랑도 언제 어디서 다칠지 모르니 위험한 건 사실이다. 군에서 소방 관련 업무도 했었고 후에 안전관리자 일도 하면서 안전에 관해서는 철저한 남편도 작업 중에 몇 번이나 바닷물에 빠졌었으니 늘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어부가 되고 가장 힘든 점은 뭐니 뭐니 해도 매일 목숨을 걸고 바다에 나가야 함이 아닐까 싶다.
바다에 아무리 파도가 거세도 내 마음은 고요할 수 있기를 그렇게 오늘도 평온과 안녕을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