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은채 Oct 21. 2024

그물에 걸려버린 불청객

퇴사한 남편은 어부가 되었다.




요 며칠 날씨가 심상찮다.

흐리고 비 오고, 특히나 바람이 어찌나 불어대는지 어촌 사람들은 이럴 때는 더욱 분주하다.

묶어둔 배는 부두에서 멀찌감치 떨어뜨려 놔야 부딪혀 파손되는 일이 없기에 줄을 길게 매고 다시금 단단하게 매어졌는지 여러 번 확인한다.

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하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묶어둔 배 주위를 맴돌고 재차 확인을 한다.

그렇게 작업이 없이도 힘들고 피곤한 시간이 지난다.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고 어부가 되기로 한 지도 1년이 훌쩍 지났다. 새벽 1시가 되기 전에 집을 나서서 1시 30분이 되기 전에 출항을 하는데 초반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나 역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은 푹 잘 수 있냐 물으면 그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제는 걱정보다는 남편이 안전하게 잘 해내고 돌아올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걱정 대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아침에 돌아올 그를 기다린다.



남편이 일하고 있는 어장은 정치망이다. ‘정치망 어업’ 이란 일정 구역에 어장을 설치하고 그물을 고정시켜 두고 어장 안에 들어온 물고기들을 건져 올려 내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매우 다양한 어종이 있지만, 물고기도 상황 따라 경매 가격이 천차만별이라 고생해서 수 백 마리를 잡아도 한 마리에 천 원도 못 한 가격에 팔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남편 어장은 방어가 주종인데 방어값은 특히나 널뛰기하기로 유명하다. 나도 남편이 이 일을 하기 전까지는 방어는 무조건 비싼 고기인 줄로만 알았다.

(곧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방어 가격이 가장 비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겨울이 가장 바쁜 시즌이다.)



어장에서 가장 인기 어종은 단연코 오징어이다.

오징어 개체 수가 적기도 하고 가격이 많이 올랐으나 수요는 늘 있으니 오징어를 많이 잡아야 어민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돌돔도 가격을 제법 받는 어종인데 회로 먹으면 정말 고소하고 맛이 일품이다. 그만큼 찾는 사람이 많은 물고기들은 인기가 많다.


그중에서도 바다의 제왕은 역시나 고래인데, 고래는 함부로 잡으면 안 되기 때문에 그물에 걸려 들어온 경우에만 가능하고, 해경에 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행여라도 포획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형사 건으로 구속에 이르는 범죄에 해당하기에 고래를 건져 올린다는 것은 진정 신의 선물을 받는 일인 것이다.






다양한 어종이 들어오는 대로 팔면 다 돈이 되는 거구나 했던 것은 나의 착각이었음을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다.


반가운 어종이 있는가 하면 불청객들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중 첫째는 바다거북이다. 왠지 바닷속 어디엔가, 전설로 전해져 오는, 마치 용궁에서 왔을 것 같은, 그래서 잡으면 재수 좋을 것 같은 바다 거북이 들어오면 그날은 고기가 없다고 보면 된다.

거북의 등장과 함께 그날은 공쳤다는 표정이 번지고 바다로 유유히 거북이를 보내주면서 할 수 있는 건 사소한 기도 정도이다. ‘하지만 또 오지는 말아라.‘라는 말도 같이……



멸치 더미 속에서 고기 선별


두 번째 불청객은 멸치이다.

멸치는 우리 밥상에서 인기가 많지만 남편이 하는 것은 멸치잡이 배가 아닐뿐더러 멸치가 어장에 들어오는 날은 돈은 안 되고 고생 시작이라고 보면 된다.


일단 멸치는 사이즈가 작다 보니 자잘하게 그물에 달라붙어 털어내는 것부터가 힘이 들고 그렇게 털어낸 아이들은 상품 가치가 없기에 헐값에 사료공장으로 보내진다. 고생은 고생대로 가격은 못 받는 그런 어종이다. 게다가 저렇게 멸치가 잔뜩 들어와 버리면 정작 들어와야 할 어종은 들어오지 못한 다는 것도……



세 번째는 청어이다.

청어의 가장 큰 문제는 그물에다가 알을 깐다는 것이다. 어업에서 깨끗한 그물은 정말 중요하다. 불순물이 많이 끼여 있으면 물고기들이 알아채고 들어오질 않기에 며칠에 한 번씩은 꼭 그물을 씻고, 갈아주는 대대적인 작업을 하는데 청어가 알을 꺼버리는 순간 일이 배로 힘들어지는 것이다.

찐득한 알들을 일일이 제거해야만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다.





이렇게 불청객들이 찾아오면 사실 투덜거리는 마음이 먼저 훅 올라온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 가장 무서운 건 악플 아닌 무플이라는 말처럼 어쩌면 반가운 손님 말고도 불청객도 들어와 줘야 그곳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손님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불청객일 수 있듯이 물고기들도 비슷한 운명이다 싶으니 보내주는 마음이라도 ‘널 더 반기는 곳으로 가라.’ 하면 그래도 그날을 마무리하는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진다.


물론 이건 남편을 기다리기만 하는 내 마음일 뿐이고,  정작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이 일을 하면서 감정을 컨트롤하는 일이 파도가 언제 커질지를 예측하는 것만큼이나 어렵고도 중요한 일이라는 걸 느낀다.

오늘도 거센 바람과 멸치와 싸우고 있을 남편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길, 그렇게 나의 하루의 시작도 편안하기를 고요히 기다려본다.










이전 06화 어부가 된 남편, 어떤 점이 좋고 나쁠까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