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부의 아내입니다.
남편이 뱃사람이 된 지도 어느덧 1년이 훌쩍 넘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꿈꾸며 치열하게 살다가 30대 후반이 되어 내린 결정이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생계가 달려있었고 그에게는 멈추고 생각할 시간적 없었다. 아마 퇴사를 생각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새벽 1시 30분이면 출항 시작이다.
집에서는 12시쯤 눈을 떠야 작업복도 갈아입고 작업 때에 필요한 준비를 해서 나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전날 저녁 7시가 조금 넘으면 불을 끄고 조용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 아이들이 한참 투닥거리고 떠들 나이인지라 매일 밤마다 조용히 시키는 게 나의 미션이다.
그 시간에 잠에 들어도 절대 충분한 수면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수면부족으로 인해 혹여나 일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될 만큼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곤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직장 생활과 완전히 반대로 생활하는 것 같은 어부의 생활. 그것에는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나를 생각해 보게 된다.
우선, 장점을 이야기해 보자.
첫째, 하루 실제 노동시간이 짧다.
때에 따라 다르고, 배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선원들은 새벽 1시경 출항해서 5시 전에 작업이 끝난다. 가끔 추가로 그물 작업 같이 부가적인 일을 해야 하는 경우 오전까지 일을 할 때가 있지만 그 시간이 일반 직장인 노동 시간을 초과하진 않는다.
둘째, 날씨가 좋지 않으면 쉰다.
비가 오는 것은 조업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만 바람이 많이 불기 시작하면 조업이 힘들기 때문에 출항할 수가 없다. 게다가 풍랑주의보가 내려질 때가 있는데 해제가 되면 조업이 가능하지만, 보통 해제되는 시각이 새벽 3시 이후라서 그전에 조업을 나가야 하는 배들은 하루 일을 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갑작스러운 휴가가 생긴다.
셋째, 7, 8월에 푹 쉬어도 월급이 나온다.
이건 지역마다, 선장님 따라 다를 순 있겠지만 우리 마을의 경우에는 선원으로 고용되고 나면 일이 없는 7, 8월에도 월급을 받는다. 월급을 줘야 하는 선주의 입장에선 힘든 일이지만 선원에게는 긴 유급 휴가가 주어지는 셈이다. 안정적인 직업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서 불안정하게 주어지는 보너스 같은 일도 있다고 생각하면 좋다.
넷째, 다른 어장에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고 부가 수입이 생긴다.
농촌도 마찬가지이지만, 어촌은 더욱이 사람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배를 타는 일은 뱃멀미도 없어야 하고 급박한 상황 속에서 빠릿빠릿하게 일을 해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힘들어도 정말 오래 일할 사람들만이 남는다. 그래서일까. 외국인 노동자들도 베테랑으로 오래 남은 선원들이 아니고선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작업에 필요한 인원이 부족할 때에는 앞 집, 옆 집에서 연락이 온다. 새벽에 일을 마치고 오전에 몇 시간 작업을 도와주면 보통 10만 원 정도 아르바이트 비용을 받는다. 생각보다 부수입이 짭짤하다.
다섯째, 매일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것과 가장 신선한 해산물을 맛볼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 남편이 배를 나가고 표정이 좋아졌던 부분인 것 같다. 꽉 막힌 건물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내다가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역시 사람은 자연을 가까이하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맞는 건가 싶을 정도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고기를 잡다 보면 가끔 꽃게가 올라올 때가 있다. 그럴 때에 꼭 한 두 마리를 받아와서 쪄서 먹거나 라면에 넣어 끓여 먹는다. 볼 때마다 비주얼 최강인 꽃게 라면은 입으로도 먹고 눈으로도 먹는다.
여섯째,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근육맨이 된다.
상자를 들고, 그물을 당기고 하는 그 모든 작업들이 실제 헬스장에서 운동하게 되면 수행하는 동작과 별반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힘이 들어 몸이 지치는 것 같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근육량이 늘어나는 게 눈으로도 보이고 근육들도 자리를 잡아가면서 아주 예쁘고 멋진 상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어깨뽕과 볼록해진 이두, 삼두를 매일 그렇게나 보여주는 걸 보니 남편도 뿌듯한 모양이다.
일곱째, 낮 시간이 자유롭다.
아침에 모든 작업이 끝나면 낮잠도 잠시, 저녁 전까지 시간이 남는다. 그러다 보니 남편의 경우에는 헌혈을 하러 가거나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이 잦다.
일반 직장인이었다면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뱃사람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아이들 운동회, 학부모 회의에 휴가를 쓰지 않고도 함께 참석할 수 있고 은행이나 관공서 볼 일도 제 때 볼 수 있으니 편하다.
여덟째, 짜증이 줄었다.
물론 초반에 일을 막 시작했을 때는 혼나기도 하고 실수도 하면서 힘들어했었다. 바다 일은 출처가 어딘지 모르겠는 일본식 용어들이 많아서 눈치코치로 익혀야 하는 것들도 많고(일본어를 전공한 나도 이게 무슨 말이지? 싶은 용어가 대부분이다.) 신속, 정확이 생명인지라 꾸중 들어가며 배우는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어느덧 일이 손에 익고, 사람들과도 유대관계가 형성되면서 웃는 날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직장 다닐 때만 해도 아침마다 한숨 쉬는 소리에 내 하루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는데 매일이 천국은 아니지만 그래도 남편의 미소 짓는 횟수만큼이나 마음도 많이 성장하고 있음을 느낀다.
(단점은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