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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마을의 오래된 미신이야기

퇴사한 남편은 어부가 되었다.

by 홍은채




바다는 육지보다 더디게 계절을 맞이한다. 11월까지만 해도 해수 온도가 떨어지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이제는 칼바람을 맞고 일하는 남편의 건강이 걱정인 계절이 된 것이다.


더운 여름에는 주로 쉬는 날이 많고, 겨울에는 방어 잡이로 바쁜 마을이다 보니 최근에는 쉬는 날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며칠 전에는 참치를 잡았다며 기분이 좋아 보였다.

참치는 캔으로 먹거나 참치 가게에서만 먹어 봤지 곁에서 볼 일은 없었다. 확실히 사이즈가 큰 물고기들이 잡히는 걸 보니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여러 차례 고기 잡이를 하고 나면, 그물에 끼인 이물질을 제거하고 깨끗한 그물을 다시 넣는 일을 반복하는데 그물을 넣을 때에 막걸리를 뿌리는 행위를 한다고 했다.

이 마을에서는 '고시레'라고 하며, 만선을 기원하는 일종의 미신 행위인데 '고수레', '고시레' 등으로 말하고 이것은 우리나라 전역에서 행해지던 오래된 민간 풍습이라고 했다. (물론 행위 방식은 제각각이겠지만......)


풍어제라는 것은 어릴 적 언젠가 교과서에서도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곳에서 풍어제는 요즘 지내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시집을 와서 신기하고 늘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동네 할배 제사'라는 건데 이 제사는 동네마다 기간도 방식도 다 다르지만 이 마을에서는 추석, 설 명절 지나고 1주일 간이 바로 그 '동네할배 제사'기간이라고 한다.

마을의 어촌계장 내외가 실제 제사를 주관하고, 그 기간 동안은 육식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 기간에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이다 보니 생일과 같은 이벤트가 맞물리면 단촐하게 하고 지나가는 분위기가 있다.


처음에는 '동네 할배 제사'라길래

나는 "동네 할아버지 누구?"라고 물었고, 남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몰라."였다.


아마도 산에 산신령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바다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를 '동네 할배'라고 칭하는 구나 싶었다. 실제로 동네 할배가 누구인지는 부모님도 모르신다는 사실.






바닷가에 산다는 것은 늘 불안함을 안고 사는 일인 것 같다.

최근에도 작업 중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이 계시고, 날씨가 사나우면 조업이 위험하니 그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유난히 불안한 일이 생기면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늘 생사가 달려있는 일을 겪으니 그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런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그들에게는 '동네 할배'라는 개념이 생겨난 건 지도 모르겠다.








며칠 전 청소를 하다가 딸아이가 매일 끌어안고 자던 '애착 인형'을 발견했다. 혹여나 여행이라도 가게 되는 날이면 캐리어에 그 인형을 꾸역꾸역 챙기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 아이는 그 인형을 애써 찾지 않는다. 인형보다는 친구를, 그림 그릴 무언가를 찾는다.


올해 2학년이 된 아들은 아직까지도 '애착 이불'에 집착한다. 누더기가 될 때까지 덮을 모양인지 조금이라도 뜯어지면 바로바로 꿰매 달라고 성화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이 참 피곤하기도 했는데, 맞춰주지 않을 수 없으니 요구 사항을 들어주고 이해해주며 키우고 있다.


그런데 그날 그 인형과 이불을 보며 든 생각이 어른들에게도 애착 인형이 필요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애착인형을 가지기엔 민망한 나이가 되고 나니 다른 것에 애착을 만든다.

SNS, 돈, 직업, 종교 등......

그렇게 우리는 애착인형을 다른 모습으로 변신시켜 곁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닐지.


그런 걸 보면 인간은 참 현명하다 싶다.

불안을 다양한 각자의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얼하지 않아도 늘 곁에 있어주는 따뜻한 애착인형이 어른들에게도 필요하다.



살면서 힘든 일을 겪게 되면 처음에는 그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는 구나 싶었다.

며칠 시간이 지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불안해 하는 나'라는 존재가 그 상황과 더불어 나를 힘들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나를 다스리는 일을 가장 우선시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어차피 걸어가야 하는 인생 길

이왕이면 불안에 떨지 않고 하루하루 즐겁게 웃으며 걸어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나의 가장 가까운 '애착 인형'이 되기를 소망한다.


바다 마을에 늘 계신 '동네 할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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