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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되기 위해 필요한 5가지 능력

퇴사한 남편은 어부가 되었다.

by 홍은채





춥고 어두운 겨울도 끝나가는 듯하더니, 풍랑주의보가 발효되었다. 캄캄한 밤, 모두가 잠든 시각에 바다로 출근하는 남편은 궂은 날씨로 인해 휴가를 얻었다.

아작 어린 두 아이는 일터로 나간 아빠의 빈자리를 이런 날에 채운다. 이른 저녁이면 잠든 아빠가 깰까 봐 말소리도 크게 내지 못했던 아이들은 저녁 늦게까지 아빠에게 매달려 놀다가 함께 잠이 들었다.

이런 날은 나에게 주어지는 휴가이기도 하다.

혼자 잘 수 있는 특별한 선물을 주는데, 겨울 방학 동안 아이들 보느라 지쳐버린 내게는 호캉스 못지않은 호사인 것이다. 그 호사를 누리면서 새벽 4시에 눈이 떠져 버리고 말았다.

창 밖에 들리는 비바람 소리가 거칠다. 바람 소리를 배경으로 삼아 어부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어부가 되기 위한 조건 그 첫 번째, 나는 경제력을 꼽았다.

물론 ‘어부’가 되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는 않다. 선원으로 취업하면 그만이다. 취업에는 전혀 돈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최종 목표는 ‘선장’ 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을 모을 줄 알아야 하고, 관리하는 능력을 일찍부터 갖춰야 한다.

그래야 어업을 하겠다는 결심이 섰을 때 주저 없이 배를 구입하고, 어장을 사는 등의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국가에서 시행하는 귀어귀촌청년을 위한 지원제도가 몇 가지 마련되어 있기는 하지만, 나이 제한이 있는 경우도 있고, 예산 한도 내에서 지원이 가능하기에 사업계획서가 채택이 되지 않으면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무조건적으로 기대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여유 자금을 모을 수 있도록 경제관념을 잘 정비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추후에 어업인으로서 자리를 잡은 후에도 매우 필요한 덕목이다.

매일의 판매고가 널뛰듯 하기 때문에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곳간이 넉넉해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필요한 능력은 바로 체력이다.

국어 시간에 나오는 고시조들을 공부하다 보면, 선비들이 어부들의 삶을 참 멋지게 표현한 작품이 많다. ‘유유자적’ 그 자체. 바다 위에서 힐링하는 어부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시를 쓰곤 했나 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현실은 유유자적과는 거리가 멀다.

모든 선원들이 힘을 합쳐 그물을 끌어올려야 하고, 고기를 상자에 담아 들어 올리고 옮길 수 있어야 한다.

‘가구’라고 부르는 노란색 플라스틱 상자는 상자 자체 무게만 해도 꽤 나가기 때문에 힘을 쓸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세 번째 필요한 능력은 순발력이다.

체력과도 겹치는 부분이기도 한 순발력은 일을 하는 내내 요구된다. 어두운 새벽 조업을 하기 때문에 눈으로 보이지 않아도 감각적으로 해내야 되는 순간이 많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순발력이 필요하다. 튀어올라 그물 밖으로 뛰쳐나가는 고기를 뜰채로 잡아 낼 줄도 알아야 하고, 빠른 속도로 밧줄을 묶었다 풀었다 할 수 있어야 한다.

녹화방송이 아닌 라이브 생방송 같은 배 위의 일들은 재방송이나 편집이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자칫하면 물고기를 놓쳐버리거나 혹은 선원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에 순발력 있게 움직이고 판단해야 한다.



네 번째로 어부에게 필요한 능력은 바로 친화력이다.

영업 사원급 친화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처음 어촌에 정착하게 되면 모르는 일 투성이일 것이다. 더욱이 일손을 늘 필요로 하는 어업은 품앗이를 통해 작업해야 하는 일이 많다.

이번에는 우리, 다음에는 그쪽. 이렇게 서로 번갈아 가며 그물을 작업을 돕는다.

친분을 미리 쌓아야 제 때 작업할 인원을 채울 수 있는

것이다.


요즘 어촌에는 외국인 선원 없이는 조업이 힘들다.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온 경력직 선원들이 많다.

남편은 그들끼리의 친목 모임에 참석해 한국어 없이 같이 술도 마시고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했다. 그러면서 베트남어도 조금씩 배우고, 언젠가 선장이 되었을 때 외국인 선원들과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족을 두고 타국의 시골에서 지내는 이들의 애환을 들으며 가끔은 밥을 사주기고 하고 시내로 나갈 일이 있을 때는 차로 태워주기도 하며 친분을 쌓았다.

그랬더니 일손 필요할 때 어색하지 않게 전화로 요청할 수 있고 이제는 마주치기만 해도 농담하는 친구 같은 사이가 되었다.


조업이 끝나면 잡은 고기들을 포터에 싣고 위판장에 가서 대기를 한다. 동절기에는 새벽 5시 30분에 경매가 시작되기 때문에 2-3시간 대기하는 건 우습다.

어민대기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그곳에서 어민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다. 친화력을 발휘해서 선배님들과 친해지면 배울 것들도 많다. 겉이 차가워 보이는 분들이 사실은 속에 정이 많다는 걸 그렇게 마음을 나누면서 알게 되는 것 같다.

초반에는 피곤해서 차에서 대기했다던 남편은 어느덧 위판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삶을 배우고 있다.



어부에게 필요한 능력 다섯 번째, 바로 순응력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이 그럴 것이다. 치킨집도 어떤 날은 손님이 우르르 몰려오는 날이 있고, 발길이 없는 날도 있을 것이다. 어업도 마찬가지이다.

만선을 하는 날이 간혹 있는가 하면 아예 한 마리도 없는 날도 있다. 그래서 어부에게는 평정심을 유지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많이 잡았다고 지나치게 들뜨지 않으려 하고, 없다고 지나치게 실망하려 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이라 그렇다.

궂은 날씨를 원망하지 않고,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를 탓하지 않는다. 해수 온도가 높아져도 그저 묵묵히 순응하며 오늘의 할 일을 할 뿐이다.


요즘 남편은 바다를 터전으로 살며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바다를 남기고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다. 어부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하는 능력을 거창하게 썼지만 그중 가장 필요한 것은 아무래도 바다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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