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설야귀인風雪夜歸人, 최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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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경은 당나라의 관리였다. 수주자사까지 올랐지만, 시를 잘썼다. '별엄사원'을 읽고 감각과 깊이에 놀랐었다. '봉설숙부용산주인'은 겨우 스무글자의 오언시다. 순간을 잡아내는 능력이 놀랍다. 열린 전개는 여러 이야기를 품게 만들었다. 인물마다, 사물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차가운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逢雪宿芙蓉山主人 눈을 만나 부용산에 묵으며 / 劉長卿(유장경)
日暮蒼山遠 해가 떨어지니 푸른산이 어둠에 덮혀간다.
天寒白屋貧 추위가 매서워 초가에서 몸을 녹인다.
柴門聞犬吠 사립문에 개가 짖는다.
風雪夜歸人 눈보라 치는 이 밤, 누가 오나보다.
(봉설숙부용산주인, 일모창신원, 천한백옥빈, 시문문견폐, 풍설야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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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눈에 보이는 것만 같다. 화가들은 시를 그렸다. 여러 그림이 있었지만, 최북의 '풍설야귀인'을 당해낼 그림이 없었다. 최북의 그림은 시의 내용와 달리 사람이 주막에 들어오지 않는다. 주막을 지나 산으로 걷는다.
화자는 주막에 짐을 풀었다. 몸이 노곤해졌다. 삽살개 짖는 소리에 빼꼼 문을 열어본다. 늙은 선비와 초동은 겨울바람을 맞으며 주막을 지나고 있다. 센바람이 큰나무 가지마저 휘어버린다. 산에 푸른기가 돌면서 밤이 내려 앉고 있다. 눈이 올 듯 하늘은 무겁다. 눈이 올지, 바람이 그칠지 알 순 없다. 선비에게는 가야할 길이 있고, 나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다. 컹컹 짖는 소리마저 바람소리에 묻힌다. 선비와 초동은 이 밤을, 이 바람을 어떻게 건너갔을까.
최북은 이 그림을 '지두화'로 그렸다한다. 손가락과 손톱으로 그린 필력이 놀랍다. 배경을 눈구름으로 어둡게 처리하고, 눈의 질감을 여백으로 두툼하게 그려냈다. 막 접어드는 밤을 군데군데 내려앉은 어둠으로 표현했다. 바람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풀도, 큰 나무도 바람에 휘어 있다. 지팡이를 끌고가는 늙은 선비로 바람이 도드라진다. 과감한 글씨와 낙관도 최북의 호쾌함을 단번에 보여준다.
대부분의 글이 최북의 기행에 집중한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아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