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돈 < 목숨은 하나
2021년 여름 혀니는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며 25층 옥상에서 줄을 내리고 있었다
그 아파트 옥상은 평평한 옥상구조에 스테인리스 난간(핸드레일)이 설치되어 있는 혀니가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의 옥상구조였다
오늘도 4세대가 목표다
혀니가 하는 일은 구축아파트의 창호주위(창틀실리콘)의 낡은 실리콘을 제거하고 보수하는 일이다
아파트만 전문적으로 전단지 광고를 진행하는 전문업체의 일을 사주받아 업체와 6:4 비율로 이윤을 가져간다
광고를 진행하고 오더를 내리는 업체가 60%, 실리콘을 사서 밧줄을 내리고 재보수 시공을 하는 혀니는 40%의 수익을 가져간다
시공 옵션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실리콘이 망가진 부분만을 제거하고 창틀을 메우는 부분제거 시공
하나는 실리콘 대부분 제거하는 전체제거 시공 방법 두 가지가 있다
혀니가 오늘 받은 오더는 부분제거하는 4세대이다
오늘도 막말로 *빠지게 움직여야 가능한 작업량이다
이렇게 하지 않고선 지난번 사업 때 차곡차곡 쌓인 빚을 정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는 형님의 소개로 이 업체일을 시작한 지 1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어지간한 빚은 정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겨울이 오기 전까지 나머지 빚을 정리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그날도 전투적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핸드레일에 매달려 아래를 내려다본다
실외기 자리 외에도 베란다 난간에 드문드문 매달려 있는 에어컨 실외기는 밧줄을 내리는데 또 하나의 장애물이다
첫 로프를 길게 내렸다(원래 로프는 지면에서 50~100센티미터 짧게 내린다 물론 바람이 불지 않아야 함)
첫 로프를 길게 내린 이유는 이런 핸드레일이 설치된 옥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 이유는 첫 줄 작업이 끝나고 두 번째, 세 번째 줄 작업 시에 로프를 간단히 고정해도 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방법은 기술자들 사이에서도 그다지 추천하는 방법은 아니다
예전 나와 함께 지방의 어느 관공서 작업을 함께 하던 동생이 이 방법으로 작업을 하다 3층에서 추락하여 척추가 3군데나 으스러진 적이 있다(척추 대수술을 수차례하고 장시간 입원)
하지만 빚을 감당하기 위해 다시 로프를 잡은 혀니는 이런 것에 연연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안전한 작업을 위해 매뉴얼대로 작업을 진행하면 하루 3세대 작업은 택도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줄을 탈 때 사고가 난다
첫 줄을 옆으로 당겨 나름 2중 결속을 하였는데 문제는 스테인리스 용접부위가 떨어져 버린 것이다
80킬로에 육박한 혀니의 몸무게와 로프에 매달고 내려간 자재와 장비 무게 10여 킬로그램이 작업을 마치고 하강할 때 받는 로프의 무게는 200킬로 그램에 육박한다
18층 시공세대 작업을 마치고 하강할 때였다
갑자기 아래로 빠르게 몸이 하강했다(옥상에서 끊어진 핸드레일로 인해 첫 줄에서 세 번째 줄까지 당겨진 10여 미터의 길이만큼)
문제는 안전을 위한 보조로프(안전벨트와 연결된 보조로프는 갑작스러운 추락 시 인명의 추락을 보조한다 하지만 벨트에 오래 매달려 있게 된다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안전요원이 상시 지켜보고 구조대가 가까이 있지 않다면…)를 내리지 않은 것이다
18층에서 5층까지 추락한다
80킬로의 몸뚱이는 좌측으로 급격하게 쏠리며 몇십 미터를 급강하며 좌측으로 쏠리는가 싶더니 우측으로, 또다시 좌측으로 춤을 추듯 아래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아~ 이렇게 죽는 거구나!’
추락하는 로프를 두 팔로 꽉 잡은 혀니는 양 손바닥에 불이 나는 것도 느끼지 못 한 채 로프 사고가 이런 거구나를 되뇌며
‘그냥 빨리 끝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떨어지는 그 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그 느낌이 너무 공포스럽고 괴로웠다
그렇게 정신없이 추락하던 몸뚱이는 거실 베란다에 설치된 실외기 사이에 로프가 끼이면서 추락이 멈춘다
다행히 정신을 잃지 않았던 혀니는 손발을 먼저 움직여 본다
척추가 부러지거나 했으면 몸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을 테다
다행히 안전모는 착용한 상태여서 머리에 부상은 입질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린 혀니는 지면으로 살살 내려온다
‘오~ 하느님! 엄마 감사합니다!’
엄마는 위험한 일을 하는 아들을 위해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하신다는 걸 혀니는 안다
지면에 내려와 몸의 이곳저곳을 확인했다
장갑이 줄에 미끄러지는 마찰로 타버린 상태로 양 손바닥엔 심한 화상을 입었다
위 이야기는 바로 아래 친동생이 몇 년 전 겪은 실화입니다
저 역시 20년이 넘는 기간의 현장일을 하면서 몇 명의 동료들이 다치거나 사망한 경우가 몇 차례 있습니다
내 가족에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지만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요
이 사건이 있고 얼마 뒤에 소식을 접한 나는 ‘어쩌다 공무원’ 자리를 박차고 나옵니다
동생과 함께 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고, 어쩌다 정치판에 끼인 나 자신을 돌아봤을 때, 떠나야 할 때임을 직감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