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19화
J는 나에게는 특별한 제자이다.
교직에 들어선 2007년, 5학년 담임을 맡았다. 그때 J는 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남자아이였다. 적당히 개구쟁이에 공부도 그럭저럭 했던 보통의 아이.
열정은 넘쳤으나 요령이 부족했던 그 해의 끝자락. 크리스마스이브 날이었다. 갑자기 J어머니께서 전화를 주셨다. 울음으로 잘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J를 집으로 보내달라는 말씀이셨다. 타지에서 일하시던 J의 아버지께서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던 것이다.
내가 그 당시에 어떻게 행동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깜짝 놀랐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23살의 나는 선생님이었지만 누군가의 죽음에 익숙하지 않은 20대 초반의 아가씨였으니까. 아이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넸는지, 어떤 당부의 말을 했는지도 생각나지 않는다. 아마도 부랴부랴 정신없이 집으로 보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먼 타지였어도 J 아버님의 장례식장에 갔었을 텐데, 그 당시 나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차도 없고, 크리스마스 이브라 뮤지컬 티켓이 예매되어 있었고, 가지 못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야 했었다. 그때 J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던 일은 20년 가까이 교직 생활을 하며 가장 후회되는 일이다.
그다음 해, 나는 6학년 담임이 되었다. J는 내 옆반이라 오며 가며 복도에서 자주 마주쳤다. 나는 J가 신경 쓰였고, 안쓰러웠다. 작년과 다르게 굉장히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보통의 남자아이가 아니라 침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이가 되었다. 좋게 말하면 의젓해진 것 같고, 나쁘게 말하면 우울해 보였다.
나는 J와 마주칠 때마다 안부를 물어봐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어깨동무를 하며 이야기를 했다. 더 멋있어졌다며, 키가 컸다며, 선생님 생각 안 나냐며, 시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며 말이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J는 졸업을 했다.
바쁘게 살다 보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나는 꽤 능숙한 선생님이 되었다. 내가 학급을 잘 운영할수록 첫 해 아이들이 생각났다. 어설펐던 내 가르침을 받았던 아이들. 학급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이것저것 시도만 하다 끝난 해. 첫사랑만큼이나 첫 제자들 생각이 많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J에게서 연락이 왔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벌써 결혼을 한다고? 깜짝 놀라 물어보니 직업군인이었던 J는 같은 직업군의 여자친구와 일찍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직업이 안정적이고 상대방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일찍 자리를 잡은 것 같았다.
오랜만에 본 J는 키가 엄청 커 있었다. 듬직한 덩치에 어색했다가 어린 시절 얼굴이 남아 있어 반가웠다. 참 묘했다. 제자의 결혼식을 보는 건 처음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음에 항상 남아있던 J여서 더 그랬던 것 같다. J는 너무 멋지게 자라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고, 하나의 가정을 꾸렸다. 그리고 1년 뒤 귀여운 아이를 낳고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
아주 가끔 문자 연락을 하고, 카톡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J가 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이를 한 명 더 낳고 더 바쁘게 사는 것 같았다. 좋은 아빠고, 좋은 남편으로 열심히 살고 있는 J모습이 자랑스러웠다. 내가 왜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기분이 들었다. 마치 내 자식처럼... 몇 살 차이도 나지 않는데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J에게서 전화가 왔다. 저녁 상을 치우고 식탁에 앉아 쉬려던 참이었다. J는 PD수첩 '아무도 그 학부모를 막을 수 없다' 편을 보고 선생님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고 한다.
"선생님은 괜찮으시죠?"
그 한 마디에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아이는 자라서 이제는 나를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걸 보고 나를 떠올려 준 것도 고마웠다.
"그럼, 선생님 잘 지내. 걱정 마."
애써 밝게 웃으며, J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끊었다.
그날 저녁은 내가 선생님이라는 게 참 좋았다. 누군가가 나를 오랜 시간 생각해주고 걱정해준다는 게 감사했다. 그게 선생님이 아니라면 가능할까 싶다. 아마 연락은 안 해도 나라는 선생님을 생각하고 있는 제자들이 더 있겠지. 그 생각만으로 마음이 든든해지고, 인생을 잘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교사 생활이 힘들다. 점점 보람을 느끼기 어렵고, 아이들은 가르치기 힘들고. 민원은 많고 해야 할 업무는 늘어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라는 직업이 좋다. J 같은 제자를 만날 수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기억될 수 있는 직업이니까.
내 특별한 첫 제자, J의 삶을 언제나 응원한다.
나를 만난 모든 제자들의 삶을 응원한다.
앞으로 만날 나의 제자들의 삶을 응원한다.
나의 남은 교사 생활을 응원한다. 힘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