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18화
나는 오랫동안 6학년을 하지 않았다.
내 마지막 6학년은 2011년도.
사실 그 해는 나에게 힘든 해였다. 내 가르침이 아이들에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아 교사로서 자존감이 낮아졌던 시기였으니까. 그래서일까. 그 후로 6학년을 하기가 조금은 두렵다.
나는 약간 유치한 면이 있다. 흉내를 잘 내고 몸개그도 하는 편이다. 내가 유치한 농담을 하면 웃으면서 받아주는 아이들이 있는 반면, '뭔 이런 유치한 말을 한대.'라는 표정으로 비웃는 아이들이 있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2011년도에는 후자인 아이들이 많았다.
그 당시 반에서 가장 시니컬했던 남자아이는 B였다.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아이였다. B는 아이답지 않은 냉철함과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논리로 어른까지 이겨버리는 아이였기에 사춘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 눈에는 멋져 보였나 보다. 점점 그 아이를 중심으로 냉소적인 분위기가 반 전체로 퍼져갔다. 뭘 해도 시큰둥, 배려와 협동보다는 자기 이익을 생각하는 아이들이 늘어갔다.
도덕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등산하던 중 친구가 물을 다 마셔서 나눠줘야 하는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치 판단을 하는 시간이었다. 처음에 아이들의 의견을 듣고, 서로 토론을 하고 의견을 나눈 후 다시 자신의 의견을 세워보는 활동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대부분 친구를 위해 물을 나눠준다는 의견이 많았다. 한 7대 3?
하지만 B가 의견을 이야기한 후로는 반대로 뒤집혔다.
아직도 생생히 기억난다. B의 말이.
"물을 조절해서 먹지 못한 친구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기 위해서는 물을 나눠주지 않아야 합니다. 물을 나눠주면 당연하게 생각해서 다음에 또 그렇게 할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아껴 먹은 나만 억울해집니다."
와. 너무 말을 잘하지 않는가.
아이들은 B 논리에 반박하지 못했고 대부분 나눠주지 않는다는 가치 판단을 선택했다.
B가 한 말이 틀린 건 아니다. 하지만 B 말대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우리 사회는 너무 각박해지지 않을까. 내가 손해 보더라도 남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 건데. 그게 꼭 억울한 일만은 아닌데.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아무리 잘나도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올 거라는 걸 B는 모르겠지.
도덕 시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교과 시간에서 B는 냉정하면서 차가운 선택을 자주 했다.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였지만 나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선택일 때가 많았다. 그게 어른 입장에서는 보였으나 아이들 눈에는 쿨 해 보이고 멋져 보이는 게 문제였다.
이렇게 우리 반은 B에게 물들어갔다. 특히 남자아이들이. 다들 어찌나 쿨하고 냉소적이던지. 수업을 하면서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느낌이었다. 선생님인 내가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긴장을 놓지 못했다.
그래도 나에게는 E가 있었다. E는 B처럼 공부를 잘하고, 운동도 잘하는 매력적인 남자아이였다. 도덕 시간에 B 의견을 듣고 마음을 바꾼 친구들과 다르게 E는 처음 자기 의견을 고수했다. 친구를 위해 물을 나눠주겠다는 선택으로.
"어려움에 처한 친구를 도와주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나중에 나도 도움을 받을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E는 B와 반대되는 의견을 발표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E는 꿋꿋이 다른 사람을 위한 마음 따뜻한 선택을 했다. 만약 그 친구까지 B를 따라갔다면 우리 반은 10대 0으로 물을 나눠주지 않겠다고 수업이 끝났을 수도 있다.
수학 시간에 내가 계산 실수를 하거나 채점을 잘못해도 조용히 와서 말해주고 가는 배려심이 있는 E. 이 친구가 있어서 살얼음판이었던 그 해에 나름 숨을 쉬었던 것 같다.
B에 대한 이야기가 가득했지만, 이 글의 주인공은 E다.
그 해 나를 버티게 했던 아이.
교육의 의도를 알고 배움에 임했던 아이.
모두를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아이.
E야, 선생님이 그때 정말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