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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그런 사이니까.

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16화

by 정감있는 그녀


남녀만 궁합이 있는 게 아니다.

선생님과 학생 사이에도 궁합이 존재한다.


해마다 내 농담에 유독 더 웃어주고, 선생님 수업은 재밌다고 해주는 아이들을 만난다. 그런 친구들은 내가 운영하는 학급 경영에 잘 적응하고 편안해하며, 더 많이 성장해서 기특함을 준다. 내가 뭘 딱히 하지 않아도 나라는 선생님을 좋아하고 따른다. 그런 친구들이 유난히 많은 해는 반 아이들도 나도 행복한 1년을 보내게 된다.


나에게 2020년은 그런 해였다. 아이들과의 시간이 좋아, 아이들과 함께한 활동을 기억하고 싶어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게 된 해기도 하다. 그 해 반장이었던 B는 나와의 궁합이 참 좋았다.


교사도 사람이기에 아무리 공정한 시선을 가지려고 해도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다. 취향이 있고, 호불호가 있기에 균형을 잡고 가르치려고 해도 유달리 더 예뻐 보이고 칭찬해주고 싶은 친구가 있다. 그건 그 아이가 아무 이유 없이 예쁘다기보다는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나 내가 좋아하는 면을 가지고 있을 때 나오는 것 같다.


나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보다 밝고 쾌활한 아이와 잘 맞는다. 너무 예의를 차리는 것보다 적절하게 나와 농담 주고받기가 가능한 친구들과의 대화를 좋아한다. 틀리더라도 못하더라도 자신 있게 말하고 행동하는 친구가 실수를 줄이기 위해 완벽을 기하기 위해 신중하게 행동하는 친구보다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장점이 확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는 반면, 내 개인적인 취향이 담긴 시선을 내려놓아야 장점이 보이는 아이도 있다. 반대로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단점도 내가 신경 쓰이지 않는 부분이냐 아니냐에 따라 잔소리 정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B와 나의 관계는 학기 초부터 좋았다. B의 적절한 쾌활함이 좋았고, 수업 시간에는 진지한 모습으로 참여하는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놀 때 놀고, 공부할 때 공부하는 모습이 멋졌다. 글씨를 바르게 쓰고, 정리를 좋아하는 아이여서 내가 하는 글쓰기나 노트 정리 활동에 잘 따라왔다.


B는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학급에 잘 적응했고, 나 또한 B에게 잔소리하거나 지적할 일은 거의 없었다. B도 단점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고쳐야 할 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시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기특한 점, 칭찬해주고 싶은 점이 많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B는 나를 참 좋아해 줬다. 내가 하는 활동마다 재밌다고 해주고, 열심히 하고 즐겁게 해 줘서 나도 참 고마웠다. 우리는 윈윈 관계였다. 서로의 자존감을 올려주는 사이. B는 학기 초보다 더 밝아지고 더 여유로워졌으며, 친구들에게도 점점 인정받는 아이가 되었다.


그렇게 행복한 1년을 보내고, 종업식 날. B는 나에게 편지를 써 왔다. 그런데 편지가 두 통이다. B 어머니께서도 편지를 써 주신 것이다. 편지 내용을 보니 올해처럼 아이가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한 적이 없다고 선생님 덕분이라고 감사하다는 말이 담겨 있었다.


항상 잘 지냈을 거라 생각했던 B는 3학년 때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힘들었다고 한다. 나와 함께 4학년 생활을 하며 학교 생활도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아졌단다. 그게 어머니 눈에도 보일만큼. 정성이 담긴 손 편지에 마음이 뭉클했다. 내가 뭘 한 게 없는데... 나 또한 B가 우리 반에 있어서 좋았는데. 내가 오히려 더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그 사람과 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 때, 그런 인간관계를 만나면 참 행복하다. B와 나의 관계가 그러했다.


2년이 지나고 6학년 졸업식 날, B와 B 어머니께서는 졸업식이 끝나고 나를 찾아와 주셨다. B가 나와 사진을 꼭 찍고 싶다고 해서 뵈러 왔다며 B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B는 2020년을 잊지 않고 있었나 보다.


교실을 청소하느라 츄리닝 차림이었던 나는 어정쩡하게 B 옆에 서서 포즈를 취했다.

"선생님 츄리닝 차림이라 미안하다야~"

2년 전처럼 농담을 던지자, B가 대답했다.

"다 예뻐요. 다!"

그래. 우리 이런 관계였지.

어정쩡한 포즈가 자연스러워지고, 사진용 웃음이 아닌 진짜 내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B는 초등학교를 떠나 중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B는 나를 기억할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 이렇게 그 해를 그리워하고 B를 떠올리듯이, B도 4학년 시절을 그리워하고 나를 떠올릴 것이다.

우린 그런 사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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