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만난 예쁜 아이들 14화
6학년 담임을 한 다음 해, 1학년 담임을 처음 하게 되었다.
초등학교의 양 끝이었던 6학년과 1학년은 정말로 하늘과 땅 차이었다. 교사가 말을 하면 척척 해내는 6학년 아이들과 다르게, 1학년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봐주고 도와줘야 했다. 1학년을 처음 맡은 해였던 2012년, 특히 3월은 나에게 멘붕으로 기억되는 시간이다.
고학년을 가르치다가 저학년을 하게 되면 교사도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쉽게 설명해야 했다.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해 천천히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해줘야 한다. 말투도 더 친절해야 했다. 조금만 무뚝뚝해도 화가 났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이 있어서 의식적으로 더 웃으며 말했다. 웃지 않으면 화나보이는 내 인상도 한몫했겠지만.
"얘들아, 세로로 넣어야 해요."
"선생님, 세로가 뭐예요?"
책상 서랍에 교과서를 마구잡이로 넣는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세로와 가로라는 표현을 썼는데, 아이들은 세로라는 표현조차도 몰랐다. 어? 세로를 세로라고 해야 하는데,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당시 나는 세로라는 표현을 말로 설명해 주려고 애썼는데, 이제는 안다. 실물자료로 보여주면 된다는 것을.
그때부터 나는 실물화상기를 사랑하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바로바로 시범을 보여주고 예시를 보여줄 수 있는 실물화상기는 나에게는 필수품이다.
1학년은 청소할 때도 참 달랐다. 책상을 뒤로 다 미는데 1분도 걸리지 않는 6학년과 다르게 1학년은 책상을 조금 움직이는 것조차도 낑낑대며 힘들어했다.
'아, 대청소는 무리구나. 그냥 자기 책상 아래만 쓸라고 해야겠다.'
1학년 초짜 선생님은 경험을 통해 하나둘씩 1학년에 대해 배워갔다. 가르쳐야 할 교육과정은 잘 알고 있었지만, 아이들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가늠해서 가르치는 데 참 미숙했던 날들이었다.
고학년과 저학년 차이는 점심시간에서 가장 많이 났다. 척척 먹는 고학년과 다르게 저학년 점심시간은 아이들을 챙기느라 교사는 밥을 제대로 먹기 힘든 시간이었다. 숟가락이나 젓가락이 떨어지면 고학년은 알아서 처리한다. 하지만 저학년은 가만히 앉아 울면서 교사의 도움을 기다린다. 괜찮다고 위로해 주며, 숟가락과 젓가락이 떨어졌을 경우 이렇게 대처하면 된다고 알려준다. 알려주면 스스로 하는 친구도 있지만, 알려줘도 다음에 같은 상황에서 여전히 울고만 있는 친구도 있었다. 친절한 반복학습, 인내심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이런저런 도움을 주고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국이나 밥은 식어 있다. 식은 밥과 국을 급하게 먹으며 아이들을 바라보는 데 이런 생각이 스쳤다.
'아, 저학년 선생님들의 이런 섬세한 지도 덕분에 고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다 할 수 있었던 거구나.'
고학년 친구들의 행동 하나하나는 저절로 된 게 아니었다. 저학년 선생님의 섬세하고 반복적인 지도 덕분이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긴 모든 것들이 그분들의 노고였음을 1학년 담임을 맡고서야 알게 되었다.
짜요짜요 같은 후식이 나오는 날이면 더 정신없다. 밥을 먹다 말고 나에게 오는 아이들 때문에 그런 날은 밥을 제대로 먹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나중에는 짜요짜요가 나오는 날이면 가위를 가져가기도 하고, 밥 먹기 전에 한 바퀴 돌며 아이들 후식을 미리 까주기도 하는 등 노하우가 생기긴 했다. 역시 경험이 최고다. 나는 점점 당황스러운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이 올라갔다. 점점 1학년 선생님스러워졌다.
내가 1학년을 맡았을 때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은 우유와 관련된 것이었다. 6학년 친구들은 10초 만에 마시는 우유를 30분 동안 먹다가 책상과 가방에 우유를 쏟았을 때, 우유를 먹고 속이 안 좋아 교실 바닥에 토했을 때. (아니면 책상에 토하기도 하고, 친구 가방에 토하기도 하고.)
쏟은 건 어떻게든 치우겠는데, 토한 걸 치우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아이를 키워본 지금은 당황하지 않고 잘 해결하겠지만, 아가씨 선생님이었던 그때의 나는 우유 냄새와 섞인 아이의 토사물을 치우는 일이 정말로 어려웠다. 그래도 어른이고 교사니까 내색하지 않고 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난리가 났다. "으~냄새 나." 하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토사물 근처의 친구들은 다른 곳으로 도망가고, 토사물이 가방에 묻었다고 우는 아이도 있고. 뻔한 표현이지만 토를 한 순간부터 교실은 카오스 상태가 돼버렸다. 아이들 난리를 진정시키며, 토한 친구가 부끄럽지 않도록 누구나 속이 안 좋으면 토할 수 있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손은 바쁘게 토사물을 닦아 비닐봉지에 담았다. 냄새를 최대한 맡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그 순간, 고사리 같은 손이 쓱 들어왔다. 아무도 가까이 오지 않으려고 했던 곳에 D는 휴지를 들고 와 나랑 같이 닦기 시작했다.
"어? 선생님이 할게요. 자리에 가 있어."
"도와드릴게요. 선생님."
세상에, 이런 아이가 다 있다니. D는 부족한 휴지를 가져다주기도 하고, 내가 닦은 부분을 다시 깨끗이 닦으면서 나를 살뜰히 도와줬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도와주었던 D가 내 눈에는 천사처럼 보였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는 이 작은 아이 앞에서 토사물을 치우면서 속이 울렁거렸던 내가 부끄러웠다.
"고마워, D야. 덕분에 선생님이 빨리 치울 수 있었어."
D덕분에 상황은 금방 종료되었고, D의 모습을 보며 난리를 피우던 아이들도 조금씩 진정되었다. 어쩌면 나와 똑같이 속으로 부끄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더럽다고 난리를 피우는 나와 다르게 저 친구는 선생님을 도와드리는구나 하며.
그 뒤로도 토하는 사건은 종종 발생했다. (반에 잘 토하는 학생이 있으면, 한 두 달에 한 번은 토사물을 치워야 했다.) 그때마다 D는 도와주었고, D를 따라 화장지를 들고 도와주는 친구들도 한두 명씩 생겼다. 작은 천사의 힘은 대단했다. 아이들을 변화시켰고, 미숙했던 초보 선생님에게도 힘이 되어 주었으니까.
그 뒤로 1학년을 여러 번 맡으면서 나는 1학년에 능숙한 교사가 되었다. 1학년 아이들 수준에 맞게 설명을 할 수 있고, 점심시간도 수월하게 지도한다. 우유를 쏟는 일? 토하는 일? 거뜬하다. 똥, 오줌도 치워봐서 토하는 것쯤이야 아무 일도 아니다.
그 후로 여러 번 저학년을 했지만, D 같은 아이를 또 만나지는 못했다. 내가 휴지를 가지고 와달라고 부탁해야 움직이지, 스스로 나서서 도와주는 아이는 없었다. 그래서 D가 더 특별하다. 오래오래 기억하게 된다. 나에게 D는 미숙했던 초짜 선생님을 도와주기 위해 우리 반으로 온 작은 천사였다. 작지만 야무진 그 손을 어찌 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