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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으로 체육을 선택한 이유

1년을 되돌아보는 교단일기 3화

by 정감있는 그녀




올해 나는 2번의 공개수업이 예정되어 있었다.

첫 번째는 동료 선생님들에게 공개하는 동료장학수업.

두 번째는 학부모님에게 공개하는 학부모 공개수업.


나는 국어 교과로 공개수업 하는 것을 아한다. 평소 수업 모습대로 공개수업을 하는 편이고, 특별한 자료 없이 루틴대로 수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루틴을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수업이 국어 시간이라 주로 국어 교과를 공개수업으로 선택했다.


하지만 올해에는 체육 교과를 선택했다. 내 선호와 상관없이 우리 반 한 여학생 때문이었다.





여학생 H는 선택적 함묵증이다. 친구들과 이야기는 하지만 수업 시간에는 절대 발표를 하지 않는다. 자리에 앉아서 게임하는 모둠활동은 하지만, 발표를 전제로 하는 역할극이나 노래 활동은 모둠활동조차도 참여하지 않는다. 발표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내키지 않는 활동이면 침묵과 부동으로 일관해 아이들과 교사를 당황하게 만든다.


수업 참여야 그렇다 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문제가 생겼을 때 말을 하지 않고 울음을 터뜨린다는 거였다. 그때는 친구든 교사든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는다. 그저 큰 소리로 울기만 한다. 자신에게 필요한 부분을 교사에게 말을 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H는 울음을 터뜨려 주변 사람들이 눈치껏 알아서 문제를 해결해줘야 한다.


글을 써서 표현하라고도 해봤다. 왜 우는지 내가 추측한 이유를 H에게 말하고 맞으면 고개를 끄덕여달라고 사정도 해봤다. 하지만 아이는 그저 울기만 했다. 그 시간 동안 수업은 지체되었고 그 피해는 반 아이들이 봤다.


수학 시간, 수학 익힘책을 풀 시간을 주었으나 아직 풀지 못한 친구들이 많이 있었다. 그래서 못한 사람은 숙제로 해오도록 안내를 했다. 그 순간 H의 울음이 터졌다.

"으아아아앙~~"

"왜? 무슨 일이야?"

"몰라요. 그냥 갑자기 울었는데요. 저희 아무 일 없었는데..."

같은 모둠 친구들은 당황해서 H를 다독거렸다. 그럴수록 H는 더 많이 소리를 내며 울었다.

나중에 학부모님과 통화해 보니 수학익힘책을 시간 내에 풀지 못해서 울었다고 한다.


영어 수행평가 시간에도 문제가 생겼다. 듣기 평가를 봐야 하는데, 불안이 올라간 H는 그 자리에서 울음을 크게 터뜨려 버렸다. H의 울음으로 인해 다른 아이들은 평가에 방해를 받았다. 영어 선생님께서는 진정을 시키려고 했지만 아이는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복도에 잠깐 나가게 되었고, 나중에 H만 듣기 평가를 따로 봤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고 H는 혼자서 조용히 평가를 본 것이다.


예민함과 불안감이 있다고 하나 울음이 무기가 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기 싫은 활동은 울어서 피하고, 하고 싶은 활동은 참여하니 말이다. 다른 아이들 입장에서 불공평하게 느껴지는 상황이 점점 늘어갔다.


수업 시간 중 어느 포인트에서 H의 불안도가 올라갈지 예측 수 없었다. 문제가 생기면 울기만 하고 소통이 되지 않아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는 수업시간을 찾아야 했다. 공개수업 때 이 친구가 울면 그대로 수업은 진행이 안되기에.


H는 체육을 좋아했다. 다른 교과 모둠활동 발표는 안 하지만 체육 모둠별 게임에는 별 거부 없이 참여했다. 한 번도 해본적이 없어 고민하다 공개수업을 체육 교과로 정했다.

H가 즐겁게 수업하기를 바라면서.

H의 울음이 터지지 않고 무사히 수업을 끝내길 바라면서.


수업 결과는?

내 예측대로 H는 울지 않았다. 수업은 생각보다 만족스러웠다. 운동장 수업이라 관리자 한 분만 오셨고, 참관하는 선생님도 없었다. 아이들이 멀리 퍼져서 연습했기에 나도 넓은 운동장을 다니느라 정신없이 수업했다. 마지막에 모여서 생각, 느낌을 나누고 정리체조까지 하고 나니 '이거 공개수업 맞나?' 는 생각도 들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했던 체육 공개 수업이었는데, 의외로 좋았다. 이걸 H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도전은 성공적이었다. 걱정했던 게 민망할 만큼.

체육 공개수업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졌고, 다른 교과들도 공개수업으로 해 볼까 라는 도전의식이 생겼다.





그 뒤로도 H는 많이도 울었다. 예측하지 못하는 순간에 울음을 터뜨렸다. 등교 거부도 있었다. 수업 진행이 되지 않아 교감선생님까지 불러야 했다. 그래도 시간의 힘은 대단했다. 나도 우리 반 아이들도 H의 성향을 이해했고, H도 우리 반 규칙과 수업 스타일에 익숙해지면서 안정되었다. 2학기 초 최고조였던 H의 울음이 조금씩 뜸해졌다.


그러나 이 뜸해진 울음이 나아졌다는 신호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에게 맞춰졌을 뿐. 익숙해졌을 뿐.

4학년이 되면 새로운 환경에 불안도가 올라가고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1년 동안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가르치고, 학부모 상담도 자주 했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전문적인 상담을 권했지만, 학부모님은 아이가 원치 않는다며 하지 않으셨다.(2학년 담임 선생님도 권했다고 했는데 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좀 더 기다려주고 싶다는 말에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모의 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말 어쩌면 늦게 피는 꽃일 수도 있기에. 나중에 이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기에.


하지만 기다려주고 싶다는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나는 우리 반 아이들 얼굴이 떠올랐다.

등교 거부하는 아이를 데리고 오느라 아침활동 시간에 교사 없이 있어야 했던 우리 반 아이들.

갑자기 터진 울음에 수업을 방해받아야 했던 아이들.

H가 하기 싫다면 그 친구 몫까지 맡아서 했던 아이들.


H를 기다려줄 수 있었던 건 우리 반 아이들의 이해와 배려 덕분이었다. H도 H 학부모님도 이 점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내년에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불편한 문제를 더 현명하게 해결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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