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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바꾸는 건 규칙도 철학도 아닌 내 안의 가정이다

AI 시대도 다정한 리더가 이긴다

by 준작가

넷플릭스 예능 데블스 플랜 시즌 2를 보면 현규님은 게임 초반부터 다른 참가자들을 쉽게 의심하고 늘 방어적인 태도로 게임에 임하는 캐릭터를 볼 수 있다. 그는 주위에 정보를 공유하는 것에 인색하였고, 그의 태도와 행동에는 다른 멤버들과 동맹을 맺는다 하더라도 언제든 배신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러한 그의 '기본 가정'은 그가 플레이하는 방향성과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치며 연속해서 게임에서 이기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생존에 유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연합을 맺은 참가자에게 도를 넘는 발언들이 눈에 띄게 나타났고, 비아냥 거리는 언행이 지속적으로 포착되면서 해당 동료에게 신뢰를 잃고 동시에 시청자들로부터는 비판을 받아 결국 사과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반면 참가자들과 신뢰를 구축하며 거침없는 도전을 펼치는 캐릭터 세돌님은 가장 눈에 띄는 캐릭터 중 하나이다. 첫 메인 매치에서 지영님이 감옥에 가는 것에 대신 책임감을 느끼고 면제권을 주는 행동은 신뢰 관계를 중시하는 '기본 가정'과 정직과 공정, 책임이라는 가치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강자에게 손을 내밀고 따르는 것은 누구나 하기 쉬운 사람의 생존 본능에 가깝다. 그러나 약자에게 내가 희생할 수 있고 양보하겠다는 배려와 포용은 인간의 본능을 극복한 무거운 노력이다. 결국 개인플레이어의 강점과 더해 강자로서 견제를 받게 되었지만, 이러한 사람 냄새가 나는 모습은 참가자들에게 서로를 적으로 보던 시선을 잠시 완화시키기도 했다.


이처럼 조직문화는 눈에 보이는 제도, 시스템 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만들어진 규칙에 주목하기보다 그 규칙에 숨어 있는 방향성과 가치를 발견하는 것, 한 발 더 나아가 그 규칙을 만들 때 어떤 ‘기본 가정’을 전제로 만들었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조직 구성원을 의심하고 있는지, 또는 그들과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지를 말이다.


다음은 에드거 샤인이 정의한 조직문화의 세 가지 차원을 도식화한 것이다.


에드거 샤인은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조직을 움직이게 한다는 관점에서 조직문화의 세 가지 차원 중 '기본 가정'을 강조했다.

'조직문화는 조직 구성원들이 환경에 적응하고 구성원끼리 협력하는 과정에서 학습한 '당연한 전제'이자, 보이지 않는 룰로써 인식되는 것이다.'


실제 입사 초기를 떠올려보면 인사팀에서 제공한 매뉴얼이나 조직의 비전, 가치 자료들로는 조직문화를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보다 지도선배의 말투, 피드백 방식, 미팅 중 말하는 태도에서 조직의 분위기를 파악했을 것이다. 조직 문화는 전략적 선언문이 아니라 구성원이 일하면서 부딪히고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체득한 문제 해결 방식의 전체를 포괄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조직문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위 그림의 심층 영역 중 윗부분 ‘방향성’을 떠올리며 조직의 방향성은 리더십에서 주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와는 멀리 떨어져 있는 윗선의 영역이고 그들의 문제라고 여기곤 한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표면층에 해당하는 ‘겉으로 드러나는 문화’를 가지고 조직문화 수준을 평가한다.

"우리 회사는 이런 제도가 문제야. 아니 시스템이 복잡해. 일하는 방식 자체가.."

그러나 우리가 보고도 못 본 척하고 하더라도 막 하는 모습들, 우리가 눈감아주고 그냥 하던 대로 하는 나와 당신의 소소한 모습들이 이 모든 것들을 역전시킬 수 있는 '기본 가정'임은 경시하고 있다.


위의 세 가지 차원을 일관성 있게 가져갈 때 건강한 조직문화가 형성된다. 이를 완성하는 Key는 바로 나와 당신의 태도, 행동, 말투이다. 조직을 바꾸는 건 사람이다. 즉, 조직 구성원의 마음가짐이고 그것이 가장 바꾸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우리 조직은 어떠한 기본 가정을 하고 있을까?

- 재택을 하면 집에서 놀고 있을 거다.

- 점심시간을 길게 쓸 거다.

- 일이 많아도 휴게 공간에서 시간을 때울 것이다.

- 회사는 단순히 월급을 위해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이 만연할 것이다.


이러한 가정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는 조직의 가치나 방향성과는 이미 불일치해 보인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화' 또한 불신의 색안경을 껴고 볼 수 있다.

"거 봐.. 맞잖아.. 내가 그럴 거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더 조여야 해. 더 관리를 잘해야 해."

결국 눈치를 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는 더 굳어질 수 있겠다.


이번에는 반대로 가정을 해보자.

- 구성원들은 회사의 가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최선을 다한다.

- 윤리 규범을 준수하고 모범을 보인다.

- 리더는 구성원들 앞에서 모범적인 행동을 보인다.

- 구성원은 이를 닮아 실천할 것이다.


이러한 가정이 만드는 조직의 '방향성'은 어떠할까. 이게 조직을 위하는 길인가라는 방향성을 기준을 제시하고 구성원이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판단하게 한다. '겉으로 드러나는 문화'는 어떠할까. 무제한 휴가 정책, 무제한 택시비 지원처럼 신뢰를 기반으로 한 조직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조직의 가정은 어디에 머물러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조직문화를 엿볼 수 있다. 우리 조직에 만연해 있는 가정, 이것이 우리 조직의 민낯이자 '조직문화'라는 것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자, 이 가정을 누가 만드는가? '방향성'은 리더가 제시할 것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문화'는 눈에 보이는 결과물들이 될 것이다. 그러면 '기본 가정'은 나와 당신이 조직 안에서 만들어야겠다. 마치 토기를 빚듯이 말이다. 이 '기본 가정'은 당장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공기가 중요한 점을 잊고 사는 것처럼, 우리는 익숙한 것들에 너무 관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뿌리 깊은 인식,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 말없이 주입된 암시, 알아서 따라야 하는 흐름들. 그렇게 조직 문화는 점점 오염되고 있을지 모른다.

다음 장에서는 '어른 리더십, 당신의 면담 스타일이 팀 에너지를 바꾼다'를 주제로 함께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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