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며니 Jan 12. 2019

기밍아웃

나를 모르는 당신이 불러주는 내 이름을 지키고 싶다.

세상 사람이 다 알아도 당신만은 몰랐으면 한다. 서로가 전부인 우리라 내 아픔을 당신의 가슴을 헐어가며 품어버리니 말이다. 사실 내 고통을 나누느라 힘들 당신보다는 나를 위한 치밀한 배려였다. 내가 털어놓지 않은 비밀을 만약 알게된다면 당신이 나를 보는 눈은 지금과는 영원히 다르게 바뀔거라서 그랬다. 가장 가까이서 삶의 가장 행복한 시간을 함께하는 그대는 내가 숨겨온 것을 알지 못한 채로 언제나 지금처럼 나를 대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어야 한다. 다른 모든 사람은 내가 당신에게 숨긴 그것으로 이름대신 나를 부른다. 그래서 더욱이 편견 없이 내 진짜 이름만을 아는 단 한 사람을 잃고 싶지 않다. 늘 그랬듯이 오늘도 사실을 숨겨 비밀로 만들고 당신과 나의 소중한 일상을 누릴 것이다.


"저희가 여기 있습니다. 저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저희가 외치는 평화의 목소리를 들어주세요."


몇 년 전이었다. 수많은 취재진과 사람들 앞에서 마스크를 쓰고 소리 지르던 가녀린 체구의 여성. 그녀는 큰 규모의 성소수자 인권단체 대표였다. 서른 명 남짓의 검은 마스크를 쓴 성소수자 활동가들이 그녀의 선창을 따라 "저희는 혐오스럽지 않습니다! 저희는 위험하지 않습니다!"를 외쳤다. 말할 때마다 입김이 흩어지는 추운 겨울이었는데 잠시 집회를 쉬는 시간에 다른 활동가들은 그녀 주위를 따뜻하게 에워싸고 모여 안부를 나눴다. 많은 이들이 그녀에게 의지하며 감사함을 표했다.


번화가 근처 매주 젊은이들의 문화행사가 열리는 공간에서 성소수자들의 작은 오픈마켓과 축제를 열기 위해 행정절차에 따라 사용허가 신청을 냈다고 한다. 그러나 팩스 한 장으로 단칼에 거절당했다. 관할 구청의 LGBT페스티벌 허가 불가 사유는 '지역 주민에게 혐오감을 조성하므로' 단 한 문장이었다고 한다. 이랬던 해당 구청이 성소수자 혐오 과격 시위는 허가했다.


아이템 회의 결과 저녁 8시 뉴스의 메인 초대석에 그녀가 생방송 인터뷰 대상자로 선정됐다. 앵커와 1:1로 성소수자 단체 대표가 인터뷰를 할 예정이었다.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의 신호음이 두어번 울리고 받자마자 단독 인터뷰가 잡혔다고 섭외 소식을 전했다. 바로 승낙할 줄 알았던 그녀가 거절했다. 함께 방방뛰며 그녀와 소수자의 목소리를 많는 사람이 듣게된 것을 축하할 줄알았는데... 대신 함께 오랫동안 활동했다는 부대표의 연락처를 내게 줬다. 이기적인 호기심에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조심스레 이유를 물었다. 짧은 정적 후 이어진 그녀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직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말씀을 안 드렸어요. 어머니께서 제가 성소수자인걸 모르셔서요. 뉴스로 제가 레즈비언인 걸 아시게 하고 싶지는 않네요. 죄송합니다."


온몸으로 다수의 편견에 부딪혀 세상을 바꾸던 그녀가 항의 시위의 성공보다는 비밀을 택했다. 떨리는 목소리를 타고 그녀가 엄마와 당신만의 세계를 얼마나 지키고 싶어 하는지가 온전히 전해져 눈물이 났다. 말하지 않는 게 더 힘들었을 텐데. 집 밖에서 큰 상처를 입었어도 엄마 앞에서 터져 나오는 말들을 속으로 삼킨 그녀의 세월이 스쳐 지나갔다.


구청 앞에서 성소수자를 대표해 인파를 힘차게 지휘하며 마이크를 잡고 부조리에 항의하는 순간이 내가 본 그녀의 전부다. 나도 그녀를 '성소수자 활동가'로 정의해 방송 출연 기회를 감사하게 생각할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다. 집회 현장에 있던 수많은 이들의 시간을 장악하고 소수자들을 보호하던 강한 사람. 그녀가 이런 사람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오늘까지 무심코 부르는 그녀의 이름 석자를 지키고 싶었으리라. 의도치 않게 알게 된 대표의 가장 내밀하고 여린 비밀은 세상 그 무엇보다 그녀가 어머니와의 현재를 사랑한다는 것이었다.


5년 전에 겪은 일이지만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는  방금 들은 듯 생생하다. 그녀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안 했듯이 나는 아직 기밍아웃을 안 했다. 오늘까지도 나의 기면증을 주제로 연인과 대화를 하지 않았다. 올해로 4년째 만나는 남자 친구인데 말이다. 남자 친구와 사귀기 두 달 전부터 기면증 약을 끊어서도 그렇지만 지난 시간 동안 무수한 횟수로 얘기를 꺼내지 않는 편을 택했다. 늘 나와 함께하는 기면증을 구태여 말 안 하는 게 때로는 더 고역이지만 내가 감추기로 결정하면 무엇이든 비밀이 된다. 요즘 매일 글을 쓴다는 나에게 남자 친구가 무슨 글을 그렇게 쓰냐고 물으면 그냥 내 오랜 이야기를 쓴다고 답하며 얼버무린다.


기면증은 부모님, 가장 가까운 친구들 그리고 나만의 비밀이었다. 일이 많아 거의 하루 종일 함께했던 회사 동기들이지만 당연히 그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혹시나 내 기면증 병력이 회사에 소문나거나 이직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하는 노파심에서였다. 이해관계가 겹쳐 나의 아픔을 이용해 공격할 여지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약점을 털어놓을 수 없지 않은가. 기면증 진단을 받고 회사에 입사한 초기에는 남자 친구를 만나기 전이어서 비밀로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기면증 병력을 알리고 치료를 받는 과정을 공유해 소통하며 불편했던 제도나 환경을 바꾸고 싶어 글을 쓰고 있다. 세상 사람이 다 아는데 남자 친구는 모르는 상황을 만든 것이다. 무엇을 말해도 이해해줄 남자 친구에게 선택적으로 기면증 사실을 알리지 않은 이유는 대체 뭘까?


치료용 각성제를 더 이상 먹지 않고, 증상이 전보다 호전돼 우리가 만난 지난 4년 동안 기면증 증상으로 문제 될 게 없었다. 나는 그에게 가끔 졸려하고 잠이 많은 여자 친구다. 그를 만난 후로 함께 손잡고 걸어 다니며 운전대를 잡을 일도 없었다. 학생 때처럼 매일 일상을 나누는 사이가 아니라 주로 주말만 만나서 물리적으로 함께하는 시간이 짧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 가지로 내가 중증 기면증을 확진받았다는 이야기는 굳이 꺼낼 기회가 없었다는 핑계를 대본다. "나 기면증 환자야." 그에게 털어놓는데 3초도 걸리지 않는데 말이다. 내 책장 깊은 곳에 어릴 때 선물 받은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라는 책이 있다는 말을 남자 친구에게 굳이 하지 않은 정도 아니겠냐고 나를 변호해본다.


나의 기면증을 글로 옮기다 보니 내 삶에서 이 병은 생각했던 것보다 내 삶의 큰 부분이었다. 글을 쓰면서 지금도 나는 이 병을 내 삶에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내 뇌는 나를 깨우는 호르몬을 필요한 만큼 만들어내지 못한다. 하이포크레틴이라는 호르몬을 만드는 세포가 파괴돼 내 뇌는 24시간 수면 상태다. 뇌에서 호르몬을 만들어내지 않는 기면증을 연인에게 숨기는 나와, 부모님께 커밍아웃을 하지 않은 성소수자 단체 대표를 겹쳐본다.


우리 둘을 맞춰보니 기면증과 개인의 성 정체성에서 공통점을 찾았다. 내 의지로 조절하고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다. 내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신체와 정신의 특질은 개인의 가장 큰 비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밝혔을 때 사회적인 기회의 배제와 차별을 받게 되거나 나에 대한 괜한 편견을 만들어내서다. 그래서 대다수의 병력과 성소수 정체성을 가진 이들은 철저하게 숨긴다. 나와 친분이 있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정신병자', '기면증 걸린 사람', '게이'등으로 나를 낙인찍게 된다. 내 이름 석자를 지워버릴 만큼 강력한 사실들이 내 삶의 영역을 침범하지 못하도록 내면의 지하 깊숙하게 묻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이름을 가려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내가 쓴 줄 모른다면 온 힘을 다해 기면증을 알릴 용기가 났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불이익과 아픔을 다른 환자는 겪지 않았으면 한다. 마스크를 쓴 채 마이크를 잡고 힘차게 외치던 그녀처럼 말이다. 기면증 이야기를 병원과 치료제 광고가 아닌 환자의 목소리로 들려주고 싶다. 나를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기면증 환자'로 부르도록 말이다. 그래서 더욱 가장 소중한 사람과 내 사이마저 기면증에 잠식당하는 건 싫다.


나는 지난 시간 동안 기면증이라는 희귀하고 완치도 없는 질환을 그저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난치성 질환'이라는 단어를 듣기만 해도 오는 무력함을 연인에게 단 한 톨도 전이시키고 싶지 않다. 4년 동안 본 그는 분명 내가 어떤 말을 하더라도 자신만의 언어로 흡수해 나를 이해하고 보듬어 줄 것을 안다. 아마 성소수자 대표도 이와 비슷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어머니께 커밍아웃을 하고 혼란의 시간을 버텨내면 결국엔 그녀를 사랑할 어머니인 걸 알았겠지. 하지만 어머니와 누려온 어제와 늘 같은 일상이 흔들리고 변질되는 게 싫었을 거다.


사랑하는 이의 눈에 비춘 내 모습과 그와 함께하는 공간에는 아직 기면증의 기짜도 넘어오지 못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모순적이지만 지금을 잃고 싶지 않다는 불가능한 욕심에 비밀이 커져만 간다. 더 적극적으로 기면증에 기생하는 시장의 부조리함을 줄이고 환자들이 효과적인 치료를 받는 데 도움이 되고 싶다. 이 과정에서 언젠가는 친척, 친구, 회사 동기 등 내 얼굴과 이름을 아는 사람들도 내가 기면증 환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전에 남자친구에게 기밍아웃을 해야 하겠지. 몇 년 전에 마주친 그녀도 이제는 마스크를 벗고 어머니께 커밍아웃을 했을게다.

이전 22화 어느 날 천사가 말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