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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Mar 04. 2019

장애도 선택이 되나요?

나는 세법상 장애인이 될 수 있었다. '될 수 있다.'는 표현을 쓴 것은, 그러지 않기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기면증은 현재 세법상 장애인이다. 소득세법 107조에 따라 세금을 감면받을 수 있다. (납세자연맹: '놓치기 쉬운 소득·세액공제 10가지'보도자료  /  [납세자 TV]가장 많이 놓치는 공제 1위, 세법상 장애인 영상 참조) 갑상선 암 등 암 중에도 세법상 장애인에 속하는 경우가 있으나, 때로 담당의가 세법상 장애인의 개념을 알지 못해 환자에게 필요한 서류를 떼주지 않아 세제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납세자연맹에 요청해 공문을 보내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할 수 있다. 참고로 분당 서울대학교 병원의 경우에는 무인발급기에서 세법상 장애인 관련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한다.


당시 내가 세법상 장애인 혜택을 받지 않은 이유는 인사팀에 내가 장애인임을 알리고 싶지 않아서였다. 당시 나는 입사 후에 기면증을 진단받았으며 점점 증상이 호전되는 추세였기도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혹시라도 주요 업무에서 배제될까 봐, 내 이름 석자보다 '기면증 걸린 애'로 불릴까 두려움이 앞섰다. (장애여부를 주변에 알리지 않고 관할 세무서에 개인이 직접 신고하는 방법을 당시에는 몰랐다.) 사무실에서 눈을 뜨고 있기위해 커피40잔 분량의 각성물질 알약을 삼키며 각종 부작용을 견디는 환자를 위한 국가의 배려를 당연하게 받을 수가 없었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 두려워서.


기면증은 인지 능력 저하는 없지만, 각성 호르몬의 부족으로 뇌가 계속 잠에 빠지는 병이다. 기면증은 현재 세법상의 장애인이며 보건복지부가 희귀난치성질환자로 인정해 치료비와 약값의 90%를 지원한다. 또한 병영법상 차등 복무 인정 대상 질병이다. '이 정도면 됐지 뭘 더 바라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희귀난치성질환자로 건강보험관리공단 시스템에 등록이 되거나 기면증이 있음을 밝히면 고용, 채용과정에서 기회를 차단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질병을 숨기고 입사하면, 사측이 계약상 고지의무 위반으로 사규에 따라 근로자에게 손해배상 청구에서 면직처리까지 가능하다.


따라서 본인이 기면증임을 몰랐을 때 운 좋게 입사에 성공하는 경우 외에 기면증 환자가 채용 절차에서 편견 없이 모든 전형을 치를 확률은 매우 낮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운열 의원실의 자료에 따르면, 장애인을 고용하느니 벌급을 내겠다는 기업이 역대 최다치를 기록 중이다. 장애인 고용 부담금은 상시근로자 100명 이상의 기업이 장애인 고용 의무를 다하지 않을 경우 내는 벌금이다. 2017년 8,239개 사업체가 장애인 고용부담금 5,602억 원을 납부해 5년 전과 비교해 약 1.72배 증가했다. 현행법상 고용의무가 있어 기업이 국가의 세제혜택 등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의 고용도 꺼리는데, 현행법상 장애인이 아닌 희귀난치성질환자를 고용하는 기업은 적을 것이다.  


그렇다면 희귀난치성질환자는 취업 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 기면증은 보통 10대 때 발병하며 증세가 10대~20대에 가장 심해 수업시간에 제대로 앉아있는 것도 어렵다. 때문에 학업에 지장을 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날 충분히 자고 일어났어도 수업시간에 심지어 시험을 보다가도 잠에 들 수 있다. 따라서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제한된다.


산업기사, 미용사 등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는 전문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인지능력과 근로능력에는 문제가 없지만, 갑자기 잠에 빠지는 수면발작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약물과 식이요법, 생활패턴 조절로 정상인과 다름없는 생활을 하는 기면증 환자도 있다. 하지만 많은 기면증 환자가 각성제 성분 약물의 부작용인 두통, 어지럼증, 구토, 식욕부진, 불안증, 심장 떨림 등을 겪는다. 때문에 보통의 고용주들은 기면증이 인지능력에는 이상이 없으며 약물로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배려하는 것보다는, '장애 없음'을 표기한 보통의 신체 건강한 이를 채용한다. 최선을 다 해 노력해도 따라주지 않는 몸과 사회의 배제 앞에서 희귀난치성질환자가 평범한 일상을 살 만큼의 수입을 꾸준히 만들기란 힘든 일이다.


기면증은 아직 국내 「장애인복지법」 및 「장애등급 판정기준」의 15개 장애유형 판정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 1975년 UN '장애인 권리선언'에서 장애인을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신체적· 후천적 능력이 불완전함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적 또는 사회적 생활에서 필요한 것을 자기 자신으로서는 완전히 또는 부분적으로 확보할 수 없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UN은 1980년에 '세계 장애인의 해 행동계획'을 채택하며 환경이 개인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손상의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장애는 개인과 환경의 관계 속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따르면, 장애인이란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의미한다. 장애인복지법을 적용받는 장애인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와 기준'에 해당해야 한다. 국가에서 인정하는 장애인이 되고도 여러 단계의 등록과 심사 절차를 거쳐야 한다.


장애인 등급 심사업무 흐름도, 출처: 보건복지부


등록 장애 종류를 한정하고 장애인을 심사하는 일은 귀한 세금이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에게 쓰이는 것을 막는 당연한 절차다. 하지만 늘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이 있고, 이 때문에 정작 장애인 복지법의 혜택을 받아야 하는 중증 장애인들이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허태정 대구시장은 오른발 엄지발가락 한 개가 없는 것은 대통령령으로 인정하는 장애가 아닌데 등록 장애인이었다. 그런데 당시 허태정 대구시장 후보가 엄지발가락이 왜 없어졌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해 논란이 있었다. 그가 장애인으로 등록했던 2002년 당시 기준과 현행법에 따르면 엄지손이 잘려 물건을 집어 올리기 힘들어도, 발가락 9개가 없어도 장애인 등록법 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참조: 발가락 9개 잘렸는데 “장애인 등록 안됩니다", 중앙일보, 2018. 5.30)


고통을 계량할 수는 없으나, 현재 크론병(식도, 위, 소장, 대장과 항문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만성 염증성 질환. 설사, 복통, 열이 계속 돼 일상생활이 힘듦.)은 대통령령으로 인정하는 장애가 아니다. 반면 척추수술 환자는 정도에 따라 장애 등록이 가능하다. 물론 모든 질병을 가진 이들은 일상생활이 힘들다. 다만 장애인 복지법의 지원이 필요한 이들이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을 막아야 한다.


혼자서는 옷을 입는 것도 힘든 장애를 가진 이들도 아직 국가로부터 필요한 만큼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장애등급제로인해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한 사례가 여럿이었다. 혼자 거동하기 힘들었으나 장애 3급이었던 고 송국현 씨가 거주하던 장애인 자립생활 체험홈에서 불이 났다. 장애 3급이라 활동 보조 도우미 지원을 받지 못해 스스로 신고도 하지 못하고 화재현장에서 사망했다. 이 외에도 실제 생활의 어려움을 반영하지 못하는 등급제로 인해 사고로 세상을 떠나거나 상해를 입은 장애인 사례가 매우 많았다. 이에 따라 '장애등급제 폐지'는 문재인 정부 장애인 관련 정책 국정과제 1호로 채택됐다. 이는 장애심사 및 판정을 통해 장애인으로 등록된 이들에게 장애등급을 대체하는 새로운 서비스 제공기준 마련을 목적으로 한다.


장애인 등급제는 폐지됐으나 장애인인지 아닌지를 의학적으로 확인하는 장애심사 및 판정은 현행과 같다. 여섯 개로 나눈 등급을 2개로 통합했을 뿐이다. 올해 2019년 7월부터 기존 1~3급 장애인은 중증 장애인(장애의 정도가 심함), 4~6급은 경증 장애인(장애의 정도가 심하지 않음)이 됐다. 또한 기존의 장애인 복지법 등록 대상 장애 종류에는 변함이 없다. 일각에서는 장애등급만 폐지됐지 전과 다를 바 없으며, 정도가 심한 장애인인데 경증으로 등록될 확률도 크다고 한다.  


중증 장애인을 보조할 예산도 부족한데, 사지 멀쩡한 희귀난치성질환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장애인 관리가 누가 더 불행하고 힘든지를 저울로 재는 형식은 아니어야 한다.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이들을 역으로 벼랑 끝으로 모는 제도적 모순은 수정이 필요하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 세계 사람의 7명 중 1명이 장애를 갖고 있다. 1830년부터 장애인 조사를 시작한 미 인구조사국(US Census Bureau)에 따르면 미국 내 장애를 가진 사람의 비율은 5명 중 1명이고, 이 중 절반은 중증 장애라고 답했다. 미국 노동법은 천식이나 고혈압도 장애로 인정한다. 미국과 유럽 등 복지와 이와 관련된 사회적 합의가 긴 타국에서 기면증 환자는 국가 등록 장애인 대상이며, 대중교통과 주거복지 혜택을 제공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기면증 환자도 장애인인가?라는 질문에는 명백히 '장애인이다.'라고 답할 수 있다. 기면증 환자는 장애인복지법에서 명시하는 '신체적ㆍ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이다. 하지만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에 들지 못했을 뿐이다. 뇌의 호르몬이 부족해 갑자기 잠에 빠지고 근육에 힘이 없어져 일상생활이 불가능함을 인정한 미국, 영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서는 기면증을 뇌전증보다 정도가 심한 장애로 정의하고 이에 따른 지원을 한다.


한국에서 기면증 환자가 희귀난치성질환자로 등록돼 세법상 장애인, 진단비와 치료비 일부 지원, 군 차등 복무대상 질병을 인정받기까지 한국기면병환우회가 지난 12년 간 길고 외로운 싸움을 했다. 홀로 수면 의학 관련 학회에 소속된 전문의를 찾아가 자문을 받아 만든 청원서와 입법 개정안으로 정부기관과 의원실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꾸준한 노력으로 기면증 환자가 국가의 지원을 받게 된 것은 기적같고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국가 지원을 받는 사람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희귀난치성질환자로 등록된 것을 입사 지원자가 사측에 알리거나 건강보험관리공단의 시스템에 등록된 것이 입사 신체검사에서 밝혀지면, 보통의 회사에 보통의 직장인으로 지원할 기회는 영원히 사라진다. 취업난에 장애가 없는 이들이 관문을 뚫기도 힘든데, 희귀난치성질환을 가진 이가 채용될 확률은 매우 낮아진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병을 숨기고 입사해도 안 된다. 기면증 환자임을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채용 시 밝히지 않았다가 채용 후에 밝혀지면 현행법 상 고지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 채용이 취소될 수 있다. 만약 기면증임을 모르고 입사를 했더라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졸음에 빠지기 때문에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기면증을 가지고 있으면 고용이 안 되고, 취업하더라도 노동이 힘든데 제도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면세 혜택뿐이라니. 벌이가 없는데 감세를 받으면 무엇할까. 빠져나올 길 없는 악순환의 뫼비우스 띠다.


따라서 다른 장애인처럼 기면증 환자를 비롯한 희귀난치성질환자들에게도 장애인 등록을 선택할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온몸의 근육에 힘이 빠져 주저앉아 버리는 심한 탈력발작을 동반한 기면증 환자, 졸음이 너무 심하게 와서 고등학교 때 1년을 휴학해야만 하는 환자 등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하지만 혜택이 있는 만큼 언제나 제한도 있다. 한 번 장애인에 등록하면 영원히 보통의 사람들이 평범하게 얻는 기회는 가질 수 없는 경우가 생겨서다. 때문에 신중하게 고민해 현재 겪는 모든 증상들을 정상인과 같은 페이스로 생활하며 몸이 더 고장 나는 것을 감내할 수 있다면 장애인 등록을 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장애인 등록을 할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정도의 장애를 가진 사람은 기쁠까? 신체장애의 정도가 심해 무조건 장애인 등록을 해야만 하는 분들께는 복에 겨운 소리를 하는 걸로 보이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장애는 정도와 증상이 다르고, 각자의 상태에 맞춘 지원을 받을 권리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 1998년 12월 9일 대한민국 국회에서 채택된 대한민국 장애인 인권 헌장에는, '국가와 사회는 헌법과 국제연합의 장애인 권리선언의 정신에 따라 장애인의 인권을 보호하고 완전한 사회참여와 평등을 이루어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여건과 환경을 조성하여야 한다.' 고 명시되어 있다. 신체에 장애가 생기는 것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장애의 정도에 따라 국가의 도움을 받을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선택해야 한다. 모두의 장애 정도와 증상이 다른데, 이를 획일화 해 오히려 사회에서 배제되거나 차별받는 이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장애인 등급제의 개선과 함께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장애인 복지법 포함 방안도 논의가 필요한 이유다.



장애인이냐 비장애인이냐를 놓고 어느 범주에 들지 고민하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운 좋게도 부모님이 외국 국적이 있거나, 타국에서 태어나는 등 2~3개의 나라 중 내가 속할 국적을 선택하는 문제와는 다르다는 뜻이다. 국가 등록 장애인이 된다는 것은 혜택과 보호를 의미한다. 장애인으로 등록해 혜택을 받음과 동시에 영원히 일반 사람들의 범주에서 배제된다. 때문에 눈에 보이는 장애가 심하지 않은 이들 중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감수하고 장애인으로 등록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럿이다. 그렇게 되면 장애로부터 오는 삶의 지장은 온전히 개인이 감당할 몫이 되지만 어쩔 수 없다. 솔직히 말하면, 혜택을 놓고 저울질하는 복잡한 고민을 하는 것은 정말 싫고 나도 평범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장애가 없는 몸을 갖고 싶다.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장애인 할인과 주차 혜택을 비롯한 공짜 점심이 아니라 떳떳하게 자립할 수 있는 기회다.


"손, 발가락 모두 열개씩 다 있어요!"


우리 모두가 태어나던 순간은 같은 풍경이었을 거다. 아이가 태어나면 가장 먼저 사지가 멀쩡한지, 손가락과 발가락이 모두 10개씩 인지를 꼼꼼히 만져가며 확인한다. 분만실 근처에서 아이가 탄생했다는 기쁨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은 조부모가 돼버린 자신의 부모에게 "사지, 손 발가락 모두 열개씩 다 있어요!"라고 외친다. 내가 태어났던 순간도 그랬을 것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의사들을 둘러봤다던 내 엉덩이를 쳐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전에 손가락과 발가락 개수 먼저 세 봤을 것이다. 어느 부모든 자식이 장애 없이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은 같다. 가장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신체적, 외관적 이상 여부를 확인하고 아이가 자라남에 따라 계속해서 지능과 정신에도 문제가 없는지 끊임없이 확인한다.


이렇듯 모든 장애는 개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뜻하지 않게 선고된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그 누구도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다만 거부할 길 없이 생긴 장애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 해 살아갈 뿐이다. 선천적, 후천적 장애 모두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금 감면을 받고, 영화 티켓 할인을 받으며 마트에 좋은 주차자리를 받자고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작은 혜택을 받자고 일상의 모든 순간에 내 의지를 차단당하고 싶은 이는 없다는 말이다.


잠을 충분히 자고 일어난 날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자꾸만 눈이 감긴다면. 친구를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는데 얼굴 근육이 흘러내리고 다리에 힘이 풀려 횡단보도 한가운데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리고 수업시간에 졸음이 와 자리에서 일어서 있는데도 잠이 쏟아진다면. 이런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보통의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다. 기면증 외 현존하는 모든 장애는 '개인의 의지를 몸이 무시해 몸을 제어할 수 없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국가에 장애인으로 등록하는 것은 일상에서 겪는 나의 불편에 대한 보상심리가 아니다. 혼자서는 절대로 자립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다.


올해부터 우리나라는 국정과제로 장애등급에 따른 획일적인 기준을 폐지해 개인의 욕구 및 환경 등을 고려한 서비스 기준을 마련하고 , 찾아가는 읍면동 복지센터 등 복지전달체계를 활용하여 장애인 특성을 고려한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기면증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매 순간 일상의 장애물들을 넘어 끈기 있게 삶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오늘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장애를 가진 개인과 사회가 같이 품고 있다고 믿는다.


마지막으로, 글 쓰는 자폐장애인 칼리 양의 말을 들어보자.

저는 보통의 생각을 가지고 자폐인의 몸에 갇혀있습니다.

그녀는 11살까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이상한 소리를 지르고 계속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치기만 했다. 물론 현재도 이런 증상은 계속 일어나지만, 11살 때부터 키보드에 자신의 생각을 쓰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를 알리고 있다.


장애의 정도를 따질 수 없으나, 자폐성 장애는 가장 많이 알려진 장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이역시 등급에 따라서 지원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며 치료를 할 경우 3년에 2억 정도의 비용이 든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맞춤 교육을 받거나 취업을 통해 자립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한다. 반면 칼리의 부모님은 미국에서 자폐아의 출생 시점부터 무상교육, 학습 기기 지원 등 여러 지원을 받으며 11년 간 계속 칼리를 교육했다 한다. 장애인에게도 차별 없이 꾸준한 교육을 한 결과 칼리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세상과 의사소통을 하고 성장해가고 있다.


모든 장애는 개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발생한다. 개인과 가족에게 재앙처럼 찾아온 장애와 함께 평생을 살아야만 하는 이들을 일으키려면 여러 사람이 필요하다. 보통의 일상을 누릴 수 없게 된 상황을 오롯이 개인이 아닌 사회와 국가가 함께 해결하려는 데 우리의 시선이 맞춰져야 한다.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UN의 슬로건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세상'(Leave No One Behind)을 향해 한 발짝씩 걸어, 우리의 후대는 장애에 무릎 꿇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길 바라본다.




- 보건복지부 장애인 등록/장애등급 심사제도 http://www.mohw.go.kr/react/policy/index.jsp?PAR_MENU_ID=06&MENU_ID=06370111&PAGE=11&topTitle=


- 납세자연맹: '놓치기 쉬운 소득·세액공제 10가지' 보도자료 http://www.koreatax.org/taxboard/bbs/board.php?bo_table=outboard2&wr_id=7176 


- [납세자 TV]가장 많이 놓치는 공제 1위, 세법상 장애인 영상 https://youtu.be/sCHIH7EeS60


- 한국기면증준비위원회 창립모임 www.narcolepsy.kr


- 장애등급판정기준 http://www.totalkor.com/ 


- 장애등급제 폐지했지만… 장애인들은 ‘또 다른 등급제’ 우려, 한겨레, 2018.12.25

http://www.hani.co.kr/arti/society/rights/875751.html#csidx1f513d0b5b82817b561d0de69f99ae4


- 발가락 9개 잘렸는데 “장애인 등록 안됩니다", 중앙일보, 2018. 5.30, https://news.joins.com/article/22669577


- 허태정 "발가락 왜 잘렸는지 89년 일 기억나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8. 5. 16 https://news.joins.com/article/22628513



- '장애인 고용하느니 벌금 내겠다'는 기업들 역대 최고치, 노컷뉴스, 2018. 10. 10 https://www.nocutnews.co.kr/news/5042380


- 경기도장애인인권센터, 장애인의 권리

http://www.xn--zf0bw56b7oba6t.com/2018/bbs/board.php?bo_table=B11&sca=%EC%9E%A5%EC%95%A0%EC%9D%B8%EA%B6%8C%ED%97%8C%EC%9E%A5


- 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http://thespecial.kr/?r=special&m=bbs&bid=comm_1&uid=5745

- 중증 자폐인 소녀 칼리 이야기(한글 번역 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Mw8Yu6NVrY

- Autism Angel - Carly Fleischmann, ABC NEWS (영문 영상) http://www.youtube.com/watch?v=34xoYwLNpv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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