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증 걸리면 군대 안 가요?

병역 면제의 기준

지난해 11월 종교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후 군 면제를 받기 위해 여호와의 증인 가입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활용하기 위해 종교와 신념도 바꾸는 것이다.(조선일보: 종교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 후 '여호와의 증인' 가입 문의 쏟아져) 최근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원 무죄판결이 70건을 넘기 전에도 국내에서 징병 관련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였다. 공익 판정을 받고 미국 국적을 취득해 한국 국적 상실 후 군대에 가지 않은 유승준 씨가 대표적 사례다. 그는 2002년 출입국관리법상 출입국 부적격 인물로 등록돼 현재까지도 입국이 어렵다. 17년 전보다는 덜해졌지만 여전히 군 입대를 하지 않은 유명인들은 여론의 뭇매를 맞는다. 특히 고위 공직자 임명 때는 본인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군 복무 여부가 주요 도덕성 검증 요소로 쓰인다. 자본과 권력을 동원해 갖은 방법으로 군면제 또는 위험도가 낮은 내근직 발령을 받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취업, 인맥형성과 같은 사회생활을 포함해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군대는 대한민국 남성에겐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때문에 잔인한 숙명을 예외로 만든 군 면제자는 군필자들을 매우 민감하게 만든다. 모든 국민이 국방의 의무를 지는 것에 더해 한국은 지구에 하나뿐인 분단국가여서 1951년 6.25 전쟁 후부터 모든 남성에게 병역의무가 있다. 아직 우리는 전쟁을 끝낸 게 아니라 쉬고 있어서다. 젊음이 피어나는 18세 ~28세 사이 약 2년을 예외 없이 군대에서 보내야 하니 억울한 마음이 들지만 원칙상 예외 없이 모든 성인 남성은 군대를 가야만 한다. 그래서 꼭 유명인이 아니더라도 주변에 군대를 안 간 사람이 있으면 검증의 대상이 되고 현행법에서 인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사회적 불이익을 받거나 재입대 대상이 된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병역판정 신체검사 규칙>을 전문가들과 함께 입영 신체검사 병역판정 기준을 계속 개정하고 있다.

병무청의 신체검사는 4시간 정도 소요(병역판정 검사대상 등록과 신상명세서 등록 → 심리검사 → 임상병리 검사 → 방사선 촬영 → 신장, 체중 측정 → 혈압, 시력 측정 → 안과, 피부·비뇨 의학과, 신경·정신건강의학과, 이비인후과, 치과, 정형외과, 신경외과, 내과 → 신체등급판정 심의위원회의 등급판정 → 중앙신체검사소의 적성분류→ 병역처분)된다. 기면증 환자의 경우 병무용 진단서가 필요하며 자세한 사항은 병무청 병역판정 검사의 과목·질환별 구비서류 중 정신과 항목을 참조하면 된다.

지방 병무청을 찾은 징병검사 대상자들이 혈압측정 등 신체검사를 하고 있다. 사진 출처: 뉴스1

2018년 기준으로 현재 병역판정 검사의 질병과 심신장애 정도에 따른 차등 복무를 인정하는 병명은 411가지다. 국방부는 2010년 2월부터 기면증을 병역면제 사유에 포함했다. 1년 이상의 치료로도 기면증이 없어지지 않거나 기면증으로 1개월 이상 입원한 사람이 그 대상이다. 2019년 1월 현재 병역법 상 기면증 환자의 군면제 기준은 다음과 같다.

질병·심신장애의 정도 및 평가기준(제11조·제20조 및 제21조 관련)

101. 기면병
진단은 국제수면장애진단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sleep disorder)에 따르고, 다른 수면장애, 기질적 질환, 정신질환, 약물이나 물질남용에 의한 것은 제외한다.

가. 향후 일정기간 관찰이 필요한 경우 (7급-재검)

나. 증상 및 수면다원검사상 국제수면장애진단분류 기준을 만 족하는 경우 (3급-현역 입영)

다. 증상 및 수면다원검사상 국제수면장애진단분류 기준을 만 족하며 6개월 이상의 치료 후 사회적·직업적 기능장애가 존재하는 경우 (4급-공익근무)

라. 증상 및 수면다원검사상 국제수면장애진단분류 기준을 만 족하며 6개월 이상의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잔존하며 검사상 지속적인 이상소견이 있거나 1개월 이상 기면병으로 입원력이 확인된 사람으로서 군 복무에 상당한 지장이 초래된다고 판단되는 경우-치료제를 투약한 상태에서 시행 한 주간반복수면잠복기 검사에서 평균수면잠복기가 8분 이 하로 지속되고 임상적으로 탈력발작이 확인된 경우 (5급-사실상 면제)

출처: 병역법 [별표 3] <개정 2018. 9. 17.>

* 병무청 병역처분기준에 의하면 1~3급은 고졸 이상 현역병 입영 대상이며 고퇴 이하는 보충역-희망 시 현역 입영, 4급 보충역, 5급은 전쟁 시에만 근무하는 전시근로역, 6급 병역면제, 7급 재검 대상자로 분류한다.

따라서 기면증 확진을 받으면 무조건 면제가 아니라 6개월 이상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나타나거나 입원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총기와 수류탄 등 무기를 활용하는 군사활동과 행군과 같은 장기 훈련 중 졸음 증상이 나타날 확률이 현저하게 높을 경우만 면제를 받는다. 입대 후 기면증 증상이 나타나 의병 전역한 사례 등 여러 사건이 있었고 병무청과 수면 전문 정신과 전문의가 논의한 결과, 2010년 군면제 기준 질병에 기면증이 포함된 것이다.

2010년 기면증이 군 면제 대상 질병으로 지정되기 전에 일어났던 사고가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면증을 앓다 하사로 임관한 배 모 씨는 행군 중 넘어지는 등의 증상이 나타나서 군 병원 치료를 요청했으나 입원이 거절됐었다. 그렇게 군생활을 이어가다 2006년, 자정이 넘어 전술훈련을 받던 도중 바위에 걸려 굴러 떨어졌다. 이때 고막이 파열돼 이명과 난청 증상 생겼고 국가유공자 신청을 냈지만 거절당했다. 이후 배 씨는 보훈처를 상대로 소송했고 지난 2014년 법원은 기면증 군인 배 씨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했다. 서울 고등법원은 '부대는 배 씨가 기면병 증세를 보임에도 군 병원 치료와 업무량 조정 등을 하지 않았다. 적절한 배려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배 씨가 교육훈련을 받거나 직무를 수행한 것이다. 사고가 설령 배 씨가 원래 갖고 있던 기면병 때문이라 하더라도 부상과 공무 수행 사이에 인과관계를 부정할 수 없다.'라고 판결했다.

뇌 호르몬이 부족해 졸음이 쏟아지는 증상은 개인의 의지로 조절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국가가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국내 기면증 환자 중 10%만이 진단과 치료를 받고 있다. 이는 아직까지 기면증으로 공익근무 또는 전시 근로 역 판정을 받는 숫자보다 병역 판정 검사 전에 본인이 기면증인 것을 모르고 입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뜻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댓글을 통해 최근까지도 부대 내에서 기면증 증상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들을 볼 수 있다.

사병식당에서 유명인이었습니다. 자면서 밥 먹는다고요. 밥 먹다 졸았던 적이 수백 번은 될 거예요. 대장님 개인면담과 훈시 때도 졸기 일쑤였습니다. 저는 군악대였는데 행사 중에도 졸았습니다. 선임이 얘기하는 도중에도 작업 중 삽질하다가도 졸아도 봤고요.

그린캠프에서 기면증 걸린 애 있던데. 틈만 나면 픽픽 쓰러지는 걸로 봐서 의병 전역했을 것 같긴 한데 그런 애도 재수 없으면 갈 수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셈이지.

훈련 중 기타 장비를 내리면서 잤습니다. 제가 그 잠깐 잠든 사이에 BL탄(연습용 포탄·약 30kg)을 선임 머리 위로 떨어뜨렸습니다. 그런데 다행히  고참이 피해서 고참 다리만 부러지고 더 큰 부상은 없었습니다. 정말로 죄스러웠습니다.  

기면증 확진에 필수인 수면다원검사는 1박 2일 동안 30여 개의 센서를 몸에 부착하고 30초 단위로 근육과 뇌파를 기록하는 검사다. 이 검사를 통해 침대에서 눈을 감고 8분 안에 렘수면이 나타나야 하고, 6개월 이상 치료해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을 때만 기면증으로 입대 면제 조치를 받을 수 있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기면증 환자는 대부분 재검판정을 받는다. 재검사 때는 치료제를 투약하고도 수면 검사 때 뇌파와 안구운동 측정으로 증상이 나타나야 전문의에게 병무용 진단서를 받을 수 있다. 즉, 기면증은 증상을 꾸며 군입대를 피하는 용도로 쓸 수 없는 질병이라는 의미다. 본인과 동료 장병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입대 전·후 상관없이 기면증 증상이 의심될 경우 상담을 받고 병무청에 적극적으로 문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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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이미지 출처: Wikirokarmedforces, 대한민국 육군 제1군단 소속 모 상등병들의 사진(CC BY-SA 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