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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며니 Mar 11. 2019

서태지가 낳은 조용한 영웅

한국, 영국, 일본 등의 기면증 관련 협회를 돌아보고 담당자를 인터뷰한다. 각 나라마다 다른 기면증 관련 법률과 치료법, 최신 현황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첫 번째로 한국의 <기면병환우협회 창립 준비모임> 이한 회장을 만났다.


희귀난치성질환을 질병관리본부는 '시장 실패 영역'이라고 정의한다. 돈이 되지 않는 질병이란 뜻이다. 제약회사가 천문학적인 연구비용을 쏟아 십여 년에 걸쳐 약을 개발해도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한다. 때문에 환자수가 적은 병은 의료산업계의 관심이 낮아 치료법이 활발하게 개발되기 힘들다. 전체 인구의 0.02% 정도가 걸리는 질병이다 보니 자연히 정치적 중요도 역시 떨어진다.


시장 실패 영역에서 소수의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확진을 받고 "대체 왜 나에게 이런 일이?"라고 하늘을 원망할 새도 없이 쏟아지는 진료비와 치료비 청구서를 받는다. 병이 내 몸에 만드는 증상들을 견디며 각종 약물들 때문에 떨어지는 체력으로 하루를 숨만 쉬며 보내기도 버겁다. 사각지대에 놓여 법과 제도가 침해한 권리를 되찾을 기력도 없어진다. 그런데 확진을 받고 바로 온라인에 환우협회를 만들고 인권위원회, 보건복지부, 국회 등 정부기관과 수면의학회 등의 문을 두드리며 언론 인터뷰를 통해 기면증을 알리고 적극적으로 법을 개정해 온 사람이 있다. <한국기면병환우협회 창립준비모임> 이 한 회장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실 이데아와 교과서 사이


Q 2006년 12월 기면증 확진을 받고, 2007년 8월 환우협회를 만들었다. 1년이 안 되는 기간인데, 창립 계기가 무엇인가?

8월 26일 내 생일이 카페 창립일이다. 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공유하는 환우 자조모임도 좋지만 법 개정 청원, TV인터뷰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현실을 바꾸는 일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기면병 관련 자료가 거의 없어 국내 수면의학 전문의들의 책과 해외 논문들을 찾아 읽으면서 직접 찾아가서 묻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핀란드, 독일, 스위스, 노르웨이, 태국 등 대사관에 (영어로) 전화하고 메일을 보내 협조를 구했다. 해외 징병제/모병제에서 기면병 환자를 입대 시 어떻게 조치하는지 사례를 조사해 제출했다. 수면학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님과 보좌관님들, 변호사께 자문을 요청해 도움받았다. 병무청이 기면증 병역판정 검사 차등 복무를 인정하기까지 4년이 걸렸다.


인간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는 위대한 한국의 군대. 입대를 '피한 것'이 아니라 법 조항에 명시된 군면제 사유에 해당된 것뿐이다. (사진과 번역 출처: 허핑턴포스트)


Q 이럴 때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환자들은 관계 부처에 민원 몇 번 넣다 포기한다. 아무도 엄두를 안 내는 일을 혼자서 계속한 건데. 

지금은 <법과 사회>로 바뀌었을 거다. 예전 고등학교 때 정치과목에서 배운 대로 한 것이다. 당시 자전거를 타다가도 탈력발작(갑자기 근육에 힘이 빠지는 기면증 증상 중 하나)이 일어나 사고가 날 정도로 증상이 심했는데,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10년 전은 지금보다 더 기면병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히 의사들도 본인의 전공 영역이 아니면 잘 모르는 질병이다. 온라인과 언론에서 기면증이 있는데 군에 입대해서 위험한 사고가 일어난 사례를 여럿 볼 수 있었다.

그때 교과서에서 배운 시민의 의무와 '여성의 참정권'관련 역사에서 용기를 얻었다. 19세기 초반에 투표권이 없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지만 시민의 의무를 다 한 사람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 아닌가.


Q 정치학과인가? 아니면 부모님의 영향인가.

국문과다. 집에서 제사 지낼 때 절하다 잠이 든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환자가 그렇듯 가족들도 이게 병 때문일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어릴 때부터 그저 잠이 많은 아이였다. 원래는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고 굉장히 가볍고 활동적이었는데. 기면병과 카페 활동이 내 성격 등 많은 것을 바꿨다. 부당한 법과 제도의 수정을 요구하는 게 시민의 의무라고 배웠고 배운 대로 한 것뿐이다.

2008년엔 지금보다 많이 친절하다. "기면병 환우들을 위한, 환우들에 의한, 환우들의 협회를 다 함께 만들어 봅시다!"이 회장은 링컨 대통령이 좋은 말을 했길래 가져왔다고 했다.


Q 교과서적인 답변이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시민의 의무지만 실천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서태지의 노래 <교실 이데아> 가사다.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을까"라는 말이 맴돌았다. 정당한 법과 절차에 따라 내 권리 찾기를 시작하자고 마음먹었다.


Q 미디어에 모자이크 없이 희귀질환자로 인터뷰를 하고, 혼자 활동하며 혹시 모를 사회적 불이익이 두렵지는 않았나.

전혀. 나는 우리나라의 시스템에 신뢰가 있었다. 그냥 해야 할 일들이 있고, 개정이 필요한 법률이 보이면 절차에 맞춰 방법을 찾고 변화를 요청했다. 다만 카페에 대기업 취업이나 공무원 임용 시험을 볼 때 기면증 병력이 있는 것을 알려야 하는지에 관련된 고민 글이 여럿 올라오긴 한다.





천천히 한 걸음씩 그리고 꾸준히


2009. 5  보건복지부, 기면증 희귀 난치성 질환 인정
2010. 2  병무청, 기면증 병역판정 검사 차등 복무 인정
2018. 7  보건복지부-국민건강보험공단, 수면다원검사 급여화
2018. 10 인권위원회, 기면증 수능시험생에게 편의제공 권고


Q 12년 동안의 활동으로 얻은 성과다. 건의한 제도가 바뀌는 것을 봤을 때 기분이 어떤가.

아무렇지도 않다. 정말이다. 재활용 분리수거를 했을 때 기분 같다. 새롭게 무언가를 만든 건 아니지 않나. 당연히 일어났어야 할 일이 지금 일어난 거라고 생각했다. 법과 제도의 절차에 맞춰서 건의했고 수면 의학계 전문의, 의원실 보좌관 등 여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진 것이다.


Q 몇 명이 할 일을 혼자 하고 있는데.

취재 요청 대응, 법 개정안 작성, 기부금 영수증 발급, 인권위원회 면담, 전문의께 자문 구하기, 카페 관리, 환우 정기 모임 등 혼자 하기 벅찰 때가 많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일은 아니다. 몇 달을 계속 전화하고, 기관을 찾아다니고, 전문가들을 만나는 일이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드는 일이었다. 현재 기면병 환우회 카페 회원이 4,000명이 다 돼가는데 법 개정 활동이나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셨던 분들은 많지 않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회원들은 자신의 병을 드러내기 꺼리는 경우가 있다.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신다면 일이 수월할 텐데 아쉽다.


Q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가는 4차선 도로처럼 편하고 넓은 길은 아니지만 누군가 간 흔적이 있길래 따라갔다. 강직성척추염 환우들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청원서를 넣는 것을 보고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장향숙 전 의원실과 연락이 닿아 기면병 관련 병역판정 신체검사규칙 개정 요청 청원서를 넣었다. 기면병의 희귀난치성질환 목록 포함 청원은 신상진 의원실을 통해 제출했다. 기면병 환자의 수능시험 관련 청원 등은 선행 사례가 없어 수면학회 전문의 선생님들께 자문을 요청드렸다.


Q 청원서가 국회를 통과하기 매우 힘들다던데.

1%의 확률이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했더니 지난 30년 동안 3399건의 청원 중 42건이 채택됐다. 장향숙 전 의원을 통해 병역판정 신체검사규칙 개정을 요청한 청원서는 국회에서 국방부 담당자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확답했다. 취지를 달성해 국회 본회의에는 올라가지 않았다. 기면병의 희귀난치성질환 목록 포함 청원은 심사 도중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상진 의원님의 노력과 수면학회의 도움으로 청원서를 제출한 해에 보건복지부가 기면병을 희귀난치성 질환으로 인정했다.


Q 지금까지 진행 중인 건도 있더라.

수능시험을 볼 때 기면병 환자에게 형평성을 보장하는 방안은 2011년부터, 장애인 복지법 법 개정 관련 청원은 지난 2014년부터 계속하고 있다.


Q 답답해서 조급해진 적은 없나.

여러 사람의 조언을 들었다. "드러누워라.", "이슈가 되어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빨리 처리할 수 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등의 말을 들었다. 하지만 다르게 가고 싶었다. 나는 우리나라 사법, 행정 시스템은 잘 정비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신뢰를 갖고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정당한 절차에 따랐다. 준비해 간 법 개정안이 각 상임위의 법안심사소위원회 전문위원님들 검토를 받는 절차도 매우 까다롭다. 국회 회기 내에 회의가 열리지 않을 가능성, 총선 등 다양한 변수가 있어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론 공격적인 방법을 썼다면 지금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지 모른다. 혹시 나 때문에 기면병 환우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도움을 받는 게 늦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될 때도 있다.





번아웃이 온 가난한 히어로


Q 기면증 때문에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왔더라.

인권위원회, 국회, 교육청, 병무청, 한국희귀의약품센터, 민변, 전문의 등의 기관과 사람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연결시켜줬다. 질병 때문에 직장, 학업, 결혼생활 등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경우라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무거운 비밀들을 듣게 된다. 무덤까지 지고 갈 비밀을 듣고 개선할 방법을 찾는 일은 시간과 자원이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이다. 일부 회원들과는 불편한 일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내가 전문의가 아니고 힘이 없어 완전한 해결책을 주지 못한 경우 미안했다.


Q 쓴 글들을 살펴보니, 12년 동안 성격이 많이 변했던데.

처음에는 글을 쓸 때 친절하고 재미있게 썼다. 그러다가 의료법 위반행위를 하는 회원, 새벽이나 이른 아침에 급하다며 기면병 관련 개인적인 일들을 계속 부탁하는 회원 등 각종 일을 겪으면서 힘든 순간이 많았다. 위법행위를 하거나 심한 욕설을 하는 사람들을 여럿 대하다 보니 점점 말투가 사무적이 되더라. 그리고 최근에는 번아웃 증후군이 온 것 같다. 의욕과 성취감이 줄어들고 있다.


Q 2015년 해산을 선언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면증 확진을 받지도 않고 처방전 없이 전문 의약품을 거래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 근거 없이 수면학회 의사를 비방하고 인신모독성 글을 올리는 사람. 문의사항이 있다며 새벽에 연락을 하는 회원. 도움을 요청해 정부기관도 함께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에게 인격적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하더라. 힘들었다. 혼자 열심히 일 할수록 많은 불만과 근거 없는 비난을 듣는 일이 많아졌다.


Q 그런데 아직까지 카페를 없애지 않고 계속 활동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런데 수많은 회원들이 지난 자료들도 있고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해산을 철회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매년 2회씩 성빈센트병원 홍승철 교수님의 도움으로 개최 중인 <기면병 환우모임> 등 예정된 일들이 계속 있었다.


Q 일본, 영국, 미국 등 해외 기면병 환우 협회비는 의무로 5~10만 원 선인데 한국은 회비가 없다. '기면병 환우회 회장'을 전업으로 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데. (카페에 공개한 협회 발전기금 모금내역은 월평균 총액 30만 원)

강제 사항도 아닌데 꾸준히 협회비를 보내주시는 회원들께 감사하다. 법률 개정안 자료조사를 하며 전화비, 차비 등이 들어도 발전기금에서 사용하지 않았다. 작은 문제라도 생기는 게 싫어서다. 곧 퇴사 예정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초창기부터 큰 비용은 아니지만 내 돈을 쓰는 경우들이 많았다.


누군가를 도우려면 부자이던가, 부자인 부모님 또는 친구가 있어야 된다. 먹고사니즘 앞에 장사 없다.

Q 기면병을 비롯한 희귀난치성 질환자는 재정적 자립이 힘들다.

카페에 여러 환우들이 취업 관련 고민을 털어놓고 상담을 요청한다. 공인노무사에게 물어봤더니 현행법상 병력을 숨기고 입사하면 문제가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자연히 취업이 힘들어진다. 그래서 기면병을 가진 사람들로만 이뤄진 회사, 소셜 펀딩 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상상했다. 하지만 수많은 일들을 혼자서 하다 보니 매 번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만 하고 현실로 만들지 못해 아쉽다.





앞으로도 늘 그래 왔듯이


Q 카페를 만들고 잃은 것이 있는가.

청춘.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전성기인 20대 때 스펙 쌓기 등 평범한 일에 몰두했으면 어떨까 싶은 때도 있다. 돌아보니 내 젊음을 모두 이 일에 쏟았더라. 그래서 기회와 개인적 성취를 놓친 부분이 아쉽다. 고속 승진 중이라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Q 지금까지의 활동에 모두가 고마움을 가지고 있다.

12년이나 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젊음과 꾸준함으로 일했다. 더 유능한 분에게 넘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보다 더 혁신할 사람이 필요하다.


Q 그런 사람 없을 듯. 앞으로도 잘 부탁드린다.

...


Q 가장 보람 있는 순간은 언제인가.

환우 모임을 할 때 약 3명 정도의 환자분이나 환자의 부모님께서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를 해주신다. 정말 진심이 담긴 고맙다는 말씀을 들을 때 정말 보람 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당분간은 현상유지를 하지 않을까. 규모가 커지고 일 할 사람이 모이면 할 일이 아주 많다. 정말 회장 할 사람 어디 없나. 12년째 아직 우리 단체는 정식 협회가 아니다. 정식 협회가 되려면 사무실이 있어야 하고 상주 인력도 필요하다. 정식 협회가 된다면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아주 많다.






한국기면병협회 창립준비모임 https://cafe.naver.com/knpa



TMI 1. 이 한 회장의 학창 시절 별명은 구영탄이었다고 한다.


TMI 2. 이 회장의 취미는 탈력발작으로 약해진 근육을 조금이나마 강화시키기 위한 무거운 운동기구 들기다. 이런 수련의 의미는 새벽에 개인적 용무로 연락을 마구 하거나 카페에서 근거 없는 욕설과 비방은 하지 말라는 것인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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