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다시 읽다 6 – 유표
삼국지를 다시 읽다
초기에 성공적으로 형주를 안정시킨 유표는 계속 발전을 이루어야 하는 과제의 상황을 맞는다. 이미 원소는 가장 강력한 세력을 이루었고 조조도 중앙정부를 장악해서 세력을 키우고 있었다. 하남의 원술 강동의 손책도 세력을 키우느라 꿈틀대고 있었다. 조만간 충돌과 재편이 벌어질 것은 불 보듯 확실했다. 그런데도 유표는 ‘형주는 인물과 식량이 풍부하고 누구의 침입도 막아낼 군사를 가지고 있다’라면서 세력을 확장하려 하지도 않고 외부의 침략도 허용하지 않는다는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그의 건강이 급격하게 악화한다. 그제서야 유표는 유비에게 형주 자사 자리를 이어 달라는 유언장을 쓰다가 채 부인과 채모 일당에 의해 저지되고 만다. 자기가 낳은 차남을 후계자로 만들려는 채 부인이 독살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있었다. 유언장이 조작되고 차남 유종이 형주 자사의 자리를 승계한다. 그리고 상황이 불리해지자 채 부인과 차남 유종은 자신들의 이권을 계속 유지할 요량으로 조조에게 항복했으나 죽임을 당한다. 공모자였던 채모는 손권 정벌을 위한 수군 조성과 훈련을 위해 기용되었다가 적벽대전 직전에 제거된다. 그 후 살기 좋았던 형주는 조조 – 유비 – 손권으로 지배권이 옮겨가면서 3국의 싸움터가 되어버린다. 변화의 타이밍과 방향, 어떤 변화를 해야 할지 모르는 리더의 실패가 자신 뿐만 아니라 조직까지 망가뜨린 것이다.
무엇이 유표를 실패하게 했을까? 군사 하나 대동하지 않고 혼란스러운 형주에 부임을 해서 성공적으로 바로잡고 영향력을 발휘하는 위상으로까지 변화시킨 유표는 왜 그 성공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을까? 그의 행동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요인들을 찾아낼 수 있다.
첫째, 강호팔준이라고까지 불린 유표의 성향이다. 학문을 좋아하고 백성을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실제로 유표는 지식인과 교류하는 것을 좋아했다. 많은 지식인과 인재들이 그를 찾아왔다. 그런데 당시 서서(원적)나 수경선생 사마휘, 제갈량 등 시대의 흐름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재들은 유표에 대해 실망스러워 했다. 아마도 유표는 고담준론을 즐기며 학문을 논했으나, 더 깊은 통찰을 끌어내고 현실에 적용하는 것에는 덜 적극적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형이상학적이고 이상적인 생각과 논의에 그치고 행동은 덜 실제적이었을 수도 있다. 힘을 가졌으면서도 방어적 자세를 견지하고 소극적으로 변화에 대응했던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둘째, 의사결정을 미루는 성향이다. 그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결정적 타이밍 세 번을 모두 흘려버렸다. 물론 그의 성향이 큰 몫을 했겠으나 제대로 운신할 수 없는 상황일 수도 있다. 리더는 힘이 있어야 자유롭다. 그런데 그의 힘의 바탕은 채 씨 가문의 세력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에는 유표의 힘을 방해할 만한 힘으로 성장한다. 실제로 그를 능가했을 그 힘은 여러 곳에서 보이며, 유표는 이에 대한 어떠한 대책도 없어 보인다. 방치했을 수도 있다.
셋째, 지도자로서의 모호한 태도다. 유표가 유비에게 기대려는 것을 눈치챈 채모 일당은 유비를 죽이려는 시도를 여러 번 한다. 유표도 그것을 알았고 정중하게 사과도 했으나 그 일의 책임을 묻거나 문책하거나 처벌한 적은 없다. 큰아들 유기가 있는데도 어린 차남을 후계자로 생각하는 듯하는 우유부단한 모습도 보였다. 오래 전장을 떠나서 허벅지에 살이 쪘다고 한탄하는 유비를 보며 형주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가진 것은 아닌가 의심하기도 한다. 유표가 과단성이 부족하고 모호한 태도를 가진 사람임을 짐작하게 한다. 리더가 분명하지 않으면 부하들은 멋대로 해석하고 혼란스러운 행동이 더 많아진다.
넷째, 그의 힘을 방해하는 채 씨 가문의 영향이다. 통치 전반기 성공의 바탕인 채 씨 세력은 후반기에는 실제로 통제하기 힘들 만큼 커져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 세력이 ‘형주’ 전체의 이익이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했다는 것이다. 조직 내 붕당의 속성이다. 붕당의 자기 이익 추구 본능은 리더가 걸림돌이라고 판단되면 제거하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채 부인도 유표의 유언장을 위조해서 자기가 낳은 차남 유종을 후계자로 만든다. 결국 전체 조직은 몰락한다.
GE의 전 회장인 잭 웰치는 열정(energy)과 격려(energize), 결단력(edge), 실행력(execute) 네 가지(4E)를 현대 리더십의 요체라고 말했다. 리더마다 스타일은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열정을 가지고 활력을 갖도록 구성원을 격려하면서 결단력 있게 의사 결정하고 어려움을 뛰어넘어 실행하는 것이 리더십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의사결정과 실행이 리더 역할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의사결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리더는 없다. 내가 내린 의사결정이 조직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중압감을 항상 느낀다. 최선의 의사결정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상황에 대한 통찰력과 명확한 의식을 바탕으로 의사결정하려고 노력한다. 누군들 틀린 의사결정을 하고 싶겠는가. 그런데 틀린 의사결정보다 더 나쁜 것이 있다. 바로 늦은 의사결정과 타이밍을 놓친 의사결정이다. 유표는 내려야 할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거나 너무 늦게 내림으로써 실패한 리더인 것이다. (完)
<2021. 6.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