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책,
강동 소패왕의 등장

삼국지를 다시 읽다 7 – 손책

by 강한진

삼국지는 뛰어난 인물로 넘친다. 모두 천하제일이다. 중국인의 허풍이 부풀린 것이라 하더라도 모두 의미 있는 흔적과 교훈을 남기고 있다. 어린 나이에도 두드러진 인물들이 있다. 그중 손책은 참 아깝다. 너무 일찍 어이없게 죽었다.

초한지의 항우를 패왕이라고 부른다. 항우도 강동 출신이다. 손책이 항우와 비슷한 점이 많다 해서 소패왕이라고 부른다. 만일 손책이 젊은 나이에 죽지 않았다면 삼국지 이야기는 좀 다르게 흘러갔을지도 모른다.


그의 아버지 손견은 천하의 원수 동탁을 무찌르자며 뭉쳤던 18로 제후군에 강동 대표로 참석한 장수다. 그리고 동탁을 공격하다가 도망가던 황제가 불타버린 낙양의 궁궐 우물에 숨긴 옥새를 발견한다. 18로 제후군이 해체된 뒤 손견은 옥새를 가슴에 품어 숨기고 돌아오다가 매복군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마는데 그의 나이 37세였고 아들 손책은 17살이었다.

강동 지방은 중원에서 떨어진 곳이지만 물자가 풍부하고 문화적 자부심이 높은 지역이고 큰 호족 세력이 여럿 있었다. 손견의 아들이라 해도 17살이면 어리다. 지방의 지도자로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손책은 원술의 휘하로 들어가서 21살 되던 해에 천자의 옥새를 담보로 군사 5천을 얻고 아버지 휘하에 있던 장수들까지 이끌어 강동 지방을 다시 회복한다.


그 과정을 보면 손책은 자신의 처지와 현실을 냉철하게 판단하고 적절한 전략과 행동을 선택할 줄 아는 인재다. 원술 밑에서 5년이나 굴욕적인 상황을 견디고 나이 많은 아버지 휘하의 장수들 모두 자신의 부하로 회복한다. 그리고 때가 되자 명분보다 실리를 중심으로 판단하고 단호하게 행동하는 리더의 면모를 보여준다.

손책은 고작 20대 초반에 불과했지만 용맹함과 전략적 판단, 큰 도량을 갖춘 인물로 소문 나서 원술은 그를 양자로 삼고 싶어 했고 조조도 “아들을 낳으려면 손책과 같은 아들을 낳아야 한다”하고 탐냈다. 아버지 휘하였던 장수 모두를 이끌었고 어리다는 이유로 지도자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지방 호족 모두를 자기편으로 만들고 힘으로도 제압해 이끄는 지혜를 발휘했으며, 맞서는 태사자를 굴복시키고 추종하게 만드는 안목과 포용력도 보여주었다. 그런 그의 아쉬운 죽음, 그 일련의 사건 안에 교훈이 들어 있다.


손책이 강동지역을 확보하자 원소와 맞서던 조조는 그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했다. 그래서 동생 조인의 딸과 손책의 동생 손관을 혼인시키자고 제안한다. 그러자 손책은 대사마직을 달라고 조건을 제시한다. 대사마는 병조판서, 국방장관에 해당한다. 손책의 요구가 지나치다고 느꼈거나 너무 키워주게 된다고 생각했는지 거절한다. 그 일로 손책은 조조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화가 난 손책은 원소와 전쟁하느라 방어가 약해진 조조의 근거지 허창 공격을 구상한다. 체제도 강화하고 영토도 확장하기 위한 다목적 구상으로 보인다. 조조의 혼담 제의에 일부러 거절될 조건을 내세워서 빌미를 만들고 조조-원소 사이의 캐스팅 보트 입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활용하려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강동 세력 모두 손책을 지지하고 따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군태수도 그중 하나다. “손책을 강동에 두면 안 되니 도성으로 불러들이라”라는 밀서를 조조에게 보냈는데 그 밀사가 도중에 잡히는 바람에 손책에게 발각되고 말았다. 화 난 손책은 오군태수를 처형했고 오군 태수의 남은 부하 세 명은 복수를 다짐한다. 그리고 잠복해 있다가 사냥 나온 손책을 향해 독이 묻은 활을 쏜다.

독화살을 맞았으나 손책은 다행히 구조되었고 전쟁 준비를 계속한다. 그리고 원술이 함께 조조를 공격하자고 제안하자 출병을 서두른다. 부하들이 말려도 소용없었다. 출병을 격려하는 잔치를 하는 중이었다. 밖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잔치에 참석했던 장수들도 자리를 빠져나갔다. 무슨 일인가 봤더니 ‘우길’이라는 도사가 거리에 나타나서 많은 사람이 향을 피우며 절하고 있었다. 화가 났다. 어머니가 말렸으나 우길을 잡아들이고 민심을 미혹한다며 처형했다. 그 후 손책은 갑자기 상처가 악화되었고 환영에 시달리다가 죽었다고 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죽음이다.


갑작스러운 리더의 유고는 조직의 최대 위기다. 모든 활동은 중지되며 최고로 시급한 과제는 권력 승계다. 적자 승계의 원칙을 따르면 되나 당시 아들은 강보에 싸인 젖먹이였다. 겨우 5~6 년 된 국가가 심각한 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런데 이 위기에서 보여준 손책의 판단과 조치는 최고였다. 동생인 손권을 후계자로 지명하면서 부하들에게 정확하게 지침을 내린다. 손권에게 남긴 “대군을 이끌고 싸움터에서 승부를 내는 데는 네가 나를 따르지 못할 것이나, 현자를 등용하여 강동을 다스려 나가는 일에는 내가 너를 따르지 못한다”라는 말은 그가 국가의 다음 단계 발전까지 생각하고 있던 리더였음을 보여준다. (계속)


<2021.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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