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뒤,
영희의 결혼식 날이다. 정태가 친구 아람을 영희에게 소개시켜 주었고 1년 연애 끝에 둘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영희는 미희와 정태가 결혼 했던 북촌마을 한옥을 빌려 스몰웨딩으로 결정했고 직계 가족과 친한 친구 두 세 명만 참석하기로 했다. 이번에도 양가 모두 합쳐 30명. 플래너 없이 신랑과 신부가 준비하고 가족들이 사회를 보고 축가를 하고 주례를 하는 결혼식이다.
영희는 미희와 정태의 결혼식이 좋았다고 했다. 결혼을 하게 된다면 한옥에서 언니처럼 똑같이 해야지 잠깐 마음을 먹었는데 정말로 똑같이 하게 된 것. 드레스도 웨딩 샵에서 구매했고 정장도 아울렛 남성복 매장에서 구매했다. 스튜디오 촬영은 생략하고 본식에 스냅촬영과 단체사진을 찍는 것으로, 메이크업은 한옥웨딩과 협업으로 있는 출장 헤어, 메이크업을 받았고 날짜도 10월 가을로 정했다. 영희는 미희의 도움으로 결혼준비가 힘들거나 분주하지 않았고 아람과의 다툼 없이 보다 수월하게 결혼식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예식은 12시에 시작했고 하객이 모두 도착해 착석한 뒤 시작되었다. 미희와 정태가 사회를 보았고 신랑신부가 입장한 뒤, 영희 아람이 준비한 혼인서약을 읽었다.
집이 제일 좋은 남자와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답답한 여자
미세먼지 심할 때 마스크 절대 안 벗는 남자와
미세먼지보다 마스크가 더 답답한 여자
여름에도 이불을 덮고 자야 하는 남자와
겨울에도 이불을 발 밑에 두고 자야하는 여자
한국에서 운전면허도 안 딴 남자와
호주에서 스카이다이빙도 한 여자
다른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다는 남자와
주변 모두의 사람은 궁금하다는 여자
이렇게 다른 저희가 결혼합니다
연애한지 1년이 되었고
그동안 서로의 조금씩 모습을 조금씩 인정하고
서로 조금씩 변화됨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싸우고 화해하고
울고 웃고 재미있다가 지루해하며 살겠지만..
의 내용으로 아람이 ‘~여자’와 영희가 ‘~남자’를 둘이서 번갈아가면서 읽어 내려갔다. 하객은 남자와 여자를 반복하며 서로 다름에서 오는 격차에 공감하며 웃었다. 아람의 아버지가 나와서 성혼선언문을 읽었고 이어서 혼인축사가 이어졌다. 편지를 써온 영애가 노란 저고리와 분홍 치마를 입고 단상 앞으로 나와 접혀 있던 종이를 펼쳐 읽었다.
사랑하는 넷째 딸 영희에게
언니들 틈바구니에서 작고 어리기만 보였던 우리 막내딸이 어느새 이렇게 커서 결혼이라는 걸 한다니, 언니들 결혼식 세 번을 치뤘어도 네 번째 영희의 결혼식이 엄마에게는 정말 특별하다. 알다시피 첫째부터 넷째까지 모두 딸을 낳고 키우면서 엄마는 힘든 시간이 많았어.
첫째도 딸, 둘째도 딸, 셋째도 딸, 넷째도 딸인 것을 알고는 시댁 부모님 뵐 낯이 없어 병원에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혼자 울기도 했다. 사람들이 딸만 넷을 낳았다며 한마디씩 했을 때도 엄마는 더 큰 목소리로 나는 딸이 많아서 좋아요, 우리 집은 딸 부잣집이에요.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딸들이 잘 자라주어 사위도 넷을 얻어 엄마는 엄마가 말한 대로 정말 부자가 되었어.
여기 언니들도 모여 있지만 우리 집 며느리로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아닌 영희같은 며느리가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엄마는 영희가 제일 좋아. 엄마와 아빠가 최선을 다해 키우고 사랑했지만 돌이켜보면 부족했던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다. 넷째딸이어서 엄마의 관심과 사랑이 더 부족한 건 아니었는지 편지를 쓰면서도 자꾸만 미안하고 또 돌아보게 돼. 부족한 환경이었음에도 밝고 건강하고 예쁘게 잘 자라주어 정말 고맙고 결혼해서도 지금보다 더 예쁘고 밝게 살길 바래.
아람이도 이제 김서방이라고 불러야겠다. 김서방, 자랑스러운 내 딸이지만 부족한 것 많으니 서로 아껴주고 위하면서 살길 부탁해. 결혼하고 교회 손잡고 같이 다니면 더 좋겠다. 10월, 눈부시고 청명한 아름다운 계절이 꼭 하나님의 축복처럼 엄마는 느껴진다. 앞으로도 너희들의 앞날을 하나님께 기도하며 지켜보고 응원할게. 결혼을 축하하고 사랑한다.
10월 12일 엄마가
씩씩한 발걸음 만큼이나 씩씩한 목소리로 한줄 한줄 읽어갔고 ‘첫째도 딸, 둘째도 딸, 셋째도 딸,’에서 사람들이 반복되는 ‘딸’에 웃었다. ‘우리 집은 딸 부잣집이에요.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딸들이 잘 자라주어 사위도 넷을 얻어 엄마는 엄마가 말한 대로 정말 부자가 되었어.’부터 영애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코를 한번 훌쩍였고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눈 주변을 훔쳤다. 어느 새 영희도 눈시울이 붉어져 영애와 똑같이 눈물을 닦고 있었다. 영애는 선희 결혼식에서 딱 한번 울었다. 진희와 미희 결혼식에서 울지 않았는데 영희 결혼식에서 또 눈물이 났다. 마지막이라 그랬을까. 미희는 예식이 끝나고 영애에게 다가가 조금 놀리는 투로 웃으며 물었다.
“엄마 편지 읽을 때 우시던데?”
“안 울었어.”
“에이~ 우는 거 다봤어! ...... 선희 언니 결혼식 때 울고 영희 결혼식 때 울고 왜 나랑 진희 언니 결혼식은 안 울었어? 다 같은 딸인데? 엄마는 선희언니랑 영희가 더 좋은가봐? 편지도 영희가 제일 좋다고 하고.”
“뭘 더 좋아 다 좋지! ......덜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랑 진희는 알아서 잘 살고 잘하니까 걱정이 하나도 안 된거지. 선희랑 영희는.. 아유~ 나도 몰라 물어보지마.”
하며 자리를 옮겼다. 미희는 서운하기보다 영애가 귀여웠고 영애 옆에 든든한 딸, 걱정 안 되는 딸, 잘 사는 딸, 제일 좋은 딸, 서로 다른 딸들이 영애 옆에 있다는 게 든든했다.
영애는 영희가 제일 좋다고 했다. 영희의 결혼식이니 미희나 선희가 더 좋다고 할 수 없고 당연히 영희가 좋다고 해야지 생각하겠지만, 영애는 진심으로 영희가 제일 좋다. 딸 중에서 하루에 한 번, 이틀에 한번 꼴로 전화통화를 가장 많이 하는 딸이다. 심심할 때 전화하기도 하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자주 전화 한다. 영희는 통화를 못 하는 상황에도 ‘엄마 이따가 전화할게’ 라고 말하고 이후에 다시 통화해 영애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요즘은 통화내용이 수아 도시락 가게 운영에 대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주문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이번달 매출은 얼마인지, 힘들지 않는지 등. 오픈 초에는 영애가 하루에 5번에서 7번도 전화를 했다. 막내딸이 혼자서 장사를 한다는데 고생하는 것 같아 마음이 쓰였고 궁금했고 또 가까이라도 살면 가서 도와주기라도 할텐데 그러지 못하니 전화 통화로 힘을 주고 싶기도 했다.
수아 도시락은 다행히 순항중이다. 마케팅 이력이 있는 영희는 그동안의 노하우를 총 동원해 SNS와 블로그로 수아 도시락을 알렸고 같이 일했던 마케팅 회사 동료들, 디자이너들과 직원들에게도 도시락을 선물했는데 완벽한 후기로 홍보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주변 학교나 병원에서도 단체 주문이 들어왔고 우연히 성북구청에 주문을 받아 들어간 도시락이 지자체 공무원 교육차 나누어주게 된 간식이었고 이후 서울 각 구청에서도 주문이 쇄도하게 됐다. 요즘은 연예인 조공도시락, 역조공 도시락으로 메뉴와 구성이 더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영희는 결혼 후 아람과 수아도시락을 같이 운영하기로 했다. 지금 가게에서 다양한 메뉴구성과 대량건을 하기에 한계가 있어 신혼집 근처 10평 중반으로 가게 이전을 결정하였고 현재 계약을 마친 상태이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간단한 공사와 인테리어 후 이사를 계획하고 있다. 음료 포장이나 쿠키 포장 등 시부모님이 파트타임으로 사업을 돕기도 했다. 직장이나 일보다 결혼해서 살림만하며 살고 싶다던 영희는 남편과 시댁을 책임지게 된 사장이자 가장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