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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삶의 방식

by 혜화동오로라



미희와 선희의 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


스마트 워치 사건 이후 미희는 선희와 돈거래를 일절 하지 않고 문자나 연락도 줄었다. 미희는 그렇게 좋아하는 조카들의 안부도 묻지 않는다. 결혼 전과 후가 달라진 것도 있겠지만 미희는 어느 순간부터 선희 생각만 하면 답답했고 화가 났고 또 눈물이 났다.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잘 살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통장잔고는 늘 마이너스에 발목을 자주 다치고 무릎과 골반통증에 몸 여기저기에 염증 수치가 높다. 야식과 술로 몸무게가 늘어 얻은 관절통과 염증수치라고 했다. 아이들의 유튜브 시청이 일상이고 밤마다 치킨과 족발, 닭발 등의 야식도 어른들을 따라먹는다. 아이들도 소아비만 판명을 받았다. 집은 물건들로 둘러싸여 발 디딜 틈이 없다.


미희가 선희에게 말한 적이 있다. 불필요한 소비를 줄여라, 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해라, 야식과 술을 줄이면 생활비도 줄고 자연히 다이어트도 되고 건강해질 거다, 조카들 유튜브 시청도 줄이면 좋겠다, 집 정리를 해야 한다, 혼자서 어려우면 ‘정리수납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미희의 진심을 담은 조언이지만 선희도 모르는 내용이 아니다. 미희의 말에 ‘알았어’를 넘어 ‘그만해’라며 신경질적으로 받아쳤고 미희도 되려 상처를 받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도 입을 닫는 경우가 많았고 마음의 문도 닫게 되었다. 말은 사람을 바꾸지 못한다. 미희는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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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희와 정태는 저녁을 먹고 밤 산책을 즐긴다. 남산을 주로 이용하는데 산이 주는 시원함. 밤이 주는 고요함에 정태는 밤산책을 어려서부터 좋아했다. 정태를 따라 미희도 같이 가게 되었고 한 시간 정도 남산을 오르고 내리다 보면 운동도 되지만 대화의 시간도 자연히 길어져 미희도 좋아하는 시간이 되었다. 미희는 부부에게 등산이나 산책이 운동도 하고 대화도 할 수 있는 좋은 취미인 것 같다고 덧붙였다.


봄부터 시작된 산책은 남산 둘레길부터 남측순환로 북축순환로 등 다양한 코스로 다녔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완만한 코스나 가파른 코스를 골라서 오른다. 주말저녁에 시간과 체력도 여유 있어 오늘은 서울타워 꼭대기를 오르기로 했다. 오르는 길에 풀과 꽃도 보고 다양한 벌레들도 마주한다. 지네, 송충이, 애벌레, 거미, 봄에는 개구리와 도롱뇽도 보았다. 밤 12시가 넘은 시각 걷다가 마주한 까만 동그라미는 개구리였고 길쭉한 나뭇가지 모양은 도롱뇽이었다. 무심코 사람들이 밟고 갈 수도 있고 순찰 오토바이에 다칠 수도 있으니 정태는 개구리와 도롱뇽을 풀숲이나 연못에 옮겨주었다.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안 돼요. 큰일 나셔, 집으로 가세요.” 하며 개구리를 연못가로 옮기고 “아~ 이 아저씨 오늘 또 여기 계시네! 집에 가서 주무셔야지 이렇게 길바닥에 있으면 안 되신다니까” 며 도롱뇽을 풀숲으로 또 옮긴다. 동물구조대를 자처하느라 삼사십 분이면 오르는 코스가 한 시간이나 걸린다. 말투가 웃기고 걸걸하지만 혹여나 개구리와 도롱뇽이 다칠까 나뭇가지와 나뭇잎의 구조도구가 동원되었고 정태의 손짓도 조심스럽다. 미희는 구조대 일이 끝날 때까지 옆에서 지켜본다. ‘남산에 독사도 산다’는 정태의 말에 미희는 거짓말하지 말라고 안 믿는다고 했지만 괜히 정태의 손을 꼭 잡고 오르기도 했다.


서울타워 직전에 넓은 전망대가 있다. 데크가 깔려있고 앞에 산이나 나무가 없어 시야가 탁 트였다. 서울타워도 가까이서 볼 수 있어 꼭 들르는 전망대이기도 하고 가끔은 서울타워 정상까지 가지 않고 이곳 전망대에서 다시 내려가기도 한다. 전망대에 도착해 벤치에 앉은 다음 물을 한 모금씩 나눠 마셨다. 미희의 에코백에는 집에서 준비해 온 물, 커피, 음료가 담긴 물통이 세 개 있다. 곧이어 믹스커피를 탄 물통을 꺼내 정태가 벌컥벌컥 들이키며 동시에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번쩍 치켜들며 맛있다는 표현을 한다. 한차례 마시고 난 뒤 “이야~ 네가 타 준 커피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기분 좋으라고 하는 멘트인가 싶을 정도로 오버를 하는데 정태는 진심이었고 미희는 내심 기분이 좋다.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는 미희는 라이트 믹스와 아라비카 믹스 두 개의 조합이 가장 맛있는 걸 알고 난 뒤부터 텀블러에 얼음을 가득 넣고 진하게 탄 두 개의 믹스를 넣어 흔들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가 완성이다. 미희도 커피를 건네 마신다.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있고 바람이 불어 시원하고 조용하다. 눈앞에 반짝반짝 서울 야경이 펼쳐져 있다. 벤치에 앉아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면 둘은 아무 말이 없다. 행복한 시간이다.

“우리 이번 여름만 지나면 또 금방 결혼기념일이네?... 시간이 정말 빠르다!”

“그러게, 결혼하지 얼마 안 된 거 같은데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니!”

정태 어깨에 기대 있던 미희가 먼저 말을 건넸다. 그리곤 뉘었던 고개를 들고 벤치에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아 이야기를 늘여 놓는다.


“내 친구들도 나랑 비슷한 시기에 결혼 많이 했잖아, 주변에 보면 다들 좋은 얘기보다 만나면 돈 이야기나 시댁 이야기, 심지어 이혼이야기도 하더라.. 대학 후배 중에 어떤 애는 내 SNS 보고 부럽다고.. 나는 기껏 올리는 게 카페에서 커피 마신 거나 서점 가서 책 사거나 책 읽은 거 아니면, 너랑 주말에 산책하거나 데이트하는 거 뭐 그런 것들이거든. 오히려 걔네들이 호텔도 가고 명품도 선물 받고 해. 따지고 보면 걔네들이 집도 있고 차도 있고 남편이 직장 다니고 돈 벌어다주니까 내가 부러워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반대가 됐어.”

“대부분 집도 대출이고 차도 대출이잖아. 한 달 벌어 이자내고 생활비내고 그러면 걔네 빠듯하지. 거기다가 애도 있고 하면 오히려 마이너스고.”

“애들 얘기 들은 적도 없으면서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미희는 깜짝 놀라 정태에게 되물었다.

“뭐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지!”

호들갑 떨 것 없다는 듯한 정태의 반응에 미희는 벤치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말을 이었다.


“근데 소현언니는 애가 셋인데도 오히려 다른 사람들 돕고 살잖아. 시누이지만 존경스럽고 닮고 싶은 점이 많아. 남편이 교수인데도 전셋집 살고 가구들도 모두 중고에다가 애들 옷은 일 년에 한두 번만 사주시지? 다 물려서 입히잖아. 근데도 애들 교육은 잘 시켜서 조카들이 맨날 1등 한다고 자랑하잖아. 언니가 육아휴직이긴 하지만 아빠는 대학교수에 엄마는 수학교사니까 애들이 공부를 못 하는 게 이상하지만.. 선희언니는 왜 그게 안 되는지 몰라! 애는 둘밖에 안되고 둘이 같이 벌면서 맨날 마이너스고!! 아.. 이야기하니까 또 짜증이 확 올라오네!!”


“우리 누나는 구질구질한 거고. 그렇게 안 살아도 되는데 그런 삶을 사는 거에 이상한 자부심 뭐 그런 걸 느끼잖아. 오죽하면 첫째 조카가 일곱 살 때 자기네 집 돈이 없으니까 강가에 예쁜 조약돌 들고 와서는 팔 수 있냐고 물어보잖아. 조카한테 그 얘기를 듣는데 눈물이 다 나오더라. 난 우리 누나도 좀 이상하다고 봐.”

야경을 바라보며 대화를 하던 정태는 미희가 앉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앉아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선희 누나 이야기만 나오면 네가 좀 과민해. 맞아, 네가 말한 것처럼 누나가 좀 부족하게 있지. 그런데 누구나 부족해. 우리도 주어진 것에 만족해서 욕심 안 부리고 아껴서 살지만 누군가 보기에는 부족해 보일걸? 정리정돈 잘 되어있고 청소도 자주 하지만 결벽증 있는 사람이 보면 우리 집도 더럽다고 한 거고 아껴서 살지만 구두쇠가 보면 낭비한다고 할 수도 있다? 서로 삶의 방식이 다른 거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 너랑 누나의 삶의 방식이 다른 거야. 서로 비슷한 삶의 방식이면 어울려서 사는 거고 삶의 방식이 다르면 서로 필요한 만큼 거리를 두면 돼. 나 봐봐 우리 집 식구들 몇 년째 안 보고 살고 있잖아. 너도 누나랑 가깝게 지내서 감정 상하지 말고 적당한 거리를 둬. 오히려 그게 누나를 존중하는 방식이고 너도 덜 스트레스받는 방법이야.


정태의 너무 맞는 말에 미희는 말이 없어졌고 생각이 많아졌다. 얼핏 보면 완벽해 보이는 미희의 일상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말할 수 있다. 하루 커피 한잔 혹은 두 잔을 마시는 미희를 보고 몸에 좋지 않은 커피를 마신다고 할 수 있고, 매일 마시는 커피는 집에서 제조해 텀블러에 가지고 다니고 주말은 카페에서 마신다. 커피 한 잔에 오천 원, 누군가는 과소비라고 할 수 있다. 서른 중반을 넘긴 미희를 보고 서른만 넘어도 노산인데 빨리 아이를 가지라고 주변에서 자주 말한다. 미희도 누군가의 조언으로는 커피를 마시지 말아야 하고, 하던 일도 그만두고 아이부터 가져야 한다.


미희 친구의 아빠가 의사인데 엄마가 갱년기로 우울증이 찾아왔다고 했다. 백화점 쇼핑 특히 옷을 좋아하는 엄마는 원피스 한 벌에 백만 원, 코트 한 벌에 오백만 원으로 과소비뿐 아니라 대형평수 방 4칸 아파트에 온갖 그릇과 아직도 뜯지 않은 새 물건들로 둘러싸여 있다고 했다. 한 달에 몇 천만 원을 버는 의사에 병원장인데도 아직도 집에 빚이 있다는 말에 (빚도 많고 돈도 많다) 병원에서 주 6일씩 일하는 아빠는 엄마에게 뭐라 안 하냐고 물으니 우울증으로 힘들어할 때 오히려 백화점에서 쇼핑 하라며 카드를 쥐어 준다고 했다.


차상위 계층으로 나라에서 임대아파트를 지원받아 사는 동생은 애플을 좋아해서 아이폰뿐 아니라 애플워치, 아이패드, 아이맥, 맥북, 이어폰과 헤드셋 그 외의 다양한 액세서리도 구비했다. 돈이 없어서 편의점으로 끼니를 해결할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고 생활비가 부족해서 편의점에서 야간 알바도 한다고 했다. 애플기기를 안 사고 그 돈을 모아서 먹는 걸 잘 먹던지, 미래를 위해서 저축을 하고 좀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지만, 좋은 자동차나 아파트는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지만 애플전자기기는 한 두 달 노력하면 얻을 수 있으니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에 소비를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의 많고 적음에 따라 저마다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나는 누나가 결혼해서 아이 키우면서 이만큼 사는 것도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생각해!”

한동안 말이 없던 정태가 한마디를 건넸다. 많은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이유는 자신의 편이 되어서 같이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지만 오히려 미희의 반대편에 서서 이야기해 주는 말들에 안심이 되었다. ‘괜찮아 미희야.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 잘 살 거야.’ 라며 미희를 다독이는 것 같았다. 미희는 정태에게 머리를 다시 기대었다. 정태의 손에 깍지를 끼었고 정태 손을 두 손으로 잡으며 정태의 손가락과 손톱을 만지작 거렸다.


서울타워까지 올라가지 않을 때가 많다. 이곳 전망대의 경치가 더 좋아서 두 사람에게 이곳이 늘 정상이었다. 미희가 오늘은 서울 타워까지 올라가 보자고 말했다. 그리고 아까 한 생각을 정태에게 이야기했다. 보통 여자들의 하소연은 자신의 편이 되어 공감해 주기를 바라는데 오히려 반대편에 서서 해준 이야기들에 더 마음이 풀리고 안심이 된다고. 정태는 벤치에서 일어서서 올라갈 준비를 하며 “그래?”라는 말과 함께 한껏 우스꽝스러운 표정, 콧평수를 넓히고 눈썹과 이마를 찡그리고 입을 괴상하게 벌린 채 연기한다.

“어우~~ 진짜!!! 선희누나 왜 그런다니 정말?! 평생 가난하게 살 건가 보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려야지 계속 이렇게 살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 청소도 좀 하고!! 애들 교육도 좀 잘 시키고!! 돈도 좀 아껴 쓰고 그래야지. 못살겠다 정말!!”

라며 말하며 신경질이 난 척 걸어간다. 미희는 혼자 연기하며 걷는 정태의 뒷모습에 웃음이 터져 바닥에 주저앉아 웃는다. 일어나질 못하겠다고 숨도 못 쉬며 웃으니 “빨리 와~ 뭐 하고 있어?!” 하며 정태가 미희에게 다가와 주저앉은 미희를 일으킨다. 미희도 정태의 손을 잡고 걷는다.

“야, 선희누나 정말 너무하지 않냐?!” 올라가는 중에도 정태의 연기는 계속된다. 미희가 “그만해, 1절만 해”라는 말에 “아, 그럴까?” 답하며 이내 편안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태도 알고 있다. 미희가 과민한 이유는 선희와 조카들에 대한 마음이 크기 때문인걸 그래서 걱정하는 마음에 가끔 화가 난다는 걸. 그래서, 정태는 미희의 짜증이 귀엽다.


가던 길을 멈추고 정태가 미희를 안는다. 미희도 정태에게 안긴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다시 남산을 오른다. 조금 전 남산을 올라오던 때와 다르게 발걸음이 한결 더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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