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통을 잘하면 일도 잘한다,
황희 (2)

조선 직장인 열전 - 조선 인물들을 통해 배우는 직장인 처세법

by 신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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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으로 중재하는 중간관리자

황희의 소통 능력은 군신 간의 갈등이 불거졌을 때에도 빛을 발했다. 세종은 조선의 임금답게 유교를 숭상한 임금이었으나 말년에는 불교에 심취하였다. 사실 할아버지인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스승으로 삼을 정도로 불심이 깊었고,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도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만큼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궁궐 안에 불당을 짓는 일은 당연히 유생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백성에게는 유교를 숭상하라고 해야 하는 임금이 직접 불교신자임을 공표하다니, 집현전 학자들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면서 출근을 거부하였다.


“내불당 건립 문제로 인해 유학자들의 불만이 매우 큽니다. 마땅히 모범을 보여야 할 주상께서 어찌 궁궐 안에 불당을 건립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황희는 유생들의 여론을 대표하여 세종에게 수차례 내불당 건립을 취소해 줄 것을 진언하였다. 하지만 세종의 뜻도 완강하였다.


“이것은 내가 불교를 숭상하기 위함이 아니고, 다만 부모의 극락왕생을 바라며 자식 된 도리를 다하기 위함일 뿐이오. 내가 이 나라 임금이 되어 부모를 위해 이런 작은 것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오? 이것만은 내 뜻대로

하고 싶으니, 자식 된 심정을 헤아려주기 바라오.”


세종의 고집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 황희는 말없이 조용히 물러났다. 이번에는 일일이 유생들을 찾아다니며 간곡한 어조로 그들을 설득하였다.


“그대들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오. 나도 평생을 유학자로 살았고, 이번 일은 주상께서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정사를 내팽개치고 나 몰라라 하고 있으면 그 피해는 결국 백성들이 입지 않겠소? 그리고 주상께서 자식 된 도리를 조금이라도 더 하고 싶은 욕심에 그리 하시는 것인데, 그 심정만은 우리가 이해해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소. 부모에게 효성을 다하라는 것 또한 결국 공자의 가르침이 아니오? 자자, 이제 이쯤 하면 전하께서도 느끼는 바가 있으실 테니, 백성들을 생각해서라도 이만 궁으로 돌아가 일하도록 합시다.”


이때 황희의 나이가 84세였다. 손자뻘 되는 유생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세종의 효성을 이해시키고, 백성을 생각해서라도 다시 출근해 달라고 사정한 것이다. 정승까지 지낸 사람이 채신머리가 없다고 힐난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황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결국 노정승의 정성에 감동한 유생들도 시위를 접고 궁으로 돌아왔다.

중간관리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사장 또는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부하 직원들의 불만도 신경 써야 하며, 그 와중에 자기 일도 잘 해내야 한다. 특히 뛰어난 중간관리자는 경영진과 일반 직원들 사이에 갈등이 불거질 때 빛을 발한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에 따르면, 전문가에게는 매니저가 반드시 필요하다. 조직의 목표를 전문가에게 인식시키는 동시에, 반대로 전문가의 지식과 능력, 생각을 고객의 말로 바꾸어주는 매니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선을 유교국가로 만들고자 하는 유생들의 바람인 조직의 목표와, 불당을 지어 부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세종의 바람인 전문가의 생각이 서로 어긋나 갈등이 생겼다. 하지만 황희는 이 차이에서 오는 갈등을 ‘세종의 효성’과 ‘백성을 위한 정치’라는 고객의 말로 바꾸어 유생들이 공감할 수 있게 했고 결국 그들을 설득했다.

회사에서 사장의 방침은 거의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일반 직원들은 그 방침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설혹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도 있다. 이때 중간관리자는 사장의 방침을 확고히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직원들을 잘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사장은 오랜 시간 고민한 신사업 계획을 야심차게 발표했는데 직원들은 ‘또 쓸데없이 일만 벌이네…’라고 생각하며 마지못해 따라가는 상황이라면 그 사업은 이미 반쯤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때 중간관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왜 회사의 미래를 위해 신사업이 중요한지 본인부터 사장의 의도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팀원들에게도 사업의 목적과 목표를 이해시키고 힘을 한 데 모을 수 있도록 독려해야 한다. 사장에게는 직원들의 우려와 다양한 의견도 있는 그대로 전달하여 그가 내리는 올바른 판단에 적절히 참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중간관리자의 역할이고 책임이다.

유교를 숭상하는 조선의 건국 이념상 내불당 건립을 반대한 유생들의 집단행동은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황희는 그 이념에 공감하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 한다는 더 큰 명분으로 그들을 설득하였다. 임금이지만 동시에 자식으로서 내불당 하나 정도는 자기 뜻대로 짓고 싶었던 세종의 위신을 깎지 않으면서도 유생들의 명분도 함께 살려주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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