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소통을 잘하면 일도 잘한다,
황희 (3)

조선 직장인 열전 - 조선 인물들을 통해 배우는 직장인 처세법

by 신동욱

<조선 직장인 열전>이 출간되었습니다. 아래 주소에서 구입 가능합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83491758


언언시시(言言是是), 언언시비(言言是非)

황희의 별명은 ‘언언시시(言言是是) 정승’이었다.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하루는 여종 둘이 한바탕 크게 싸우고는 씩씩거리며 황희에게 왔다.


“대감마님, 글쎄 언년이가 이러쿵저러쿵했습니다. 분명 언년이가 잘못한 게 맞지요?”

“아닙니다, 대감마님. 그게 아니라 사월이가 이러쿵저러쿵해서 그렇게 된 것이랍니다. 사월이 잘못이지요?”


잠자코 듣기만 하던 황희가 대답했다.


“언년이 네 말도 옳고, 사월이 네 말도 옳다.”


시원하게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줄 알았던 황희의 뜬금없는 답변에 여종들은 잠시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부인이 불쑥 끼어들었다.


“대감, 세상에 그런 대답이 어디 있나요?”

“허허, 부인의 말도 옳구려. 헌데 모두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하니, 옳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지 않겠소? 그럼 각자 돌아가서 이번에는 자기가 그른 점도 한 번 생각해 보오.”


여종들은 자리를 물러갔다가 이내 다시 황희에게 와서 말했다.


“다시 생각해 보니, 굳이 그렇게 말한 저의 잘못인 것 같습니다. 저 때문에 괜한 소란이 일어났습니다. 죄송합니다, 대감마님.”

“아닙니다. 별것도 아닌 일로 발끈해서 소리친 제 잘못이 더 큽니다. 조금만 참으면 될 일인데…. 제 잘못입니다.”


황희가 껄껄 웃자 부인도 입을 열었다.


“저도 그리 잘한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아이들을 잘못 가르쳐서 이런 다툼이 일어나게 만들었습니다. 제 탓입니다.”


황희는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네 말도 옳고, 너의 말도 옳고, 부인의 말도 옳소.”


이처럼 황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한없이 너그럽고 도량이 넓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나라의 중요한 직책에 있는 사람에게는 따끔하게 혼내기도 하는 정반대의 언언시비(言言是非) 정승이었다. 특히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기로 마음먹은 김종서에 대해서는 매우 엄격하였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영의정 황희와 좌의정 맹사성이 며칠째 제대로 퇴근하지도 못한 채 업무에 시달리고 있었다. 공조판서였던 김종서는 나이 많은 원로들이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워 소박한 다과라도 대접하고 싶었다. 아랫사람에게 다과를 준비하라 하고,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공조의 예산을 사용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올라온 다과를 본 황희는 김종서를 불렀다.


“이 다과는 무슨 예산으로 준비했는가?”

“대감들께서 나랏일로 고생하시는 것이 안쓰러워 저희 부서 예산으로 조금 준비했습니다.”

“대신들이나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나라에서 따로 설치한 예빈시가 있고, 마땅히 거기에서 다과를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 아무 상관도 없는 나라의 예산을 사사로이 썼다는 말인가? 어찌 그 정도의 분별력도 없는 건가?”


은근히 칭찬을 기대했던 김종서는 깜짝 놀라 잘못했다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종서가 물러간 후 맹사성이 황희에게 말했다.


“나름 잘해보려고 그런 것인데, 그렇게 큰 잘못도 아닌 일로 어찌 그리 사정없이 혼내시는 겁니까?”

“맹대감, 이것은 제가 누구보다도 종서를 아끼기 때문에 인물로 만들려는 것입니다. 종서는 앞으로 우리의 뒤를 이어 정승이 되고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해야 할 사람입니다. 누구보다 신중하게 나랏일을 해야 할 사람이기에 더더욱 일을 가볍게 하지 않도록 가르치기 위함이지, 결코 곤란을 주기 위함이 아닙니다.”



진짜 소통에는 애정이 담겨 있다

설사 지금 당장 내가 상사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부하 직원을 이끌어야 할 순간은 반드시 온다. 또한 수직적인 지위 체계를 갖고 있는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상사인 동시에 부하 직원의 역할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말단 대리라도 이번에 갓 들어온 신입사원을 가르치는 사수라면 상사로서 기대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하 직원을 어떻게 잘 이끌어야 할 것인가는, 직장인들에게 있어 상사와의 관계 못지않게 매우 중요한 숙제다. 그리고 세종의 부하 직원이었던 동시에 다른 신하들의 리더 역할을 수행해야 했던 황희의 삶은 현대의 직장인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부하 직원의 잘못에 대해 때로는 따끔하게, 때로는 조용히 타이르는 직장 상사 황희. 나라의 중대사와 관계없는 여종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언언시시 정승이지만 김종서처럼 중요한 공적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에게는 엄격한 언언시비 정승이었다. 김종서 또한 그런 황희의 질책이 자신을 아끼는 마음에서 왔음을 잘 알고 있었기에 본인을 돌아보는 계기로 삼았다. 후일 그는 황희의 기대에 부응하여 뛰어난 정승이 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종과 부하 직원을 대하는 황희의 정반대 행동 뒤에는 사실 같은 마음이 담겨 있었다. 여종이 불평을 털어놓아도 네 말이 옳다고 관대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을 아끼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 김종서를 따끔하게 혼내거나 타일렀던 것은 그가 장차 자신의 후임으로 잘 성장해주길 바라는 애정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방법은 대상에 따라 다르게 가질 필요가 있다. 식당 직원이 주문을 잘못 받아서 음식이 다르게 나왔다면 크게 역정 낼 필요 없이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될 일이다. 하지만 함께 일하는 부하 직원의 잘못된 태도와 반복되는 실수를 보면서 옆집 아저씨 대하듯 방관해서는 안 된다. 깨우칠 때까지 타이르고 쓴소리를 해서라도 가르쳐야 하며, 잘하는 일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칭찬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모든 바탕에 있어야 할 것은 바로 애정이다.

칭찬을 들은 부하 직원은 더욱 신이 나서 열심히 일을 한다. 또, 아무리 많은 꾸중을 듣더라도 그것이 본인을 아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것을 안다면 도리어 상사를 더욱 따르게 된다. 지혜롭고 똑똑한 직원이라면 꾸중과 훈계의 말 자체에 얽매여 상처 받기보다는 상사의 말에서 다시 돌아보고 배울 점을 먼저 찾을 테니 말이다.

황희와 달리 아무런 애정 없이 매일 혼내고 다그치기만 하는 상사를 만난 부하 직원은 직장에 나가는 것이 정말 괴로울 것이다. 상사의 냉정한 질책이 계속되면 때려치우고 싶은 욕구가 매일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칠 테니 말이다. 아마 김종서도 처음에는 황희의 잦은 지적과 꾸중에 그런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직장인들 대부분은 가슴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고는 하지만 실제로 사직서를 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번 달에 나가야 하는 자동차 할부 값, 다음 달에는 장인어른 환갑, 내년 봄에는 큰아이 학교도 들어가야 하는데…’를 생각하면 사직서는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왕 계속 다녀야 하는 회사라면 마음을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이 회사에 나보다 긍정적인 사람은 없다는 마음을 먹고, 이 상사에게 최소한 욕은 먹지 않겠다는 목표를 잡는 것이다. 물론 안타까운 동기부여기는 하지만 그 상황을 헤쳐나가는 데에는 분명 도움이 된다. 과정은 좀 힘들더라도 일단 그렇게 강하게 단련되면 어디를 가도 잘 극복해 낼 수 있는 단단한 내공이 생긴다. 그것은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할 때에 분명히 소중한 자산이 된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상사와 직장 생활 내내 끝까지 가는 경우는 없다. 언젠가 헤어지기 마련인 사람이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내가 저 사람보다는 오래 다니겠다는 생각을 해보자. 별다른 대안도 없으면서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면 결국 본인만 손해다.



황희처럼 소통하라!

역사상 가장 뛰어난 임금으로 평가 받는 세종의 업적 뒤에는 황희의 헌신적인 보필이 있었다. 세종의 철저한 신임이 없었다면 24년이나 정승을 지내고, 그중 18년은 일인지하 만인지상一人之下 萬人之上의 영의정을 지내며 나랏일을 책임지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뛰어난 업무 실력을 갖추고 있었지만 그것을 더욱 돋보이게 해주는 것은 소통 능력이었다.

황희도 양녕대군의 세자 폐위 사건과 관련하여 태종의 의중을 잘못 헤아림으로써 4년간 유배당하는 참담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는 기회가 왔을 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황희는 다시 불러준 세종을 위해 철저히 상사의 의중을 헤아리고자 노력하였다. 일례로 수많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신보다 실력을 중요시하는 세종의 의중을 헤아려 장영실 같은 노비 출신의 기용도 적극 후원했다. 다른 신하들처럼 출신을 들먹이며 장영실의 기용을 반대했다면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 뛰어난 과학 유산은 탄생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황희가 무조건 세종의 뜻대로 따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개혁적인 제도를 지나치게 한꺼번에 도입하려 할 때에는 제동을 걸기도 한다. 물론 무턱대고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법질서와 균형을 잘 맞춰야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근거를 내세웠고, 세종도 이해하고 수용하였던 것이다.

상사의 판단은 존중되어야 한다. 상사는 실무자들이 보는 관점보다 훨씬 넓은 안목으로 사안을 바라본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대부분은 그런 역량이 되기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그런 상사의 의중을 헤아리며 조직이 같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함께 애써야 한다.

때론 상사가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럴 때에는 과감하게 조언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그 방법은 지혜로워야 한다. 상사도 인정할 만큼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조언해야 하며 자칫 상사의 지위를 공격한다는 오해를 일으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특히 공개 석상에서 망신당한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조언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주의해야 한다.

황희는 임금과 신하 사이의 뛰어난 중간관리자요 중재자였다. 내불당 건립 문제로 인해 군신 간의 갈등이 생겼을 때,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갈등을 중재했다. 직장에서는 누구나 황희처럼 중재자가 될 수 있다. 경영자와 직원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도 있고, 선배와 후배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도 있다. 그들의 말과 입장을 최대한 듣고 경청해 보자. 그 갈등이나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

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해결의 실마리는 생긴 셈이다.

황희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소통하였다. 자신이 부리는 여종에게는 한없이 관대하였다. 여종들이 자기들끼리 말다툼을 벌이고 서로 고자질을 한들 국가의 중대사에 하등의 영향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신의 후계자로 점찍은 김종서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엄격하였다. 그가 나라의 중대사를 책임지고 이끌어나가야 할 차세대 핵심 인재였기 때문이다. 관대해야 할 때는 한없이 관대하고, 꾸짖어야 할 때는 따끔하게 꾸짖을 줄 알았던 황희의 소통 방식 이면에는 사람에 대한, 그리고 조직에 대한 그의 애정이 담겨 있었다.


직장인들이 생각하는 최고의 상사는 소통을 잘하는 상사라고 한다. 그들은 부하 직원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의사결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시킨다. 상사 또한 소통이 잘되는 부하 직원을 선호한다. 상사와, 동료와, 부하 직원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아이디어가 발생하며 업무가 진행된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곧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황희는 직장인의 좋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한 달에 두 번 출근하는 재택근무를 시켜서라도, 또 누워서도 좋으니 은퇴하지 말고 계속 일해달라고 세종이 붙잡았던 황희. 그처럼 뛰어난 인재가 되고 싶다면 우선 그의 소통 능력을 배워보도록 하자.

keyword
이전 09화3. 소통을 잘하면 일도 잘한다, 황희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