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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리니아 Nov 01. 2024

중년의 러닝과 요가를 위해
맞바꾼 것은?

중년의 테피리스트

9월에는 회귀하리라 다짐했다. 

굽이굽이 돌아 내가 갈 곳은 요가매트 

온전히  내 호흡에만 귀 기울이고 

나만 바라보고 1시간 반동안 집중했던 그때로 가고 싶었다. 


어깨부상으로 오래도 떠나 있었다. 근 8개월, 3분의 2년을 쉬었다.

그간 2달 동안 재활 필라테스를 했다. 필라테스에서는 어깨근육 대신 등근육, 기립근 등

하체 근육을 강화하는 동작을 배웠다. 그리고 평상시 서있는 자세를 교정하고, 

통증에 신경을 쏟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내 생활에도 각성이 되는 알찬 수업이었다.

계절이 세 번 바뀌고 나서야 내 매트 위로 돌아왔다.  여전히 세수할 때, 양치할 때조차 

어깨가 뻐근했다. 다 나은 것도 아닌데, 돌아온 이유는 숨이 그리워서였다. 



깊은숨을 찾아 러닝을 해봤지만, 호흡이 거칠었다. 요가의 숨은 평온하고 강하다. 

그건 오롯이 집중을 해서 내 몸을 단련시켜야지만 만날 수 있다. 

그 숨과 고도의 집중이 하나 될 때 

접신의 경지라고 하면 오버겠지만, 해 본 자들만 공감할 수 있는 무념무상의 경지, 

명상의 상태인 신비한 영역에 다다른다. 내 몸은' I believe i can fly'를 외치고, 

러너스 하이의 경지를 거치고 마지막 사바사나로 누울 때 진정한 휴식에 빠져든다.

어쩜 내가 그리웠던 건 사바사나의 맛이었을 수 있다.

오랜 시간 멈췄어도  금단 증상 없이 잘도 지냈기에 이 중독은 유해하지 않다. 

그 맛을 오랜 기간 참고 기다린 내가 기특할 뿐이다. 


요즘 러닝을 한다. 러닝 이력도 없이 덜컥 하프 마라톤 대회 접수를 해버렸다. 

초등학교 때 100m 달리기는 중간보다 처졌지만, 오래 달리기는 여자 1등이었다는 

이유 하나로(통과만 하면 되는 오래 달리기에 왜 목숨 걸고 빨리 달렸는지, 

비효율의 달인의 싹이 이때부터 자랐나 보다) 언젠가 내 지구력을 숨겨둔 날개 마냥 

펼칠 날을 기다렸다. 나무꾼이 숨긴 것도 아닌데, 나이 50을 코 앞에 두고 펼칠 줄이야. 

그래서 50 되기 전에 버킷리스트를 하나 만들었다.  러닝화도 없고, 헐벗은 복장도 없지만, 

한 번 맛보기로 뛰어보니 걷기보다 땀이 갑절이 나니 시간 대비 운동 효과가 좋았다.


뛰고 난 후 샤워하면 쓰고 버리는 물조차 보람차게 흘려보내는 느낌이고, 땀에 절어서 냄새날까 봐 

그간 괜스레 갔던 슈퍼도, 빵집도 못 가고 빠른 귀가가 보장되니 경제적이기도 했다. 

오늘 뛴 거리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점점 거리가 늘어나니 성과주의랑 거리가 먼 내가 

성취감을 먹으며 날개가 돚아났다. 


무엇보다 잠결에 강아지 발자국소리에도 깨는 내가 새벽에 폭우가 내려도 모를 만큼 

딥슬립을 하게 됐으니 신세계를 맛본 거다. 뛰는 거에 진심을 담아 긴 머리로 뛰기 

거추장스러워, 십 대 때 담다디 이상은 언니 보고 자른 이후 

처음으로 쇼트커트를 했다. 이것도 버킷리스트에 추가하고 클리어했다. 


미리 버킷리스트를 차곡차곡 만든 게 아니라, 파워 P 성향에 맞게 리스트를 

즉흥적으로 만들어 클리어하고 있다. 어찌 보면  못 이룬 리스트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완수 후 위시리스트였다고 자기 체면을 건다. 그래서 현재 내 위시리스트는 완수율 100프로다.




나이 50에 뛰기를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라는 것 잘 안다. 그래서 요가가 절실했다.

잘 뛰기 위해서 내 몸을 단련해야 한다는 일념과, 잘 뛸 수 있다면 요가도 다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달렸다. '달려라 하니'를 읊조리며 달리기가 축포가 되었고 

뛰고 나니 자신감이 붙어 요가도 함께 시작했다. 


달리기와 요가 선순환의 에너지가 오롯이 내 것이 될 거라는 기대감으로 매트를 펼쳤고

한 달 후 마라톤 대회(비록 하프마라톤 중에 5km이지만)에서 완주했다.

이제 두 달째, 어느새 통증에서 멀어지고, 어깨가 가벼워지는 마법을 체험했다.

8개월 만에 아쉬탕가를 하고 온 날 처음으로 어깨통증 없이 깊은 잠을 자고서 일어났다. 

세수와 양치할 때 팔이 안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동작을 60프로 정도밖에 못했어도 내 몸에 충분한 순환과 좋은 기운을 불어넣어 줬나 보다.

아님 어쩌면 필라테스 선생님의 가르침대로  통증을 바라볼 시간을 줄여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때는 몰랐다. 다른 통증이 대기하고 있자는 것을.

잊고 있었다. 갱년기는 통증 총량 보존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열심히 뛸수록 맥주가 당겼다. 

저녁 식사 중 반주로 마시며 '내가 이 맛에 뛰지'라며 이번 여름을 버텼더니, 

그분이 찾아왔다. 자가진단을 내렸다. 


                                 통풍


맥주 마신 다음날은 무릎이 아프거나 손목이 시큰해서 요가고, 러닝이고 다 접어야 했다. 

그렇게 2주 정도 멈추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사실 알면서도 마시다가 한 달을 다시 쉬다 보니 

내가 한심했다. 조금 나아졌다고 고새 초심을 잃다니... 

다시 매트에 서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인과응보라 여겨야지.  

문어마녀에게 목소리를 뺏기듯 너를 보내겠어.


그동안 너로 인해 내 영혼이 목마르지 않았기에, 행복했다.
 너와의 시간이 아깝지 않아.
고마웠어. 


뜨겁게 안녕이다! ★




p.s 표지사진:하고 싶은 거 하나 하려면 하나 이상을 내어 주어야 한다는 진리를 알아버렸기에

                 하고 싶은 걸 줄이느라 부단히도 노력 중이다. '니 맘대로 해'라고 하면 내 맘대로

                 못하는 심리를 알기에, 일단 말이라도 저렇게 듣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너그럽고, 인자하게 말을 건네는 사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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