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어린 나무에 물을 주었을까?

내 편이 되어줄 한 사람만 있으면 우린 힘을 낸다

by 라떼

미국 와서 매일 아침 동네 한 바퀴를 달리고 있다.

동네 사람들과 마주치면 가급적 내가 먼저 굿모닝 하며 눈인사를 나누지만 눈길을 안 주고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기는 쉽지 않아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도 많다.


코로나 와중에 미국에 오기는 쉽지 않았다. 더운 여름날 미국행을 준비하면서 욱이와 나는 서로 적잖이 스트레스도 받았고 며칠 말도 안 하고 지낸 적도 있다. 여기 와서도 처음에 정착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 한국처럼 쉽게 되는 것이 없고 예외 없는 까다로운 절차와 외국인에 대한 약간의 차별적인 대우에 기분 상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뜻대로 잘 되는 일이 없었고 자존감도 떨어져 있었다.


그때 그 여학생을 만났다. 아침에 내가 조깅하는 이른 시간에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학교에 등교하는 여학생이었다. 나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 학생이 무려, 손을 흔들어주며 굿모닝 하고 인사를 먼저 했다. 나도 웃으며 인사를 했다. 등굣길에 마주친 낯선 아시안 아저씨에게 친절하게 먼저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다니. 나도 모르게 기분이 갑자기 좋아지며 힘이 났다. 지금도 아침에 그 여학생과 마주칠 때마다 손을 흔들어 인사를 나누며 힘을 얻는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여학생의 이름은 Amber이고 고등학교 3학년이다. 나는 오늘도 그녀와의 기분 좋은 조우를 기대하며 매일 아침 달린다.


내가 달리는 철길 옆에는 작은 묘목이 자라고 있다. 어디에선가 씨앗이 날아와 척박한 철길 옆 도로에 싹을 틔웠을 것이다. 여기는 거의 비가 내리지 않는 사막 기후에 가까워서 모든 가로수나 조경수들은 관개용수와 스프링클러 덕으로 살아간다. 그대로 놔주면 말라죽었을 묘목이 지금도 몇 달째 잘 자라고 있다. 그 이유는 누군가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조깅하거나 자전거 타는 사람들 중 어떤 분이 가진 물을 나눠주는 것 같다. 그분의 관심과 애정 덕분에 그 묘목은 꿋꿋이 자라고 있다.

누군가 매일 아침 주는 물 덕분에 잘 자라고 있는 철길 옆 묘목

낯선 사람의 손짓이 내게 힘을 주기도 하고, 어느 한 사람의 관심이 척박한 곳에서도 어린 나무가 자라게 도울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내 아들 욱이에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멋있는 아빠가 되려고 했다. 그래서 반대로 친근한 아빠는 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이젠 욱이가 편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더 만만한 아빠가 되고 싶다. 욱이는 이제 어른이다. 어른 대접을 잘해주면서 곁에서 지켜봐 주고 힘든 일이 있을 때 욱이의 편이 되어주는 것이 나의 역할 일 것이다.


자라는 것은 나무가 할 일이다. 내가 나무를 억지로 자라게 할 수는 없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척박한 토양에서 힘들어하는 나무에게 내가 가진 물을 조금 나누어 주는 일일 것이다. 아직 두 달여 남은 캘리포니아의 시간에는 매일 아침 나무에 물을 주는 마음으로 지내야겠다.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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