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진영 <내 할머니의 모든 것>
40년 전에 결혼이라는 관습적 제도를 스스로 박차고 나가 평생 혼자만의 고독하지만 품위 있는 삶을 살아온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갈 길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오래전 집을 나가버린 할머니와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쿨하게 아파트까지 장만하여 보내준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평범한 것은 아니다. 두 사람의 성격차이라거나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결혼생활이 파탄 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또한 화자의 이혼한 부모에 대해서도 ‘어느 한쪽도 사악하거나 무능하지 않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갈 길이 다른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화자는 처음 만난 외할머니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녀가 보여주는 품위와 꼿꼿한 아름다움은 소박하지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삶으로부터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화자의 친할머니를 포함한 대부분의 노인들이 보여주는 모습과는 사뭇 다른 외할머니의 모습은 화자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보인다.
‘총기 있는 눈빛, 몸가짐과 차림새에 깊이 배어 있는 자기 존중 같은 것에 마음이 끌렸다.’
또한 할머니의 대사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모와 말투, 태도를 통해 할머니의 캐릭터가 잘 묘사되어 있어서 체구가 자그마하지만 꼿꼿하고 고상한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결혼으로 인해 대학에 가겠다는 자신의 꿈이 끝장날 위기에 처하자 몇 번의 가출 끝에 남편과 자식을 두고 혼자 떠나버린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격이자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이다. 그것을 무릅쓰고 그녀는 자신의 삶을 찾아 떠난다. 무슨 대단한 삶은 아니었다. 아마 일을 하면서 대학에 갔을 것이고 이후 그녀가 좋아하는 세계문학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는 그런 소박한 삶을 그녀는 선택한 것이다. 세월이 지나 다시 딸과 손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그들이 자기 영역을 침범해 온다고 느끼는 그 순간(일흔여섯 번째 생일잔치를 차려주었다), 다시 자신만의 세계로 떠난다.
다만, 할머니가 전화를 받지 않아서 찾아가 쉽게 집안으로 들어가는 설정보다는 며칠간 밤에 찾아가 문을 두드려도 인기척이 없어 결국 홀로 죽었을 것으로 판단하고 문을 따고 들어갔는데 죽음의 냄새 대신에 향기가 났다는 식으로 서술하면 어떨까 싶다. 독자들을 긴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다시 떠났다는 설정은 그녀의 캐릭터를 완성시키면서 신비감을 부여해 준다. 그녀는 아마 어디에선가 음악을 듣고 책을 읽으며 혼자 부족한 것 없이 지낼 것이다. 사람마다 갈 길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