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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Feb 01. 2023

착하게 살려고 너무 애쓰지 마

박지영 <쿠쿠, 나의 반려밥솥에게>

 치매환자 돌봄이라는, 누구나 꺼려하고 고된 노동을 둘러싼 일들을 소재를 풍자적이고 코믹하게 비틀어서 ‘착하게 사는 것’과 ‘착하게 살려고 애쓰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작품이다. 네 개의 케어등급 대목에서는 가족 간의 일이지만 엄연히 대가가 지급되어야 할 정도로 힘들고 피하고 싶은 노동임을 잘 비틀어서 보여주고 있다.


 ‘포도알 채우기’는 칭찬받기 위해, 또는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내가 돋보이기 위해 하는 착한 일을 상징하고 있으며 유튜브 영상 또한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을 내가 돋보이기 위해 올려주는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좋아요와 구독은 바로 이 포도알 채우기에 다름 아니다. 유튜브 에피소드를 통해 또한 작가는 진정성 없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며, 상업적인 SNS 문화를 비판하는 듯하다. 


 작품의 초반부는 가족이라는 죄로 맡아야 하던 돌봄 노동을 강선동이 맡게 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작가는 대부분의 돌봄 노동을 비혼 딸이 맡는 경우가 많고 남자들이 맡는 경우에도 위세를 떤다고 반복되는 화자 논평을 통해 직접적인 비판을 날리고 있는데 조금 우회해서 표현했으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밥솥에 비유하고 반려동물과도 비교한 것은 인간으로서 매우 불쾌하게 읽히지만 인격과 존엄을 상실한 치매인의 모습을 냉정하게 묘사하고 있다. 사실 치매가 무서운 것은 완전히 다른 인격을 가진 존재로 변화하기 때문에 병에 걸리기 전과 같은 사람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그간 함께 한 세월과 애정, 그리고 의무감으로 돌보지만 가족들에게도 그 돌봄 노동은 감당하기 어려운 짐이 된다. 


 제영무와 강선동을 비교하는 이야기는 강선동이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착한 아이, 즉 남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인 착한 아이였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제영무의 유튜브도 물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강선동의 것과 같지만, 강선동은 결국 구독자수를 늘리기 위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고 결말부에서도 조기 치매 진단을 받았다는 거짓말을 하며 포도알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작품의 소재와 문제의식에는 공감하지만, 몇 가지 아쉬운 부분이 있다. 먼저 강선동의 캐릭터가 헷갈린다. 그는 착한 아이가 되어 칭찬받기를 원하지만 그의 행동은 교묘히 약자를 이용하거나 괴롭히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가 서른아홉이 되어서야 다른 방식의 착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부분에서는 착함은 양보나 희생이 아니라 투쟁하고 악착같이 싸우고 탐욕스레 지켜야 하는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어서 마치 그는 늘 양보하고 희생한 캐릭터인 것처럼 묘사되어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다루려고 했다면 강선동은 작품 속에서 실제로 양보하고 손해 보는 캐릭터로서 그려져야 하지 않을까. 작품 속의 강선동은 흡사 두 얼굴을 가진 사람 같다. ‘염병, 너무 애쓰지 마라’는 결국 너무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이고 이것이 이 작품의 주제라면 강선동은 실제로 착한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또한 치매 돌봄 노동을 둘러싼 이야기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기’를 다 다루려다 보니 단편소설로서 구성이 좀 복잡하다. 특히 제영무와 그 어머니의 유튜브와 책 발간 에피소드를 뺀다면 보다 ‘너무 착하게 살려고 애쓰지 마라’라는 주제에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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