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보인 <압구정 현대를 사지 못해서>
부동산 투기로 대표되는 천민자본주의를 꼬집은 작품이다. 압구정 현대 아파트는 그 욕망의 정점에 있는 대상이며, 그 뒤로 외제차, 명품 가방, 이런 것들이 뒤따른다.
열일곱에 고아원을 나와 검정고시로 대학에 간 화자는 거의 노숙인 생활에서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다. 자본주의에 대처하는 방법은 두 가지이다. 자본주의의 모순을 드러내고 싸워서 새로운 체제를 만드는 방법, 즉 혁명과 자본주의에 순응해서 그 안에서 성공해서 호의호식하는 방법. 화자는 후자의 방법을 따른다. 코카콜라 같은 첫사랑 은주는 자본주의를 상징하면서 자본주의에 물든 그에게 남은 순수한 마음을 대변하기도 한다. 그는 그녀를 잊지 못하고 그녀의 아들을 돌봐준다. 그는 은주를 가지고 싶어서 노력했고 지금은 자본주의, 즉 돈을 가지고 싶어서, 그래서 남들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아서 노력한다. 그가 은주의 아들에게 한 말에 이것이 잘 드러난다.
“무엇보다 하루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 그래야 타인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된다.”
고아원에서 매 맞으며 자라다가 뛰쳐나온 그의 젊은 날에 사랑이 찾아온 것을 작가는 감각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으며 남성 화자의 내면을 잘 그리고 있다.
젊은 날이 어리석은 것인지, 아니 내가 특히 병신 같은 것인지, 정확히 고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놈이, 충남 어느 고아원에서 매 맞으며 자란 놈이, 폭력이 싫어 새벽에 뛰쳐나온 놈이 뭘 그렇게 타인에게 바라는 게 많은지, 생각하면 기가 찰 노릇이었다. (중략) 왜 하필 사랑이라는 건 그렇게 젊을 때 찾아오는 것인지, 훗날 자리 잡았을 때 오는 게 아니라, 부서질 것같이, 죽을 것같이 위태로운 시기에, 미칠 것 같은 시기에 찾아와 나를 괴롭히는 것인지 알지 못해서, 그 시절 나는 자취방으로 돌아와 울곤 했다.
자본주의에 순응하기 위해 다주택자로 다소의 성공을 거두었지만 그는 여전히 양심에 거리끼며 투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다. 그의 이런 근원적인 슬픔은 다음과 같은 문장에 잘 묻어난다.
오랫동안 계층을 뛰어넘으려 했고, 무주택자로 전전하며 극빈에 극빈을 거듭했고, 그 세월 속에서 악만 남았지만, 빈자라는 이유만으로 조롱과 멸시를 당했지만, 그때마다 씨발, 다 죽여,라고 소리쳤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것 없고, 아니 마음의 여유가 조금은 생겼지만, 누군가에게 또다시 질시를 받는다 해도, 멈추지 않고 살아가는 일만 이제 남았다고.
하지만 그가 마음 한구석에 간직한 순수한 마음, 사랑은 은주와 그녀의 아들을 통해 표출된다. 그는 은주의 아들에게 아파트를 사준다. 자본주의적인 방식인 갭투자로. 그래도 돈만 밝히는 천민들의 세상, 자본주의에서 그와 은주의 사랑만이 진짜였던 것이다.
끼니를 굶어야 했던, 날밤을 새워가며 걱정했던 그 긴 시간 속에, 은주 네가 보여주었던 게 동정이 아니길, 그리고 지금 내가 너의 아들에게 보여주는 이 풍경이, 이 몸짓이 위선이 아니기를.
표지사진 출처 : 한경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