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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Jul 23. 2023

좋아하는 거 말하기의 어려움

김기태 <세상 모든 바다>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K팝 아이돌 그룹과 그 팬덤을 소재로 세계주의, 즉 코스모폴리타니즘과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문화, 즉 표방하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제목 세상 모든 바다는 작품 속 아이돌 그룹의 이름이기도 하지만 지구상의 모든 바다는 실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면에서 지구상의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세상 모든 바다는 인종차별 반대와 원전 건설 반대라는 분명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아이돌 그룹으로 설정되어 있고 팬들도 또한 이들의 메시지에 공명하여 실천적인 일들을 하게 된다. 

 한국계 일본인 화자를 등장시킨 이유는 이러한 코스모폴리타니즘을 말하기에 더 적합해서라고 생각된다. 특히 재일한국인 후손으로서의 하쿠의 정체성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계에 있으므로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구별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화자 하쿠와 영록이 사려고 했던 ‘플래그’는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깃발의 이미지로서 세상에 전하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메시지라는 상징성을 가진다.

  학문의 전당으로서 자유로워야 할 대학이지만 한국에서는 교수를 중심으로 한 권위적인 문화가 있고 하쿠의 대학원 동료들은 외국인으로서 보다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하쿠를 부러워하며 말한다. ‘하쿠 상은 좋겠다. 좋아하는 거 다 말할 수 있어서’ 이 대학원 에피소드는 이 작품이 ‘하고 싶은 것을 얘기하기’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 준다.      

또한 오타쿠 문화를 언급한 부분에서는 ‘좋아하다’는 말의 의미를 되짚는다. 오타쿠가 자신들만의 공간에서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케이팝의 팬덤은 세상을 향한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는 것을 다음의 문장에서 드러내고 있다. 

‘세상 모든 바다는 지지할 수 있는 그룹이다. 이 그룹은, 거리낌 없이 좋아해도 되는 그룹이다. 

이야기는 일부 팬들의 퍼포먼스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치는 불상사를 통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그 사건은 하쿠의 팬덤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잘못된 소문을 알려줘서 영록이 죽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이 들게 한다. 비극적인 사건을 통해 팬덤의 부작용을 드러내는 설정으로 보인다.      


하쿠가 영록의 고향인 해진에 가서 원전찬성 일인 시위자가 권유하는 서명에 망설이는 장면은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기’가 여전히 조심스러움을 보여준다. 하쿠는 참사 이후 자신의 팬덤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한다. 그의 플래그는 접힌 채로 서랍 안에 있다. 방파제 위에서 파도로 물방울이 튀었을 때 뒷걸음질을 치는 모습도 이를 나타낸다. 마지막 문단에서 자신이 폄하했던 오타쿠들의 근시안적 애정을 언급한 것은 그래도 표현하는 것이 낫다는 화자의 결론으로 읽힌다. 그의 플래그는 조만간 다시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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