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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Aug 06. 2023

글쓰기엔 자신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해

서성란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

문학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한 가족의 얘기를 통해 작가가 가져야 할 태도와 품성,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먼저 주인공인 혜순을 보자. 그녀는 젊은 시절 자신이 나은 아이를 버려야 했던 가슴 아픈 기억으로 깊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삼십 년도 더 지나 거의 아물었다고 생각한 이 기억이 되살아나서 자신을 괴롭히게 된 것은 딸 연희가 자신의 희곡 소재로 입양을 통해 버려진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부터였다. 이때부터 혜순은 두통이 생기고 책 읽기와 글쓰기를 못하게 된다. 유명하지는 않아도 공모전에 당선되고 에세이집을 낸 작가인 혜순은 수필창작 수업을 들으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실하게 쓰라’는 강사의 이야기에 겁을 냈었다. 문학은 많은 경우에 감추고 싶은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혜순은 결국, 가족을 포함한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감추고 싶은 비밀을 글로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것이 발표되지 못할지라도 글로 써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용기이다. 작가는 혜순을 통해 작가들이 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고통스러울 수 있으며 그것을 극복해 내는 것이 대단한 용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혜순의 딸, 연희는 신춘문예 희곡으로 등단하고 박사과정까지 밟고 있으며 자신의 희곡이 대극장 무대에 까지 올라가는 한마디로 잘 나가는 작가이다. 그녀는 국문과 교수인 아버지와 살림꾼이면서도 글을 쓰는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서 아쉬운 것 없이 자란 것으로 보인다. 그런 그녀가 상처와 결핍이 많은 인물들의 얘기를 쓰고 싶어 한다. 혜순은 자기 딸이 해외입양인들의 아픔을 그저 머릿속으로만 이해할 뿐이라고 했지만, 연희가 문학을 자신의 직업으로 선택했고 특히 상처와 결핍이 많은 이들의 삶에 시선을 둔 것으로 볼 때, 그녀는 공감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이는 가족 안에서 혜순을 작가로 인정해 주는 유일한 인물이 연희라는 것으로도 나타난다. 연희는 작가들이 가져야 할 또 하나의 품성인 ‘공감’을 보여주는 인물로 보인다. ‘작가란 타인의 상처에 고통을 느끼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라고 한 연희의 말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시인이자 교수인 재섭의 캐릭터는 작가에 의해 잘 묘사되고 있다. 노년기로 접어든 나이에도 쉬기보다는 부지런히 사람들을 만나는 성실한 인물인 반면에, 가사를 전담하는 혜순을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라고 폄훼하고, 엄마가 시력이 나빠져 책을 잘 못 읽는다는 연희에 얘기에도 공감의 표시도 없이 노안이 오는 건 당연하니 돋보기를 쓰라고 한다. 또한 에세이집을 출간한 어엿한 작가인 아내를 인정해 주려는 마음도 없다. 재섭 또한 문학이 업인 작가이고 문학계에서 부지런히 발품을 팔고 인맥을 쌓는 것으로 보이지만 자기 성찰이나 타인에 대한 공감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생활 속에서 성찰과 공감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면서 문학하네 하면서 술 마시고 인맥 쌓기에 열심인 문학인들에 대한 작가의 비판으로 읽혔다.    

  

혜순은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지 못하는 기존의 자기 책과 글들이 위선으로 느껴진다. 책을 내고 글쓰기가 어려워졌다는 것과 자신의 책을 다 불태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는 것은 그것을 방증한다. 그녀는 땅 속에 묻혀있는, 얼굴도 모르고 울음소리로만 기억하는 자신의 딸을 그대로 덮어둔 채로 글을 쓸 수 없는 상태이고 유기견을 입양하자는 남편의 제안에도 ‘생명과 온기를 가진 어린것’은 자신의 몫이 아니라고 죄책감을 느낀다. ‘진실을 마주하기’라는 강사의 주문은 그녀에게 너무 고통스러운 요구이다. 하지만 결국 결말부에서 그녀는 용기를 내어 글을 쓴다. 아픔을 딛고 문학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제목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는 작품 속에서 입양아였던 제인 클레이가 만나지 못한 엄마에게 한 말이기도 하다.  

‘아직 내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엄마를 만나고 싶어요. 너무 늦지 않게 말이에요.’ 

제인 클레이가 말한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라는 것은 미국인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싶은 마음이 남아있을 때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제목에 쓰인 ‘내가 아직 조금 남아 있을 때’는 세월이 더 흘러서 자신이 버렸던 아이에 대한 마음과 기억이 없어지기 전에, 글로서 그 아픈 기억을 드러내기로 결심한 작가 혜순의 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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