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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떼 Aug 06. 2023

그것도 또한 나다

박서련 <나, 나, 마들렌>

양성애적인 성향을 가진 화자가 두 명의 자신으로 분화된다는 설정을 통해 인간이 가진 양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출판사에 다니는 화자는 어느 날 둘로 분화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이는 작품 속에서 화자가 직접 말했듯이 문학적 상상력으로서 이해된다. 둘로 분화된 자신은 인간이 상황에 따라 가질 수 있는 양면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나였고 나도 나였다’는 말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면적인 캐릭터의 총합이 바로 나라는 것을 보여준다.  

   

목이 잘리는 꿈은 성장몽이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계속 꾼다는 것은 문학적인 성장을 원하고 있다는 상징으로 보이기도 하고 결말부에 나온 것처럼 또 하나의 나를 죽인다는 것과 연결되기도 한다. 작품 속의 화자와 동성 연인인 마들렌은 작가 지망생이다. 화자는 마들렌을 사랑하지만 또한 소설을 가르치는 작가를 좋아하게 된다. 

      

작품 속의 화자는 출근을 하는 나와 법원에 가는 나로 나뉘어 활동한다. 몸이 하나라면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둘이기에 가능해졌다. 출근을 한 나는 사표를 쓸 충동을 느끼며 일을 하고 다른 나는 소설가에게 성희롱을 당한 마들렌의 공판에 참가한다. 몸이 예뻐서 소설도 예쁘게 쓴다고 말했고 손이 옷 속으로 들어왔다는 피해자의 주장으로 미루어 볼 때, 소설가는 순간적이든 계획적이든 자신이 작가이고 소설수업의 강사라는 위계를 이용하여 성희롱을 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러한 소설가에게 화자가 질투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화자는 마들렌과 소설가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몸이 둘로 나뉘게 된 이유가 이 대목에서 드러난다.

‘나는 마들렌을 그냥 사랑한다기보다, 사랑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이 태도가 마들렌에 대한 마음보다 사랑에 좀 더 가까울 수도 있겠지.’

‘나는 소설가를 미워하려고 노력했다. 노력을 통해서만 소설가를 미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급기야 ‘내가 둘로 쪼개지는 듯한 느낌은 이때 이미 시작되었던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몸이 두 개로 나뉜다는 설정은 마들렌을 사랑하면서도 소설가를 미워할 수 없고 그와 사랑에 빠진 자신의 이중적인 마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결국 마들렌이 법정 증언을 부탁했을 때 거절하게 되고 마들렌이 화자에게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순간, 화자는 또 한 번 두 사람으로 갈라진다. 마들렌을 사랑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으로 갈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결말부에서 나는 나를 죽이기로 결심한다. 마들렌을 사랑하는 나를 죽일지 소설가를 사랑하는 나를 죽일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문맥상 소설가를 사랑하는 나를 죽일 것 같은 분위기이다.        


다양한 면을 가진 우리 모두는 결국 남들에 의해서나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한 측면을 포기하고 다른 측면만을 강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결국 또 하나의 나를 죽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것이 어렵다는 것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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