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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화 Jun 13. 2022

제주메밀 비비작작면

  6월에 2박 3일간 친구들과 제주 골프여행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고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 바로 100% 메밀을 재료로 한 ‘제주메밀 비비작작면’이었다. 음식 이름만으로도 정겹다. 메밀하면 ‘빙떡’이나 ‘메밀묵’, ‘메밀조베기’(조베기는 수제비의 제주어), 그리고 ‘메밀송편’ 등을 먹어봤는데 비비작작면은 처음 맛본 메밀음식이었다. 100% 메밀 면에 냉면에 올라가는 각종 고명(빨간색은 없음)을 얹어 비벼먹는 면음식으로 그 맛이 시원하고, 특히 통들깨 씹히는 맛이 고소했다. 고기리 들기름 막국수가 유명하다고 해서 인터넷으로 한번 주문해 먹어봤는데 너무 느끼해서 다시 손이 가지 않아 사실 ‘비비작작면’도 느끼할 것으로 여겼는데 사전 답사 차 와서 시식을 해본 결과 맛에 만족을 하고 본모임에서는 망설임 없이 ‘비비작작면’을 추천하고 주문했다.

  음식의 맛을 좌우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신선한 재료이다. 이 식당에서 사용하는 메밀은 100% 이 마을에서 농사짓고 가공한 싱싱한 메밀가루를 사용하고 있다. ‘한라산 아래 첫마을’, 제주 안덕면 광평리 영농조합법인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이다. 안덕면 광평리는 해발 500미터에 위치한 마을로 15가구가 살고 있다. 교통이 불편해서 찾아오는 사람이 드물고 살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떠나면서 마을이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었을 때 마을 주민들이 모여 궁리를 한 끝에 예전에 구황작물이었던 메밀에서 마을을 살릴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메밀농사를 짓기로 한 것이다. 2014년 마을주민들이 이웃에서 직장동료로 동맹을 맺고 ‘한라산 아래 첫마을’이라는 이름을 탄생시켰다. 이 마을에서는 메밀농사를 짓고 가공 공장을 지어 메밀을 가공하고 또 식당까지 운영하고 있다. 식당운영에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반에는 ‘제주메밀의 모든 것’이라는 주제로 향토음식을 판매했다고 한다. 메밀 꿩칼국수의 옛맛을 내려면 꿩의 발로 육수를 내야한다고 해서 꿩의 발을 구하러 다니기도 했는데 통 그 맛이 나지 않아 그 메뉴는 보류했다. 대신 메밀고사리 육개장, 메밀 수제비, 메밀 빙떡 등 제주향토음식을 판매했는데 파리 날리는 날이 많았고 어쩌다 손님이 올 때는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르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 줄을 서서 먹는 식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메밀냉면을 선택하면서부터이다. 마침 100% 메밀을 쓰는 서울의 한 식당에서 계속 이곳 광평리 메밀을 납품받고 있었는데 원료를 제공하고 있으니 요리기술을 전수해 달라는 제안을 했다. 이곳 대표가 맛을 내기 위해 일주일에 두세 번씩 비행기를 타고 7개월 이상 서울 이 식당에서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일 년 전 쯤 서울 교대역 근처 ‘서관면옥’에 냉면을 먹으로 간 적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제주 술이며 제주메밀을 이용한 냉면 등 온통 제주도 분위기가 물씬 풍겼었는데 이제야 그 의문점이 풀렸다. 바로 이 서관면옥이 이곳 광평리 메밀을 공수 해다 메밀냉면 재료로 쓰고 있는 식당이었다. 서울 서관면옥 100%메밀로 만든 냉면 맛의 비결도 바로 제주메밀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한라산 아래 첫마을’에서 음식을 먹는 일도 간단하지 만은 않다. 지금은 줄서서 먹는 식당이다 보니 모바일에 테이블링이라는 앱을 깔고 당일 10시 30분에 오픈하자마자 줄서기로 예약을 먼저 하고 현장에 도착해서 키오스크를 통해 확정을 해야만 순서가 정해진다. 우리 팀도 딱 10시 30분에 앱 오픈하자마자 예약을 하고 10시 반 조금 지나 도착해서 확정을 받으니 앞에 10팀이나 대기 중이었다. 대기하는 동안 근처 넓게 펼쳐진 메밀밭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으면서 휴식시간을 갖다가 입장했다.

  메밀하면 강원도를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텐데 사실 제주도가 메밀의 주산지이다. 제주에서 메밀을 많이 재배하는 이유는 척박한 환경 덕이다. 제주는 화산섬으로 토질이 송이이고 송이는 결집력이 없고 물이 다 빠져버려 흙보다는 자갈에 가깝다. 그런데 메밀은 뿌리가 깊지 않아 활착이 잘 되고, 다 자라봐야 50~60cm로 사람의 무릎높이 정도로 낮게 자라 바람 많은 제주에서 바람의 피해도 덜 받는 작물인 셈이다.

  강원도 봉평이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한 것처럼 제주에도 메밀에 대한 스토리가 전해지는데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바로 농경의 여신 “자청비”의 이야기이다. 하늘의 천지왕에게 여자로 태어나게 해달라‘스스로 청하여 여자로 태어난 신’이 자청비이다. 옥황 문곡성의 아들 문도령을 도와 큰 공을 세워 옥황의 천자에게 상으로 오곡의 씨앗을 받아 7월 인간세상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자청비가 문도령과 함께 땅을 파고 씨를 뿌리고 보니 한 종류의 씨가  모자랐다. 그래서 자청비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 씨를 받아와 심으니 다른 곡식보다 파종이 한 달 늦었으나 같이 수확하게 되었다. 그 씨가 ‘메밀씨’이다.

  예전에 빙떡을 만들면서 어머니가 들려준 이야기를 복기하면 몽고사람들이 제주사람들 피를 말리려고 메밀을 많이 재배하게 했는데 제주사람들이 지혜를 발휘해서 무를 첨가한 음식을 개발했는데 그게 바로 제주 빙떡이라고 했다. 사실 메밀 겉껍질은 타작을 하면 잘 벗겨져서 베갯속으로도 쓰이는데 속껍질은 벗기기가 힘들어서 가루에 섞여 있어 사람이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고 한다. 여기에 제주사람들이 소화효소가 풍부한 무를 같이 먹는 음식을 개발했는데 그게 빙떡이다. 빙떡은 사실 겨울음식이라고 한다. 가을무 그 자체가 보약이라고 하지 않는가. 가을무를 채 썰어 살짝 데쳐 양념을 한 후 얇은 메밀 피에 넣고, 그것도 메밀 피가 뜨거울 때 빙빙 말아 먹었던 빙떡, 메밀을 이용한 요리는 이외에도 서른 가지는 된다고 하니 제주에서 메밀을 이용한 요리들을 적극 개발해서 인기 있는 향토음식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해 본다.

'한라산 아래 첫마을' 건물 및 대표메뉴 '제주메밀 비비작작면'


안덕면 광평리 메밀밭,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하다.


*위 글은 “Local Food: JEJU Memil”메거진을 참조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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