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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순화 Oct 23. 2021

빨래판이 드럼을 대신했다고?

  우리 취재진이 로드 데이비스(Rod Davis)씨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방송가에서 요샛말로 현지 코디네이터의 미친 섭외력 덕분이었다. 그는 비틀스의 전신 밴드인 쿼리 맨(The Quarrymen)에서 존 레넌과 같이 활동했던 분이다. 따라서 존의 고등학교 시절을 누구보다도 많이 아는 분이었으며 존의 성적표를 갖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그의 댁으로 초대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밴조와 다양한 종류의 기타 등 각양각색의 악기들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우선 잉글리시 브렉퍼스트 티(English breakfast tea)로 우리를 맞이했다. 커피에 우유, 그리고 약간의 설탕을 넣은 차이다. 

 

  존 레넌이 처음부터 로큰롤 밴드인 비틀스 밴드로 활동한 것은 아니었다. 맨 처음에는 그 당시 유행했던 스키플 음악을 하는 학교 밴드인 쿼리 맨으로 시작해서 엘비스 프레슬리의 영향을 받아 비틀스라는 로큰롤 밴드로 진화했다.

  

  그는 그 당시 유행했던 음악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했다. 1950년대에는 뉴올리언스 풍의 재즈가 영국 전 지역에서 대유행을 했다. 당시에 베이스를 잡고 기타 연주를 했다고 하면 무조건 재즈 팀이었다. 그게 바로 스키플(Skiffle)이라는 음악 장르이다. 이 스키플 음악은 보통 집안 물건과 즉흥적인 악기를 사용해 연주했는데 드럼을 살 수 없는 시절에 워시 보도(Washboard_빨래판)로 드럼을 대신했다면서 그는 진짜 빨래판으로 어떻게 드럼을 대신했는지 즉석 연주로 굉장히 빠른 박자의 음악을 들려주었다. 나중에 그 곡을 찾아보니 그 곡은 영국 스키플 음악의 왕이었던 로니 도네건(Lonnie Donegan)의 <Rock Island Line>이었다. 빨래판으로 드럼을 대신했다니, 빨래판으로 드럼 연주를 직접 듣게 되다니, 정말 우리는 그의 연주에 호호호 합죽하게 웃으며 빨려 들어갔다. 맨 처음 밴드를 결성하면 한 명은 기타를 잡고 한 명은 빨래판을 잡고 연주를 했다. 이러한 것들이 계기가 되어서 영국의 온 젊은이들이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감히 말하건대 이 스키플 음악이 없었다면 로큰롤도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1956년에는 이런 통계가 나왔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 도난사고로 보석점보다 기타 악기점이 더 많이 털렸다고. 기타 수요가 어마어마했다는 증거이다. 이런 스키플 음악의 대유행 물결에 존도 쿼리 맨 밴드를 결성하여 스키플 음악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존의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존이 기타에 입문하게 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이처럼 스키플이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을 때 그가 다니던 고등학교인 쿼리 뱅크 스쿨(Quarry Bank School)에서 존과 에릭 두 학생이 그들도 기타를 배울까 해서 기타 선생님한테 갔는데 기타 선생님이 악보부터 읽을 줄 알아야 한다면서 악보부터 가르쳤다. 그러니 그들은 이거 하다가 평생 걸리겠다고 하면서 한 두 번 하다가 때려치웠다. 그때 존의 엄마가 존한테 기타를 가르쳐 주었다. 존의 엄마가 존한테 기타를 가르쳐 준 이야기는 추후 존의 여동생인 줄리아 베어드(Julia Baird)와의 인터뷰에서 좀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겠다.

  

  로드 데이비스 씨가 쿼리 맨에 합류하게 된 사연 역시 우연이었다. 그가 아빠한테 기타를 사달라고 했는데 삼촌이 마침 밴조를 팔고 있어서 중고 밴조를 하나 사다 주었다. 그때 마침 존과 함께 활동하는 에릭한테 “나 벤조 샀다.”라고 말하니 “야 그럼 밴드에 들어와.”라고 해서 그 밴들에 들어가게 되었다. 밴조를 치는 방법을 배우지도 않았는데 벤조를 샀다는 그 하나만으로 밴드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하니 악기가 얼마나 귀물이었던 시절의 이야기인지 웃음이 절로 나온다. 드럼이 있다고 해서 끌어들인 멤버도 있었다고 하니 정말 악기를 구하기 어려운 시절에 악기를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뽕이 서는 시대였다.

  

  로드 데이비스 씨는 고등학교 시절인 1956년 9월부터 다음 해인 1957년 7월까지 약 10개월간 쿼리 맨 밴드에서 존과 같이 활동했다. 그는 존과 같은 학년으로 밴드 활동도 같이 했었기 때문에 존의 고등학교 시절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들려주는 존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이다. 

  

  우선 존은 만화를 잘 그렸다. 또한 존은 자기가 천재인데 그 점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않기 때문에 기이한 행동을 하는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그 당시 학교에서의 체벌은 엉덩이를 때리는 것이 전부였기 때문에 존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었다고. 

  

  그는 존의 고등학교 성적표를 갖고 있었다. 55년도 크리스마스 때 나온 성적표였다. 제일 나았던 성적표인데 선생님이 ‘제발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를...’라고 적혀 있었다. 프랑스어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사람들을 웃기려고 해서 정작 본인은 자기 것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다.’고 기록했다. 교장 선생님은 ‘야망이 다른 곳에 가 있고 열정도 이상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고 썼다. 그밖에 ‘아주 똑똑하고 짧은 시간 내에 집중해서 많은 것을 할 수도 있다’고 긍정적으로 격려해주는 평도 있는가 하면 ‘실습해야 하는 시간에 손재주가 없는데 노력도 안 한다.’는 혹평도 있었다. 그리고 성적표에 전체적으로 결석, 결석, 결석, 결석이 많았고 수학선생님은 ‘이 아이는 100점 만점에 17점을 받아 이러다가는 수학 과목을 실패할 것이다.’라고 썼다. 

  

  존의 성적표를 같이 읽으면서 정말 학교 성적과 학교 생활면에서는 그리 자랑할 만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 어딘가 에서 또 다른 재능을 키워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성적에는 관심이 없고 음악에는 열정을 다했던 천재가 존이 아닐까 싶었다. 왜 그때는 존의 천재성을 아무도 알아봐 주지 못했을까?

  

  로드 데이비드 씨는 지금도 70이 넘은 나이에 쿼리 맨 밴드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며칠 전에 러시아 공연까지 다녀왔다고 하니 무척 경이롭게 보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비틀스의 In My Life를 멋진 기타 연주와 함께 들려주었는데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 있다.


  ♪ 추천 곡 

- The Quarrymen <Good Day L.A>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비틀스의 전신 밴드

- Lonnie Donegan <Rock Island Line> 로니 데니건은 영국의 스키플 왕으로 비틀스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가수. 드럼이 없던 시절 빨래판으로 드럼 연주를 대신했던 시절 노래.


존 레넌의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쿼리멘 밴드의 로도 데이비스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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