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P 직장생활 극복기 9
'엄.친.아' 혹은 '엄.친.딸'이라는 말이 있다. 엄마 친구 아들, 엄마 친구 딸이라는 뜻을 가진 꽤 오래된 신조어이다. 다시 말해, 부모가 자식을 경쟁 속으로 몰아넣기 위해(보통 자식을 위한 일로 포장된다) 비교군으로 끄집어내는 존재를 뜻하는데. 엄마 친구 자식으로 등장한다고 해서 저런 이름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는 사회적으로 '비교 중독증'을 앓고 있다. 이는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모 예능에서는 '나만 아니면 돼'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켰는데. 오랜 세월을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스테디 유행어로 자리 잡았다. 즉, 주변인과 나 자신을 비교하는 일 역시 건재한다는 뜻이다. 물론 비교라는 것에 긍정적인 영향도 존재한다. 선의의 경쟁을 통해 사회전체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경쟁은 선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공격적인 형태까지 띠곤 한다. 그렇다면 오늘은, 나의 경험과 함께 남들과의 비교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 보려고 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남들과 많은 것을 비교하며 고통받았다. 우선, 외모를 비교했다. 나의 이목구비, 얼굴 형태, 몸매 등을 요목조목 따져가며 비교했다. 내 눈은 왜 이렇게 생겼을까? 다이어트는 왜 성공하지 못할까? 이런 고민들로 인생의 대부분을 날렸다. 매일 아침마다 열심히 얼굴을 두드려 가며 화장했다. 기어이 살을 찢어 쌍꺼풀까지 만들었다. 이빨을 빼서 교정을 했다. 다음으로, 재력을 비교했다. 평범한 집에서 자라온 나는 재벌을 선망했다. 비현실적 이도록 부유한 이들의 삶을 동경했다. 나아가 왜 나는 그럴 수 없는지 원망했다. 원망의 대상도 알지 못해 엉뚱한 사람을 탓하곤 했었다. 그리고 인맥까지 비교했다. 성격과 배경, 기타 등등의 것들을 모두 비교했다.
그 과정에서 TV, 인터넷 등의 미디어 매체가 큰 역할을 했다. 영화, 드라마, 예능 속의 연예인들은 예쁘고, 멋지고, 부유했다. 소위 '그.사.세(그들이 사는 세상)'였다. 잠이 오지 않는 새벽녘에는 그들과 비교하느라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남들과의 비교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바로 생각의 변화 덕분이었다.
남들과의 비교를 한 번에 끊기는 상당히 어렵다. 많은 분야에서 남들의 눈치를 보는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더 많이 비교하기로 했다. 예를 들어, 외모를 비교하고 싶다면, 비교군을 천 명 이상 두는 방법을 사용했다. TV 속에 보이는 화려한 연예인이 부러울 때, 더 많은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다. 세상에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얼굴들이 있다. 각자가 지닌 매력이 모두 다르다. 천 명을 일일이 비교하고 있다 보면 어느새 비교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만다. 어쩌면 그 과정이 귀찮아 그만둘 수도 있는데. 이 방법은 많은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 재력, 인맥 등등. 따라서, 나는 확실히 이전보다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비교는 나를 좀먹곤 하지만. 이전의 내가 갖고 있던 강박증적 '비교 중독'에서는 벗어났다. 세상의 행복과 만족이 한 가지 방법으로 정의될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나만의 방식을 통해 행복해질 것이다. 어쩌면 내 인생은 그것에 가까워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