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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쎄 Jun 25. 2022

1#나는 다시 절실해졌다

Mornington Peninsula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 많았다. 담당 정신과의는 말했다. "과거의 기억에 완전히 점령당하셨네요." 정신없이 바빴고 생각지도 않은 일들로 반쯤 넋이 나갔던 두달 간의 여행을 마치고 나는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았다. 바닥은 그 깊이 보다 알 수 없는 불안감으로 숨이 턱턱 막히는 지옥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자가치료라는 환상을 버리고 의사를 찾아갈 수 밖에 없었다. 결국 다시 돌아가야하나 싶은 절망감이 나를 눌렀다.

일단 태어난 생명체는 죽을 권리가 없다. 비참할지라도 인생은 중도에 멈출 수 없는 게임과 같다. 반드시 끝이 날 때까지 살아야만 한다.

의사는 가만히 몇 십분간 다소 들떠서 주절대는 환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노트에 받아적었다. 그러고는 내가 과거의 기억에 완전히 압도당한 상태라고 했다. 한국의 모든 것은 나에게 트라우마가 되어 사람을 숨쉴 수 없도록 옥죄었고 나는 탈출 날짜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그토록 괴로웠을까? 한국어, 한국인, 한국노래, 한국음식, 한국의 가족들, 학교, 친구들 모두가 트라우마라는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갔고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잠깐의 탈출구는 엄청난 희열과 엑스타시를 선물해주었다. 그곳의 삶은 평화롭다 못해 화가 날 정도로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대자연, 바다, 티없이 순수한 동물들, 따스한 바람, 여유로운 사람들의 삶. 복잡할 것도 서두를 것도 없었다. 모든 것은 자기자리에 조용히 있었고, 저만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었다.

정신없이 좀비처럼 겨우겨우 허덕이며 살아남았던 몇년의 기억이 눈물처럼 맺혔다. 그리고 거기서 살아남아야한다고 정신수양을 하고 매순간 다짐을 하며 병원과 직장을 수없이 오가던 삶이 내게 말했다. 너 이제야 겨우 살아남아 이곳에 왔구나라고. 이제야 눈 돌릴 여유가 생겼구나라고.

Ochiltree Road, Portsea VIC

아무도 없는 넓은 해변에 앉았다. 그리고 햇볕이 대양 위에 반짝이며 부서지는 풍경을 지켜보았다.  위로 지나가는 요트와 선박들을 지켜보았다. 바다와 하늘 그것 뿐이었다. 조용하게 고요하게 그곳은 그렇게 존재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도  필요가 없었다. 그들처럼 그렇게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용히 바다속으로 들어가보았다. 아무런 준비도 필요없었다. 바다는 잔잔하고 얕고 따스했으며 점잖았다. 나는 그저 무릎이 닿고 허리춤이 닿을 때까지 천천히 걸었다. 족히 500미터 이상은 걸은  같은데 아직도 물이 허리에 닿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다리를 움직여보았다. 그리고 태양을 바라보고 바다에 누웠다. 가만히 다리를 움직이고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가면서 태양빛을 피해보았다. 바다위의 햇살을 받으며 한참동안 누워서 저절로 흐르는 눈물을 보내주었다. 자연이란 이런 것이었보다. 존재 자체로 위안이 되는 , 자연과 함께 하는 경험으로 온몸에 만족감이 충만해지는 . 세상은 이렇게 연결되어 있었던 것인가보다.

Ochiltree Road, Portsea VIC

오랫동안 다양한 골방에 갇혀 세상과 단절되었던 나는 많이 아팠고 괴로웠다. 이곳에서는 자연외에 어떤 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의사, 수많은 병원과 치료, 사람들의 조언. 도시의 삶, 그 모든 것들이 허공에 날라가버렸다. 내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자연과 공존하는 연결성.

나는 다시 절실해졌다.

Quarantine St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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