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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원 Dec 02. 2024

눈이 와서 배추적을 부쳤다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단풍이 채 물들어 떨어지기도 전, 첫눈이 폭설로 내렸다.


눈은 순수의 세계. 아무 때도 묻지 않은 깨끗함. 저 먼 우주에서 전해진, 해독을 기다리는 메시지. 하염없이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눈이 가져온 메시지를 해독하다가 배추적을 부쳤다.

한 장씩 부친 배추적. 사진=김효원

순백의 눈을 바라보는 시간에는 자극 없이 슴슴하고 덤덤한 배추적이 제격이다. 술을 곁들인다면 하얀 막걸리가 좋겠다.


문밖은 온통 하얗고 바람마저 거세게 불어, 낙하하던 눈이 하늘로 치솟는다. 세상은 잠시 멈춘 듯한데 눈송이만 분분 날려 세상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음을 알린다.


그런 날, 나는 김장 때 한 포기 남겨 신문지에 싸놓았던 생배추를 꺼낸다. 흰 밀가루에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을 만든다. 한 번에 물을 모두 붓는 것보다 조금씩 부어가며 농도를 살피는 것이 좋다. 배추적에 쓸 반죽은 너무 되지도 질지도 않아야 한다. 반죽이 되면 배추 맛보다 밀가루 맛이 크게 느껴지고, 반죽이 질면 배추에 묻지 않고 흘러내린다. 적당한 반죽을 위한 물의 양은 순전히 감으로 결정해야 한다.


배춧잎을 한 장씩 떼 물에 한번 헹궈 건져 물기를 털어놓으면 배추적 부칠 준비는 끝이다. 팬에 기름을 두르고 배춧잎 앞뒤로 밀가루 반죽을 입힌 다음 지져주면 된다. 우리 집은 모든 요리에 들기름을 쓴다. 배추적을 부칠 때도 당연히 들기름이다. 들기름은 발연점이 낮아 센 불에 가열하면 타면서 연기가 난다. 센 불보다는 중불이 적당하다.


할머니나 엄마는 솥뚜껑에 들기름을 듬뿍 두르고 배춧잎 세 장 정도를 올려 한 소뎅이(소두벵이)를 만들었다. 요즘 프라이팬은 사이즈가 솥뚜껑보다 작기 때문에 배춧잎 세 장을 한 번에 놓기 어렵다. 작은 프라이팬에 맞추다 보니 한 장으로 한 소뎅이를 만든다.

배추가 가장 맛있는 가을에 배추를 갈무리해 놓았다가 눈 내리는 겨울에 꺼내 배추적을 부치면 제격이다. 사진=김효원

배추적은 배추적이라고 불러야 제 맛이 난다. 전은 지지는 음식, 적은 굽는 음식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 배추적은 배추전이 맞겠지만 할머니도, 엄마도 배추적이라고 했기 때문에 배추적은 배추적이라야 마땅하다.


간단하고 소박한 음식이지만, 그 맛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아무 맛이 없는 배추적은 고소한 들기름, 짭조름한 간장과 만나 비로소 삼합을 이룬다. 심심하고 덤덤한 맛. 아니, 맛이라기보다는 고요한 시간을 씹는 기분이랄까.

슴슴한 배추적은 양념간장을 곁들여야 비로소 맛이 난다. 사진=김효원

배추적을 먹는 날이면 백석의 시를 읽어야 한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내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내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 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백석, 백석정본, 문학동네)


백석의 시에는 고요가 있다. 흰 당나귀가 아무리 응앙응앙 울어도 푹푹 내리는 눈이 모두 삼켜버리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간을 잠시 멈추고 일상이라는 컨베이어벨트에서 내려와 고요한 시간 속에 나의 나타샤를 만나게 된다. 그거면 됐다.


배추적의 슴슴한 맛과 백석의 담백한 시, 그 무엇이 되지 못했지만 아무것도 아닌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세상에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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