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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원 Dec 16. 2024

감 따기 엘보에 걸렸다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우리 시골집에는 감나무가 유독 많다. 집 앞 길가에 두 그루씩 짝을 이룬 감나무가 여덟 그루 줄 지어 서있다. 모두 대봉 감나무다.

올해도 풍년을 이룬 감나무. 한 나무에 감이 몇개 달렸을까 세다가 포기했다. 사진=김효원

가을이면 여덟 그루의 감나무에서 주먹만 한 감이 주렁주렁 달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든다.


“아이고 올해도 많이 달렸네.”, “감을 따야지 왜 안다고 두고 보는가", "누가 따먹고 싶다길래, 주인도 없는데 따면 안 된다고 내가 말렸지."


감나무 앞에만 서있으면 동네분들이 감나무 얘기를 끝없이 하고 가신다. 그만큼 동네에서 최고의 인플루언서가 바로 우리 집 감나무다.


강원도는 추위 때문에 감이 잘 되지 않는 지역이다. 감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영하 10도를 넘나드는 날씨를 견뎌내지 못하고 얼어 죽고 만다. 그래서 우리 동네에는 감나무가 있는 집이 드물다.


아버지는 감나무를 심고 겨울이면 보온재를 감싸주었다가 봄이 되면 풀어주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감나무를 키웠다. 감나무가 두 그루씩 짝을 이룬 것은 혹시나 하나가 죽을까 봐 감나무 씨앗을 두 개씩 심은 까닭이고, 두 개가 모두 발아했지만 아까와서 하나를 캐 버리지 못한 결과다.


마당으로 진입하면 감나무가 좌우로 각각 한 그루씩 서있다. 여기 감나무는 특이하게도 감나무-호두나무가 짝을 이뤘다. 왼쪽도 감나무-호두나무, 오른쪽도 감나무-호두나무다. 왼쪽 감나무는 대봉, 오른쪽 감나무는 단감인 것이 차이라면 차이다.


열 그루에서 끝났으면 좋았으련만 뒤란으로 돌아가면 세 그루의 감나무가 또 있다. 뒤란의 감나무는 모두 단감이다.


우리 집 감나무는 모두 열 세 그루입니다,라고 정리하면서 고개를 드니 뒷동산으로 이어지는 언덕에 두 그루의 감나무가 "나도 있다"라고 존재를 드러낸다. 여기도 단감이다. 이로써 우리 집 감나무는 모두 열다섯 그루로 밝혀졌다. 대봉 아홉 그루, 단감 여섯 그루다.


감나무는 농약 한 번 안 줘도 감을 주렁주렁 매단다. 전지도 하지 않고 적과도 하지 않았더니 제 멋대로 자라 한껏 열매를 열었다. 지난여름에는 감이 하도 많이 달려 가지가 찢어지기도 했다. 찢어진 가지에서 건진 풋감은 항아리에 담아 감식초가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난 여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찢어진 가지에서 거둔 대봉 풋감 한 광주리. 사진=김효원
대봉에 비해 크기가 작은 단감은 대부분 감식초를 담았다. 사진=김효원

초록 잎들이 모두 떨어진 늦가을부터 감나무의 진가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추풍낙엽으로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서 감나무가 유일하게 붉은 감으로 세상을 밝힌다. 잘 익은 감이 조롱조롱 매달려있는 풍경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알전구를 보는 것만큼 포근하다.


감이 알아서 풍작을 만들어냈으니 농부는 거두기만 하면 된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데, 우리 집 감만큼은 공짜라고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공짜의 기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노동의 슬픔으로 바뀌었다. 따야 할 감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한 그루에 50~100개 정도의 감이 달린다고 치면 750~1500개의 감을 따야 한다. 게다가 감나무가 모두 키가 커, 감 따는 장대로도 모자라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야 한다.


감 따는 장대는 긴 장대 끝에 가위가 달려있어 긴 끈을 당겨 가위질을 하는 원리다. 무거운 장대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감이 달린 가지에 가져다 놓고 가위질을 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장대는 무겁고 감은 높다.


감은 가지를 자르면서 따야 한다. 감나무 가지를 잘라주면 내년에 감이 더 잘 달린다고 한다. 감도 따고 전지도 하고. 일석이조라고 생각하며 ‘장대의 무게’를 견디며 감 따기에 몰입했다.

겨울에 얼어죽지 말라고 보온재를 감싸주었다. 사진=김효원

감 따기에 과도하게 몰입한 종착역은 감 따기 엘보였다. 감 따기 엘보는 사전에 없는 말이다. 내가 만들었다. 장대를 들고 하루 종일 감을 땄더니 오른팔 인대가 늘어났는지 통증과 함께 엘보가 왔다.


흔히 테니스 엘보, 골프 엘보라는 질환명으로 불리지만 감 따기를 하다가 생긴 엘보를 테니스 엘보로 부르는 건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다. 운동이 아닌 노동으로 얻은 엘보이니 대분류 노동 엘보, 소분류 감 따기 엘보가 적당해 보인다.


한의원에 가서 침 맞고 정형외과에 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급기야 팔 보호대까지 착용해 보았지만 두 달 가까이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병원에 가면 “가급적 팔 사용을 자제하라”는데 오른팔을 안 쓸 수가 있나. ‘아무개의 오른팔’이라는 관용구가 왜 생겼는지도 알게 됐다. 오른팔을 안 쓰면 생활이 어렵다.


감 따기 엘보로 감 따기는 전격 중단됐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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