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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효원 Jun 18. 2024

⑦나만 몰랐던 멀치와 멀칭의 세계

[김효원의 어쩌다 농부]


농사는 풀과의 전쟁에서 싸워 승리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여실히 알게 됐다. 무더위가 시작되자마자 풀이 본격적으로 존재감을 뽐내기 시작했다. 뽑아도 뽑아도 풀은 계속 나왔는데, 체감상으로는 뽑자마자 그 자리에서 두배로 늘어나는 것만 같았다. 흰머리 뽑으면 두 개가 나온다는 속설처럼.

쇠비름이 융단처럼 깔린 텃밭.

희한하게도 텃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우리 집 3남매뿐인 기분이 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2매다. 1남은 나무 그늘 밑에서 베짱이처럼 유튜브 보며 놀고 있다.


풀을 뽑느라 낑낑대고 있으면 지나가는 마을 분들이 한마디씩 하신다.


“아이고 저걸 어쩌려고 그래.”

“풀은 못 당해.”

“비니루를 쳐야지, 비니루를.”


풀이 순하던 4월, 멀칭(mulching )을 간과한 벌을 톡톡히 받고 있다. 멀칭은 ‘식물을 재배할 때 경지토양의 표면을 덮어주는 일로, 중요한 토양관리 수단 중 하나이다. 덮어주는 자재를 멀치(mulch)라고 한다. 흑색 필름은 햇빛의 투과량이 제한되므로 잡초 종자의 발아나 생육을 억제하는 효과가 크다’고 두산백과 두피디아에 소개돼있다.


멀치로 전국 농부 연맹에서 대동단결해 사용하는 것이 흑색 필름, 즉 검정비닐이다. 이랑과 고랑을 만들고 이랑에 검정비닐을 씌운 다음 구멍을 뚫고 씨앗이나 모종을 심는다. 검정비닐을 씌운 곳에는 풀이 나지 않으니까 풀 뽑을 일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이 방법을 처음 개발한 분께 노벨 발견 상을 드리고 싶다.


풀이 나지 않아 평화롭기 그지없던 4월, 바라보기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흙에 검정비닐을 씌우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1회용품 사용도 줄여야 하는 마당에 검정비닐로 밭을 덮는다는 게 조금 부담이었달까. 그게 어떤 후폭풍을 가져오는지 깨닫는 데는 채 2개월도 걸리지 않았다. 검정비닐을 마땅치 않아 한 대가로 뽑고 돌아서면 나오고 뽑고 돌아서면 나오는 ‘무한 생산 싱싱 풀밭’을 선물 받았다.


그리하여 채소를 키우는지, 풀을 키우는지 알 수 없는 우리 집 텃밭이 동네방네 뉴스 톱10 중 상위 3위안에 올라가 있을 것이라는데 내 텃밭에서 나오는 풀 1㎏을 걸 수 있다.


땀으로 범벅돼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모기에 쏘여가면서 풀을 매는 일은 “내가 엄청난 일을 하고 있다”는 최면을 걸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렵다. 돌아서면 무(無)가 되는 시지프스의 돌덩이를 굴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호미를 던지고 싶어지니까.


참깨밭을 매면서 나는 나를 ‘텃밭 풀 연구가’라고 최면을 걸었다. 그러자 참깨밭을 차지하고 있는 풀이 어떤 종류가 가장 많은지 분류하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을 꽤 진지하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농촌진흥청이 2017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밭에서 자생하는 잡초 종류는 375종이다. 많기도 하다! 우리 텃밭에 난 풀은 30여종 정도로 판명됐다. 상위 1~3위는 개망초, 쇠비름, 바랭이가 차지했다. 특히 쇠비름은 맹렬하게 번식해 텃밭을 쇠비름 카펫을 깔아놓았다. 여기에 명아주, 까마중, 개비름, 토끼풀, 고들빼기 등이 약간씩 곁들여져 있다.


잡초 중에는 들깨도 있다. 심지도 않았는데 여기저기 발아하는 놀라운 번식력을 자랑한다. 들깨는 내가 심었다면 농사지만 심지 않았는데 나오는 건 잡초다. 자연 발아한 들깨는 깨가 제대로 달리지 않기 때문이다.


풀도 둥글둥글한 모양의 풀이 성격이 좋다는 것도 알게 됐다. 잎이 넓은 풀들은 대부분 비교적 쉽게 뽑히는데, 잎이 가늘고 긴 풀들은 뿌리가 깊어 잘 뽑히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풀이 뿌리째 속쏙 뽑혀 나오면 엄청난 쾌감이 느껴진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강원도 영월 어느 텃밭의 풀 자생 목록과 현황’을 발표할 학회가 없는 게 애석하다.


동네에서 우리만 일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아마도 검정 비닐 멀칭 때문일 것이다. 풀이 나지 않으면 뽑으러 밭에 나갈 이유가 없다.


당장 가을배추를 심을 때는 검정 비닐 멀칭을 기필코 하리라, 두 주먹을 불끈 쥐어본다. 풀을 하도 뽑았더니 손이 얼얼하고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파 주먹이 불끈 쥐어지지 않네?           


*이 글은 스포츠서울에 연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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